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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과 지니의 시칠리아 자전거 여행 2

서쪽 항구도시 트라파니까지 120km

by 존과 지니

2017년 4월 28일


경로 : 테라시니(Terrasini)-산 비토 로 카포(San Vito Lo Capo)- 트라파니(Trapani)

주행거리 : 117 km

총 주행거리 : 127 km


테라시니에서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조용한 지중해 시골마을이다.


이번에 묵은 숙소는 밤 늦게 체크인할 수 있는 공항 근처의 아파트로 에어B&B에서 알아보고 구한 것이다. 지상층에 대문이 있고 1층에 집 하나, 2층에 집 하나인데 1층에는 사람이 없어 우리만 묵었다. 벽에는 주인집 아이가 그려놓은 그림이 붙어있는데 배경의 산을 볼록볼록하게 그린 것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시칠리아의 많은 산들이 아이의 그림같이 생겼다. 동네 뒷산도 마찬가지이고...


집을 우리만 쓰니 현관문 안쪽 계단 옆에 자전거를 편하게 두었다.


이제 출발 준비를 한다. 오늘은 120km 가까운 거리에 해발 300m 언덕길을 넘어서 시칠리아의 북쪽 끝인 산 비토 로 카포( San Vito Lo Capo)에 갔다가 다시 언덕길을 넘어서 트라파니까지 가야 한다.


하룻밤 잘 쉰 테라시니를 살살 빠져나간다. 평일 아침 출근시간이라 차들이 많다. 버스 정류장에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오늘 날씨는 무언가 조금 뿌옇지만 맑은 편이다. 멀리 멋진 지중해의 풍경이 펼쳐진다. 작년 10월에 다녀온 스페인쪽 지중해는 조금 더 건조하고 삭막한 풍경이었는데 4월 말의 시칠리아는 초록빛으로 풍성하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에서는 시골이지만 길이 복잡하지 않고 이정표도 잘 되어 있다. 자전거로 다닐 때에는 초록색으로 표시된 A번호의 자동차 전용도로를 피하고 SS번호의 국도를 주로 이용하면 된다. 지방도인 SP번호의 도로는 비포장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살비나(Salvina)라는 마을 입구에서 트라파니로 가는 길이 둘로 나뉘어진다. 지금까지 계속 따라온 SS113번 도로로 내륙을 따라서 트라파니로 바로 갈 것인지 SS187번 도로로 해변을 따라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산 비토 로 카포로 가야 하니 SS187번 도로로 간다. 멀리 스파라지오산과 모나코산이 뿌옇게 보인다. 저 두 덩어리의 산 동쪽은 자연보호구역인데 도로가 중간에 끊기고 트래킹을 위한 비포장길만 있어 우리는 쿠스토나시 (Custonaci)라는 마을로 돌아서 가야 한다.


국도길은 바다 옆으로 가다가 내륙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스페인의 내륙이 삭막한 사막같은 느낌이라면 시칠리아의 내륙은 푸르른 들판같다.


카스텔라마레 델 골포(Castellammare del Golfo)에서부턴 당분간 내륙으로 들어간다. 바다를 좀더 즐기고 싶으니 내륙으로 들어가기 전에 바다를 보면서 아침 겸 간식을 먹기로 한다.


해변에 깔끔한 느낌의 매점 겸 바에서 빵과 음료수로 간단히 먹는다.

좋은 풍경이 있는 바닷가는 동네 한 가운데 있는 가게보다 전체적으로 비싸다.

달콤한 빵 두 개와 짭짤한 빵 두 개, 슬러쉬같은 그라니따, 그리고 음료수 두 병을 주문했더니 17유로...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가격 상승의 주 원인은 시큼한 레모나 슬러쉬같은 그라니따이다.


카스텔라마레를 벗어나면 내륙으로 가는 언덕길이 시작된다.


시칠리아의 마을들은 가까이서 보면 오래되고 낡은 집도 많고 고층 건물이 없어서 휑~한데 멀리서 보면 의외로 집들이 많고 빽빽하다. 저기가 내가 지나온 마을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다.


