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파니에서 치아카까지 120km
2017년 4월 29일
이동 경로 : 트라파니-치아카
이동 거리 : 120 km
총 이동거리 : 260 km
오늘은 트라파니(Trapani)에서 출발해서 치아카(Sciacca)까지 달리기로 한다. 치아카의 철자가 특이해서 이름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트라파니에서 중심도로는 혼잡하니 일찌감치 해안도로 쪽으로 빠져서 달리기로 한다.
어제 쿠스쿠스를 맛있게 먹은 식당이다. 옆의 미니마켓에 가려져서 찾기 힘들었다.
해안 쪽으로 나오니 기대는 안했지만 역시 콘테이너 박스와 항만 시설이 가득하다.
트라파니의 유명한 것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소금과 염전이다. 항만시설을 벗어나서 SP21번 도로를 따라가다보면 볼 수 있다. 더 큰 염전은 공항을 지나서 샛길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데 염전만큼은 우리나라 증도의 태평염전이 더 멋진 듯하다.
별 생각없이 바닷가 길을 따라 가다보면 마르살라(Marsala)라는 큰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트라파니를 출발해서 30 km 정도 달렸다.
마르살라의 해변 공원 건너편에 깔끔한 카페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기로 한다.
안쪽은 손님들로 북적거리는데 테라스 쪽은 손님이 많지 않아 좋다. 풍성하게 속이 꽉찬 샌드위치와 크로아랑을 먹는다. 지니님이 ESTATHE라는 음료수가 맛있어 보인다고 집어왔는데 입에 안 맞는다고 하니 내가 마신다. 그냥 평범한 레몽홍차 음료수 맛이다.
아침이라고 하지만 먹고 나니 이미 10시다. 오늘도 120 km 정도 달려야 하는데 후반에는 언덕길의 연속이다. 슬슬 또 출발한다.
SP84번 (via trapani)도로를 따라 계속 달린다. 해변에 바짝 붙어서 달리기도 하고 살짝 내륙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길 옆으로 포도나무들이 보인다. 시칠리아도 포도밭이 아주 많고 그만큼 포도주도 많이 난다.
오늘의 지중해 바다색은 아주 선명한 파란색이다.
SP84번 도로는 시골 마을로 들어가면서 끝나기 때문에 마지막에 SP84번 도로를 벗어나서 작은 샛길 여기저기로 달려야 한다. 이번 여행은 지니님이 대부분의 코스를 결정하지만 내가 미리 구글맵이나 스트리트뷰로 자전거가 갈 수 없는 도로들을 조사해놨다.
샛길을 어려움 없이 달려서 마자라 델 발로(Mazara del Vallo)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서 계획대로라면 마을의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직진해버렸다. 배를 고치는 시설들이 나오고 그 끝이 막다른 길이다.
강을 건너게 해주는 통통배 같은 이동수단이 있는데 간발의 차이로 놓쳐버리고 돌아서서 강을 건너기 위해 빠져나간다.
다시 원래 계획대로 강을 건너간다.
마자라 델 발로를 지나서도 계속 해변가로 갈 수 있으니 기분이 좋다.
지중해 시골 마을을 자전거로 달릴 때 고려해야 할 것이 강을 건너는 다리를 잘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길 가에 양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그래도 몇 마리 안 되니 다행이다. 양들이 많으면 도로를 꽉 메우고 지나갈 때도 있다.
양들의 무리 뒤로 양치기 개 세 마리가 따라간다. 재밌고 귀엽다.
SP38번 도로와 그에 이어지는 SP51dir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그 끝에서 트레 폰타네(Tre Fontane)라는 마을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제 점심 시간도 지나가려 하니 슬슬 점심을 먹어야겠다.
트레 폰타네 입구의 해변에 매점 겸 바가 있는데 그냥 지나쳐서 좀 더 달린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 모래가 날려서 도로에 쌓여있다.
비성수기라서 바닷가에 고운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지는데도 사람이 없다.
