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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소영 Jan 13. 2024

모두가 평안을 찾기를

남겨진 사람들

 이미 20년 가까이 된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1을 보기 시작했다. 병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답게 매 화마다 인생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넘쳐나는데, 3화에서는 자전거 레이스로 피해를 당해 신원미상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한 남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미 생명을 다시 가지기는 힘든 상황, 드라마 속에서 그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는 기증자가 된다. 이 사람이 병원에 들어와서 뇌사판정을 받고 장기 기증을 위해 수술을 하고 가족의 품으로 시신이 가기까지, 이 환자를 맡았던 이지는 생명을 가진 하나의 존재로 그를 대한다. 뇌사 판정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도 그가 아침까지도 누군가의 사랑의 손길이 닿은, 가족이 있는 존재임을 이지는 잊지 않는다.


 지난 주말엔 아빠에게 다녀왔다. 돌아가시고 첫 생신이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지만, 보고 싶었다. 엄마랑 둘이 가서 겨우겨우 눈물을 참으며 아빠를 만나고 있는데, 둘의 눈물샘을 터뜨리고 마는 경험을 했다.

 봉안당에 갈 때마다 아빠 주위에 안치된 분들을 본다. 생년을 보며 나이를 가늠해보기도 하고, 돌아가신 날짜를 보며 그날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함께 놓인 물건들을 보며 이 분은 이런 걸 좋아하나 보다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날은 새로운 해가 시작되어서인지, 어느 날 보다 많은 고인의 가족들이 방문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아빠 옆에 안치된 분의 가족도 왔다.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아빠와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딸, 많이 보아야 다섯 살쯤 되었을까 싶은 아들, 세 가족이었다. 봉안당에 안치된 아내이자 엄마에게 인사를 하는 그 가족을 보며, 참고 있던 눈물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참을 있으면서 고인과 시간을 보냈고, 엄마랑 나와 마찬가지로 그 주변의 맛집인 고깃집에서 셋이 식사를 하는 모습도 보았다.


 아빠가 계시는 봉안당 앞의 묘지에 이선균 배우가 잠들었다. 엄마가 아빠와 있는 사이, 잠시 그의 묘에도 다녀왔다. 나 말고도 먼저 다녀가는 팬이 있었고, 그의 묘 앞에 앉아 있던 가족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그 팬에게 인사하러 오신 거냐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을 건네며 먼저 일어서는 모습을 보았다.


 그제는 갑자기 세상을 떠난 회사분의 조문을 다녀왔다. 아내분 또한 직원이라 깊지 않아도 친분이 있는 사이였는데, 담담하게 서 있는 모습에서 헤아릴 수 없는 깊이의 슬픔이 느껴졌다.


 가족이라는 존재, 누군가의 죽음 후에도 그를 잊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 죽은 이들보다 그들의 마음이 더 크게 다가오는 한 주였다. 힘들겠지만, 부디 평안을 찾기를.



* 타이틀 사진 : Grey's Anatomy 시즌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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