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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과 지니의 시칠리아 자전거 여행 1

팔레르모 도착

by 존과 지니

2017년 4월 27일


드디어 우리의 황금 연휴가 시작되었다. 연휴에 휴가를 좀 더 붙여서 가니 2주가 조금 넘게 여행을 갈 수 있다. 2주의 시간이라면 해외의 멋진 곳으로 여행을 갈 수 있으니 이번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로 간다.


아침 8시 55분 인천발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새벽에 일어나서 인천공항에 7시에 도착한다. 인천공항역 개찰구에 카트가 있으니 바로 자전거를 포장해서 카트에 싣고 간다. 이제는 워낙 익숙한 일이다보니 자전거 두 대를 포장하는 데에 30분 정도 밖에 안 걸린다. 중국 항공사 카운터에 가니 사람도 많지 않아서 바로 비행기표 발권을 한다. 그런데, 자전거 운송 추가 요금을 달라고 한다. 자그마치 한 박스 당 1000 위안, 우리나라 돈으로 16만 원을 내라고 한다. 두 박스에 32만 원을 계산하려 했더니 이번에는 알이탈리아 공동운항편의 대형 수화물 문제 때문인지 한참을 어디론가 전화만 하는 사이에 비행기 출발 시간이 되어버린다. 경유 대기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이 비행기를 못 타면 나머지도 고스란히 다 놓치게 되는 상황이니 비행기도 우리를 기다려야 해서 출발하지 못한다.

중국동방항공 직원들이 일처리는 왜 그리 못 하는지 한참을 기다리게 하고선 이제 셔틀 열차까지 타고 가야하는 인천공항의 가장 끝 게이트까지 뛰어가란다. 항상 느끼지만 항공사가 안 좋을수록 출국장에서 멀다. 돈은 돈대로 쓰고 너무 힘들게 비행기에 탔다. 이제 중국동방항공을 다시 탈 일은 없을 듯하다.


1시간 반 만에 상하이 푸동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큰 공항임에도 불구하고 비행장 바닥에 내려서 저상버스를 타고 공항 터미널 건물로 들어간다. 내리는 와중에 비행기 밑으로 우리 자전거 박스가 보인다. 여기까진 자전거도 무사히 잘 왔구나.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


상하이 푸동공항에서 2시간 정도 기다려서 다시 로마행 동방항공 비행기를 탄다. 장거리 비행기에서 영화란 시간을 때우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런데, 한국 영화도 거의 없고 한국어 자막이 지원되는 영화도 거의 없어서 억지로 잠이나 잔다. 잠자는 데에는 역시 술인데... 맥주 몇 캔 안 싣고 다니는 비행기라고 하니 첫 식사에 얼른 맥주 한 캔 받아 마시고 로마까지 긴 비행을 버틴다. 다행히 중국인 승객들이 생각보다는 덜 시끄럽고 기내식도 소문만큼 못 먹을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음료수나 간식은 거의 없었다.


한참을 날아서 로마에 도착한다. 로마 레오나르도 다 빈치 피우미시노 공항에서 팔레르모 가는 알 이탈리아 항공기를 갈아타는 경유 시간이 1시간 반 정도 밖에 안 되는데 그나마도 비행이 늦어져서 시간이 촉박하게 도착했다. 이대로라면 최악의 경우 오늘 팔레르모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항공기에서 내리는 통로에서 우리 이름을 들고 있는 알이탈리아 직원을 만난다. 우리와 암스테르담 가는 다른 두 승객을 입국 수속까지 직원 전용 통로로 빠르게 처리해주고 게이트까지 안내해준다. 직원이 이렇게 붙어주니 든든하다. 다행히 팔레르모행 비행기도 마침 지연되어서 문제 없이 탑승한다.


공항에 피아노가 있다. 한 남자가 애인에게 멋진 연주를 해주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로맨틱한 글자 그대로의 로마인가.


이제 팔레르모행 알이탈리아 항공기에 탔다. 마침 창 밖으로 우리 자전거 박스가 비행기에 실리는 것이 보인다.


팔레르모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제주도 가는 비행기와 비슷한 느낌이다. 비행기는 날아오르고 잠깐 비행하면서 음료수를 한 번씩 나눠주고 컵을 회수하고 나니 하강하여 팔레르모에 도착한다. 이미 날은 완전히 깜깜하다.


우리에게 위탁 수하물은 자전거 박스 뿐이다. 큰 짐은 7번 벨트에서 나온다길래 가서 기다렸더니 7번은 국제선용이라고 한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탈리아 국내선 대형 수하물은 2번 벨트라고 한다. 가보니 벌써 나와 있다.


시칠리아로 가는 싼 비행기표는 대부분 밤 늦게 시칠리아에 도착한다. 이미 시간은 밤 11시가 다 되어서 자전거를 박스 째로 택시에 싣고 숙소에 갈까도 생각했지만 큰 택시는 보이지 않는다. 숙소가 멀지 않으니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하고 그냥 공항 입구에서 자전거를 조립한다. 자전거도 상한 곳 없이 멀쩡하게 도착했다. 어쨌든 사람도 자전거도 무사히 도착이다. 이제 시칠리아 여행이 시작이구나. 일단은 오늘 예약한 숙소까지 10 km 정도 달려야 한다.

생각보다 기온이 조금 낮아서 방풍 자켓을 입는다. 팔레르모 공항 입구의 큰 도로는 늦은 밤이라서 차는 많이 안 다니지만 숙소까지 많이 돌아가는 길이다. 우리는 그 옆의 샛길로 간다.


어두운 샛길을 조금 달리니 대형견 5마리 정도가 짖으면서 달려온다. 이렇게 큰 개를 풀어놓고 키우나? 아니면 주인 없는 개들인가? 지니님이 놀라서 번개같이 달려간다.


다행히 개들이 경계만 하고 위협적으로 덤비진 않고 내가 잠시 멈춰서 달래주니 눈치만 본다. 샛길에서 큰길 아래로 넘어가는 보행자용 통로를 지난다. 미리 지도를 보고 공부해놓은 길이다.


이제 국도인 SS113을 타고 숙소가 있는 공항 근처 마을인 테라시니(Terrasini)로 달린다.


겨우 10 km이지만 야심한 밤에 자전거로 달리긴 부담스럽다. 그래도, 무사히 테라시니의 숙소에 도착했다. 집주인이 늦게까지 우리를 기다려 친절하게 맞아주니 고맙다.


저렴하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민 편안한 독채 아파트에서 하룻밤 묵는다.

완벽한 시설도 아니고 조식도 주지 않는 낡은 아파트지만 하룻밤 쉬어가기 충분했다. 이제 내일부터 시칠리아를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자전거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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