도로에 쌓인 모래가 장난이 아니다. 이륜차에게 고운 모래는 특히 위험하니 살살 끌고 지나가려는데 이 모래 덮인 길은 끝날 줄 모르고 비성수기에 사람이 없으니 식당들도 문을 연 곳이 없다.
결국 모래 쌓인 해변길을 포기하고 안쪽의 깨끗한 길로 가기로 한다.
계속 달려서 옆 마을인 트리스시나(Triscina)의 출구에 다다른다. 앞으로 언덕길의 연속이라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이제 정말 식당을 못 찾으면 돌아서 문 열었던 몇 안되는 식당으로 가야 하는데 눈 앞에 이것저것 다 파는 가게가 나타난다. 우리나라식으로는 편의점 같은데...
테이블도 있는 것을 보니 앉아서 먹고 갈 수 있는 듯하다.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가본다.
안에는 식료품이나 조리된 음식들도 있고 잡다하게 뭔가 많다. 닭고기에 올리브에 심지어 쿠스쿠스까지 있다.
다른 식료품이나 생필품 그리고, 스파게티면도 다양하게 판다.
가게 아주머니가 만든 스파게티와 닭고기를 시원한 스프라이트 1.5L를 주문해서 먹는다. 생선알이 들어간 스파게티는 퉁퉁 불어있었으나 먹을만 했고 말은 안 통하지만 음식도 데워주고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아주머니가 고맙다. 가격도 싸다.
잘 먹고 충분히 쉬었다. 식당인지 편의점인지 식료품점인지 아리송한 가게를 뒤로 하고 한적한 시골마을인 트리스시나를 벗어난다.
4월 말, 5월 초의 시칠리아를 짧게 표현하자면 들꽃이 가득한 들판이다. 바다도 좋지만 들판을 지날 때도 들꽃들이 만발해서 즐겁다.
시칠리아의 도로가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마을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한다. 계획한 길 중간에 있는 멘피(Menfi)라는 마을에 들어가진 않지만 모든 이정표가 멘피를 가리키니 멘피 방향으로 간다.
어떻게든 점심을 해결한 것은 이제부터는 계속 되는 언덕길이 우릴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낙타등이 계속 나올꺼라고 했는데 막상 큰 언덕이 연속해서 나오니 지니님이 이런 큰 낙타등이 어딨냐고 한다. 완만하지만 힘빠지는 언덕길을 오르면 멋진 경치가 나타나고 다시 내려갔다가 언덕길을 올라서 멋진 경치를 보기를 수 차례 반복한다.
중간에 도로가 파손된 곳이 있는데 차량이 많이 안 다니는 길이라 문제는 없다. 내가 운전자라도 이런 길로는 안 가고 멀리 보이는 SS118을 타고 갈 것이다.
아직 언덕은 좀 남았지만 드디어 멘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오늘의 목적지인 치아카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노면은 조금 안 좋아졌지만 달리는데는 무리없다. 도로는 번호가 몇 번 바뀌지만 신경쓰지 않고 일직선으로 달리면 되고 멘피를 지난 지금은 SP50번이다
혹시 지금 이 글을 보는 독자께서 식사 중이라면 미안하지만 치아카 가는 길은 똥밭이었다. 양똥이 가는 길 내내 도로에 깔려있는데 사진의 작은 얼룩들이 모두 양똥이다.
양똥이 점점 신선해진다 싶더니 그 범인들이 나타났다.
치아카로 가는 마지막 언덕을 오르면서 뒤를 보니 양떼가 상당이 많다. 저 무리가 지나갔으니 길이 그 모양이지...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언덕길을 올랐다. 언덕 정상에서 잠시 쉬어간다.
우리나라의 마을 입구에 장승이 있다면 시칠리아의 마을 입구에는 예수님이 있다. 가끔 성모 마리아가 있기도 한다.
왼쪽에 보이는 하얀 마을이 오늘의 목적지인 치아카이다. 아직 조금 더 달려야 한다.
한참 내륙에서 언덕길과 씨름을 했더니 바다가 반갑다.
지중해, 아니 시칠리아의 바다는 신기하다. 태평양 한가운데 하와이의 바다가 한없이 깊고 푸른 바다였다면 시칠리아의 바다는 매일매일 항상 다른 색을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이다.