이제부터 한 동안 바다랑은 안녕이다. 그래봐야 점심은 바닷가에서 먹을테지만...


4월 말, 5월 초, 시칠리아도 봄이다. 파릇파릇한 싱그러운 계절인 것이다.


시칠리아의 봄은 꽃천지이다. 인공적으로 심어놓은 화단이 아닌 들판 여기저기에 피어난 들꽃들을 보며 달린다. 남쪽에 있는 노토(Noto)라는 마을에서는 5월 중순에 꽃 축제도 한다고 한다.


트라파니로 바로 갈 수도 있지만, 쿠스토나시를 거쳐 산 비토 디 카포에 들르기로 한다. 날씨가 이상하다. 여기부터는 이상하게 잔뜩 흐리고 뿌연 안개 속을 달린다.


쿠스토나시는 뭔가 쇄락한 산골마을 같은 느낌이다. 집들도 낡은데다가 아무런 장식도 없고 여기저기 허물어진 폐가 같은 건물들도 보인다. 동네에서 잠깐 쉬려고 해도 마땅히 쉴만한 매점이 없으니 그냥 지나친다. 해발 300미터의 오르막을 넘어야 하는데 이미 고도는 꽤 올라왔다.


다행히 동네 출구에 크라이(CRAI) 마켓이 있다. 크라이, 데코같은 슈퍼마켓 체인이 음료수를 저렴하게 판다. 스페인에서도 즐겨 마시던 레몬맛 환타를 발견하고 사왔는데... 그 맛이 아니다. 스페인의 레몬맛 환타는 레모네이드 느낌이라면 이탈리아의 레몬맛 환타는 레모나맛 탄산물이다. 맛이 확연히 다르고 맘에 안 들어서 이후 한 번도 안 사먹는다. 다음에 스페인 가서 다시 마셔야겠다.


슈퍼마켓을 출발해서 푸르가토리오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면 언덕 정상이다. 해발 300m라지만 오르막길이 매우 완만해서 수월하게 올라왔다.


이제부터 산 비토까지 쭉 내리막이다. 맑은 날 보면 멋질 것 같은 기암괴석 봉우리들이 뿌연 날씨 탓에 선명하지 않아서 아쉽다.


드디어, 산 비토 로 카포 도착이다. 이제 점심 먹어야지...


날은 뿌옇지만 그래도 바닷가의 풍경 좋은 곳에 앉는다. 여기도 유명한 휴양지라 이 모래사장이 성수기에는 빈틈 없이 비치 체어로 채워질 것이지만 지금은 뿌연 안개 같은 것 때문에 볼품이 없다.


지니님은 봉골레 스파게티. 조개가 들어간 스파게티는 기본적으로 짜기 때문에 꼭 소금 빼달라고 해야한다. No sal! 하면 그럭저럭 간이 된 봉골레 스파게티가 나온다.


나는 생선알 스파게티... 똑같이 소금을 뺐는데 조금 짠 원인은 모두 생선알 때문이다.


문어가 있어서 스페인의 문어 요리를 생각하고 주문해봤더니 조금 요상한 음식이 나왔다. 차가운 소스를 얹은 차가운 문어발이다.


해변의 풍경을 조금 더 감상하면서 느긋하게 점심을 마치고 다시 출발한다. 아까 넘어왔던 언덕길을 다시 넘어가야 한다.


오고 가는 길의 기암 절벽들이 멋지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조금 아쉬운 산 비토 로 카포 방문이다.


아까와 같은 언덕길이지만 정상 근처에서 일방 통행 차선으로 각각 다른 길로 나뉘어진다. 유럽은 일방통행길이 많기 때문에 역주행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갈라졌던 두 길이 합쳐지면 드디어 언덕 정상이다. 다시 조그만 마을을 지나서 슈퍼마켓에 가서 쉬기로 한다. 조그만 마을의 동네 술집은 보통 동네 노인들이 하루 종일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기 때문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똑같은 슈퍼마켓에 다시 들러서 이번에는 스포츠 음료로 목을 축인다.


