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체실 비치에서>
영화 <체실 비치에서>를 브런치 시사회를 통해서 봤다.
1960년대. 연인이 체실 비치의 호텔에서 머문다. 남자는 에드워드고 여자는 플로렌스다. 이 둘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 여행은 신혼여행이다. 둘은 해변을 걷고 호텔 룸에서 식사를 시켜 천천히 먹는다. 긴장감이 흐른다. 에드워드의 눈에서는 어색함이 세어 나오고 몸은 긴장으로 뻗뻗하다. 플로렌스는 몸이 굳어있고 조금의 자극에도 크게 반응한다. 그녀의 눈에 긴장과 두려움이 어려있다.
영화 < 체실 비치에서 >는 맨부커상 수상자인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이언 매큐언은 이 영화의 각본도 직접 참여했다. 주인공인 에드워드(빌리 하울)와 플로렌스(시얼샤 로넌)의 신혼여행을 보여주고 신혼여행에서 일어난 일들 사이사이에 이 둘의 만남과 그 만남의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지금부터는 영화의 줄거리를 거의 끝까지 언급할 예정이다. 이 영화를 평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와 캐릭터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연출과 연기 그리고 음악은 훌륭했다. 다만, 훌륭했지만 이 영화에 결정적인 부분은 아니었다. 미리 줄거리 알기를 원하지 않으면 이후에는 읽지 않으시면 되겠다.
이 둘은 핵확산 반대 모임에서 만난다. 에드워드는 충동적으로 돌아다니다 우연히 핵확산 반대 모임을 하고 있는 건물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임을 하고 있던 플로렌스와 만난다. 둘은 한참을 바라본다. 그리고 둘은 걷고 질문한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알아간다. 에드워드는 역사를 전공했고 플로렌스는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에드워드는 역사책을 쓰는 것이 꿈이고, 플로렌스는 실내악 콰르텟을 운영하며 연주자로 성공하는 것이 꿈이다. 에드워드는 플로렌스가 말하는 음악에 대해서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 (UCL을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이 이렇게 클래식에 문외한 것에 고개가 갸우뚱했다. 콰르텟의 구성도 몰랐다.) 플로렌스는 그런 그에게 자신이 언제가 서고 싶은 연주회장도 보여주고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도 스테레오를 통해 들려준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집에 플로렌스를 초대하고 뇌손상으로 인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계속해서 이상 행동을 하는 어머니를 보여준다. 플로렌스는 에드워드의 어머니와 그림을 그리고 같이 밥을 먹고 함께 즐거워한다. 플로렌스는 크리켓 경기장에서 일하는 에드워드를 보기 위해 수 킬로미터를 걸어가기도 한다. 둘은 신분이 달랐고, 집안의 가풍도 달랐지만 결국 둘은 결혼한다. 그리고 신혼 여행지에서 헤어진다.
둘은 호텔 방에서 성관계를 시도한다. 에드워드도 경험이 없었고, 플로렌스도 경험이 없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은 성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예감에 기대고 있었다. 굳은 등을 뻣뻣한 손으로 받치고 키스를 하고 신발도 제대로 벗지 못하고 겨우 침대에 눕지만, 플로렌스는 뛰쳐나간다. 에드워드는 플로렌스를 찾으러 나간다. 플로렌스는 해변에 놓여있는 작은 배에 앉아 있다. 그리고 플로렌스는 앞으로 관계를 가지고 싶지 않다고 그런데 사랑하고 함께 있고 싶다고 그러니 다른 여자랑 관계를 가져도 된다고 말한다. 에드워드는 화를 내고 배신감을 느끼고 소리를 지른다.
예전에 나는 소설 <체실 비치에서>를 읽어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결국 시도로 그쳤고 완독은 실패했다. 그냥 그저 그런 실패도 아니었고 10쪽도 못 읽고 끝난 시도였다. 왜 실패했냐면, 도통 인물들이 이해되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이 의문은 영화를 보면서도 계속되었다.
둘은 왜 헤어지는가 하는 질문은 헤어짐의 이유에 대한 질문이라기보다, 왜 둘은 만났는가 어떻게 연인이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렇게 연약한 이유로 헤어지는 둘은 어떻게 만남을 유지한 것일까. 난 그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영화는 이 둘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둘은 서로에 대한 환상을 품고, 서로에 대해 몇 가지를 착각하며 자신의 감정을 속이려 하고 자신에 대해 결코 어느 부분은 보여주지 않고 말하지 않은 채로 헤어진다. 왜 신혼여행에 와서야 플로렌스는 자신을 직면하는가. 에드워드는 왜 플로렌스에게 더 질문하지 않고 그저 화를 내는가. 내가 지금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모두 캐릭터에 관한 질문들이다. 하지만 난 끝까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하는지 저런 사람들이 있음을 알지만 저런 사람들이 흥미로운가, 소설의 인물이 되어야 하는가가 의문이었다. 이 의문은 근본적으로 이 이야기가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된다. 이언 메큐언은 이 질문에 그렇다고 한 것 같다. 미안하지만 이언 메큐언의 개인적인 이유가 많이 반영된 것 같다. 그것이 이 시절에 대한 향수이든, 혹은 자신이 지닌 역사에 대한 향수이든.
이 둘은 헤어지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플로렌스의 딸과 에드워드가 우연히 만나고, 더 시간이 흘러 라디오에서 나오는 플로렌스의 고별 연주회 소식을 듣고 찾아가는 방식으로 간간히 마주친다. 둘은 결혼을 했고,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왔지만 헤어졌다. 그리고 언젠가 공연장에서 플로렌스가 연주하고 그 앞에 에드워드가 앉아서 마주 보는 걸 같이 상상한 적이 있다.
이런 구조를 보면, 감독과 이언 매큐언은 이 이야기가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혹은 비애나 씁쓸함이 감도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에드워드는 자유로운 관계를 가지다가 말년에는 혼자서 살아가고 플로렌스는 많은 가족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에드워드를 불쌍하게 보는 시선이 반영되는 것이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가 헤어지는 과정에서도 플로렌스가 성경험에 관한 안 좋은 기억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두려움과 이유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헤어진 것으로 연출하고 있다. 에드워드에 시선에 이입한 둘은 이 극을 비극으로 볼 수밖에 없고, 적어도 비애감이 감도는 이야기로 볼 수밖에 없지만 나는 이 둘이 헤어진 것은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특히나 플로렌스에게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플로렌스가 에드워드에 대해 미련을 가졌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미안했을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에드워드는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늘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불평이었으며, 화를 참지 못했고 폭력적이었다.
사실은 잘 된 일을 비극인 것처럼 느끼고 돌이키고 향수를 느끼는 건 자의식 과잉이다. 자신을 비련의 주인공으로 세월의 희생자로 어린 시절의 어리숙함의 피해자로 생각하는 건 참 부질없는 이야기고 결코 개인의 머리 밖을 나올 가치가 없는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는 나와 버렸다. 왜 나왔는가. 원작자와 감독이 이런 인물에 감정 이입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딱 그 이유 뿐일 것이다.
<체실 비치에서>는 이언 매큐언이 만든 이야기 중에 가장 별로인 이야기일 것이다. ( 난 <암스테르담>과 <속죄>는 좋아한다.) 그리고 영화로 연출되고 좋은 배우들이 연기해도 별로인 이야기는 여전히 별로인 이야기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