드디어 SP79번 도로를 따라 치아카로 들어왔다.
언덕이 지긋지긋해서 해변 쪽으로 가려했더니 예약해둔 숙소가 언덕 꼭대기에 있다...
이제 지쳤으니 슬슬 끌고 올라간다. 좁은 길이라 타고 올라가려 해도 차량 통행이 부담스럽다. 물론 차가 빵빵거리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주지만...
치아카는 절벽 아래에는 항구가 있고, 언덕 위에는 사람이 사는 시가지가 있다. 시가지로 올라가자마자 치아카에 있는 여러 문 중에 하나가 우릴 맞이한다. 문 뒤에 보이는 낡은 건물은 카르미네 교회(Chiesa del Carmine)라는데 외관이 너무 낡아보여서 속까지는 들어가보진 않았다.
카르미네 교회 근처 일방통행길로 된 뒷골목에 오늘 묵을 Fagio B&B가 있다. 어제 트라파니의 B&B처럼 전문 민박이고 조식 포함 60 유로에 조식이 잘 나온다고 하여 예약했다. 자전거는 현관문 왼쪽 별도의 안 쓰는 창고에 보관할 수 있도록 해서 편하고 침실은 깨끗했다.
체크인도 했으니 당장 시원한 맥주가 땡긴다. 얼른 맥주를 마실만한 가게를 찾아나선다. 시칠리아의 도시 안쪽 가로수들은 네모네모 멈뭄미의 저주를 받았는지 이렇게 네모네모하게 커트되어 있다.
카르미네 교회 옆으로 쭉 걸어가니 시가지 절벽 광장이 나오고 절벽 밑으로 항구시설이 보인다.
광장에는 회전목마 비슷한 탈 것이 있다.
광장 끝에 전망이 좋은 바에 앉아서 맥주를 마신다. 시칠리아는 생맥주 파는데가 많지 않고 심지어 맥주집(Birraria)이라 붙여놓은 곳에서도 생맥주를 안 파는 곳이 많다. 그리고, 생맥주를 파는 집이라도 500ml에 5 euro로 생맥주와 로컬 와인의 가격이 비슷하다.
시칠리아도 이탈리아 본토처럼 식당들이 저녁 8시는 되어야 문을 연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하고 시간 맞춰서 저녁 먹으러 나간다. 아까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사람 몇 명이 어느 가게 피자 상자를 들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저녁먹으러 나와서 보니 그 피자집에 사람이 미어터지고 줄도 잔뜩 서있다. 이 동네 최고 맛집인 듯하지만 우리는 줄서서 사먹는 스타일이 아니니 다른 식당으로 간다.
아까 맥주를 마셨던 바 바로 옆의 식당이 맘에 들어서 들어갔다.
아직 바깥은 쌀쌀하니 따듯한 실내에서 먹는다.
일단 하우스 와인 1리터를 주문한다. 맥주에 와인에 하루라도 술을 안 먹는 날이 없는 것 같다. 그것도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시칠리아산 술들만 마셨다. 우리나라에선 마시기 힘든 시칠리아산 술들이 즐비하고 자전거를 타고 나면 시원한 술이 땡기는데 어찌하겠는가.
우리 정량은 세 접시다. 둘이서 두 접시는 모자르고 네 접시는 과하다. 세 접시를 나눠 먹으면 딱 배가 부르다. 샐러드와 알리오올리오 스파게티, 그리고 해산물 피자를 주문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안티파스토 - 프리모 피아또- 세콘도 피아또 순으로 먹으면 된다는데 세트 메뉴로 먹을 때나 이렇게 먹고 단품으로 먹을 때는 현지인들도 피자나 파스타 한 그릇 먹고 마는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자기 맘대로 먹으면 된다.
와인도 12도는 되는 술이라 마시다보면 한껏 취한다. 기분좋게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와서 골아떨어진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120km를 달렸다. 시칠리아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아름다운 풍경 덕에 자전거 타는 것이 너무 좋은 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