이제부터 숙소가 있는 트라파니까지는 거의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을 쭉쭉 내려간다.


트라파니에 거의 다 와간다. 저 산 너머에 우리나라 방송에도 종종 소개가 된 언덕 위 마을인 에리체(Elice)가 있겠지만 우리는 들르지 않는다. 일반적인 한국인 관광객들은 대부분 산꼭대기 동네인 에리체에 가기 위해 트라파니에 들르지만 우리는 그저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트라파니 그 자체를 즐기고 싶다.


트라파니도 도시는 도시인가보다. 도시 입구로 들어가니 자전거길이 있다. 편하게 달릴 수 있으니 좋다.


뭔가 캐릭터를 도용한 것 같은 피자집 간판 앞에서 멈춰서 숙소를 찾는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이 숙소는 시칠리아에서 가장 흔한 B&B 형태이다. 시칠리아의 B&B는 에어B&B 같은 민박이 아니라 전문적인 여관 스타일의 숙소가 많다. 다만, 로비의 프론트 데스크에 사람이 없을 수 있으므로 미리 도착시간을 말해두는 것이 좋다.


트라파니가 쿠스쿠스라는 음식의 원조라고 한다. 민박집 주인에게 물어서 먹을만한 음식점들을 추천받았다.


일단은 바닷가로 가보기로 한다. 유럽은 어딜 가도 광장이나 공원 그리고 분수가 흔하다. 사람들의 느긋함이 환경을 만드는 것일까? 이런 환경이 사람들을 느긋하게 만드는 것일까?


작은 동네의 바닷가는 모래사장이나 바위 해변이고 어느 정도 큰 도시의 바닷가는 항만이다. 트라파니 역시 바닷가에 항만 시설이 크게 있다.


의외로 괜찮은 술집이 없어서 적당한 술집에서 칵테일을 주문해 마시는데... 독하다. 알콜 도수가 일반적인 배합량의 두 배는 되는 것 같다. 살짝 취기가 도는데 걸어다닐 것이니 문제없다.


항구 근처의 쿠스쿠스 식당은 엄청 유명해져서 예약을 안하면 앉을 테이블이 없나 보다. 숙소 주인이 알려준 다른 집을 가본다. 이 집은 뭔가 모던하고 깔끔한 인테리어라 분위기가 좋다.
이탈리아도 프랑스 못지 않게 와인이 유명하다. 시칠리아 화이트 와인을 식전주로 시작한다. 시칠리아에서 마신 화이트 와인 중에 내 입에는 가장 맛있었다. 가격도 식당에서 파는 것치고는 저렴한 15유로...


그리고 쿠스쿠스 한 그릇씩 주문한다. 쿠스쿠스는 밀을 으깨고 쪄서 만든 것인데 파스타의 일종이라고도 하고 우리나라의 좁쌀 비슷한 느낌이다. 원래 북아프리카 음식인데 북아프리카에서 가까운 시칠리아로 아랍인들이 전파했다고 한다. 시칠리아에서도 소금 염전이 있는 트라파니가 쿠스쿠스로 유명하다고 한다. 식감이 좁쌀 같아서 재밌다. 생선 소스를 함께 주는데 살짝 양념해서 먹으니 맛도 좋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아직 공기가 차가운데 방풍자켓을 안 가지고 다녔더니 몸이 오들오들 떨린다. 바다 한가운데라 한국보다 따듯하겠거니 했는데 여기 시칠리아도 아직 밤공기가 차갑다.
시칠리아 여행 첫날 120 km라는 거리를 달렸다. 여행 초반에 체력이 받쳐줄 때 조금 더 달리고 후반을 여유롭게 보내는 우리의 스타일이다. 더 여유있는 일정을 원한다면 경치 좋은 산 비토 로 카포에서 하룻밤을 보내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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