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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는 게 별 거 Dec 21. 2020

이상하게 이상적인 조합

팥이 싫은 아이



어렸을 때는 팥을 싫어했다.
겨울이 되면 고민이 시작된다.
붕어빵, 호빵, 찐빵에 모두 팥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팥을 싫어하면서 어떻게 저 빵들을 좋아했는지 의아하다. 단 제과점에 가면 단팥빵을 고르지는 않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붕어빵이었다.
붕어빵을 최고로 즐기기 위해선 머리를 굴려야 했다.
빵만 먹고 싶은데 팥을 덜어내면 편식한다고 잔소리를 듣거나 심한 경우 붕어빵을 아예 사주지 않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다 팥 러버 엄마를 포섭했다.
"엄마 팥 좋아하니까 내 거 팥 줄게. 엄마 먼저 먹어."

엄마는 내가 무슨 과자를 고를지 들떠서 정신없이 슈퍼를 휘젓는 동안 소리 없이 연양갱을 장바구니에 집어넣었고
아이스크림마저 비비빅과 아맛나 중에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붕어를 갈라먹기 시작했다.
먼저 붕어빵의 배를 갈라 2등분을 나누어 엄마를 준다.
엄마는 팥고물을 먹고 나서 나에게 남은 빵을 준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아니 쟤는 팥 없이 무슨 맛으로 붕어빵을 먹나? 그럴 거면 그냥 빵을 먹지 왜 붕어빵을 좋아하는 거지?'
'아니 엄마는 빵 없이 무슨 맛으로 붕어빵을 먹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렇게 만족스럽기는 쉽지 않다.
눈에는 의심이 입가엔 웃음이 번진다.
서로가 좋아하는 부분만 골라 먹을 수 있는 조합이라니 이상하게 이상적이다.

팥을 양보하는 척 팥을 싫어했던 아이는 커서 엄마 못지않은 팥 러버가 되었다. (단, 양갱은 아직도 별로다.)
급기야 이번엔 아예 팥죽을 만들어 버렸다.
팥죽까지 쑤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어린 시절의 내가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놀라워할까?
돌고 도는 인생이기도 달라지고 달라지는 인생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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