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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과 지니의 시칠리아 자전거 여행 4

치아카에서 터키인의 계단, 레알몬테까지 50 km

by 존과 지니

2017년 4월 30일


이동 경로 및 거리 : 치아카 - 레알몬테 50 km

총 이동거리 : 310 km


오늘은 치아카에서 레알몬테(Realmonte)까지 50 km만 달린다. 이틀 동안 120 km 씩 달렸으니 자전거 근육을 조금 쉬어주는 목적도 있지만 시칠리아에서 가볼만한 곳 중 하나인 터키인의 계단(Stairs of the Turks; Scala dei Turchi)을 보기 위해서 그 근처에 숙소를 예약했기 때문이다.


치아카의 B&B는 조식이 잘 나온다는 평이 많았기에 조식 포함으로 예약했다. 객실인 줄 알았던 301호가 아침식사를 하는 곳이다.


아침식사가 잘 나온다더니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각종 현지 과일과 여러가지 빵들로 전체 종류는 조식 부페만큼 많지 않지만 모두 퀄리티가 좋다.


이탈리아의 아침식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커피이다. 즉석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취향대로 뽑아먹으면 된다.


카페 라떼를 마시고 싶은데 메뉴에 없는 경우 비슷한 종류인 라떼 마끼아또나 카푸치노를 선택하면 된다. 반드시 카페 라떼를 먹어야 한다 라면 이게 또 애매한데 시칠리아의 카페에서 카페 라떼를 주문하면 간혹 코르타도가 나오는 곳이 있는데 왜 조금씩 다른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뭔가 홍보용 사진을 찍는 날인가보다. 숙소 주인 아저씨가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다.


과일을 좋아하는 지니님에겐 아주 맘에 드는 아침 식사다.


우리나라에 딸기가 끝물일 때 시칠리아로 출발했는데 시칠리아는 지금이 가장 딸기가 싱싱할 때다. 딸기가 싱싱하고 새콤달콤하다.


이제 아침을 먹었으니 슬슬 준비하고 치아카의 큰 길인 SP76번 도로를 따라서 바로 빠져나간다. 아니 빠져나가려고 했더니 저 앞에서 일방통행길 때문에 해변 쪽으로 돌아간다.


그래도 돌아가는 길이 지중해의 아침을 보여주니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 파란 하늘과 바다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SP76번 도로는 곧 SS115번 도로에 합쳐진다. 국도를 따라 쭉 달리는데 깃발이 펄럭거린다. 뭔가 특별한 것인가 했더니 그냥 어느 리조트 입구인 듯하다.


SS115번 국도를 타고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역시 강이다. 베르두라 강(Fiume Verdura)을 넘어가는데 SS115번 도로 외에 확실하게 포장길로 된 다리가 안 보인다. 강이라 하면 우리나라의 큰 강처럼 큰 물줄기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의 큰 강들은 하구둑과 보로 물을 가둬서 수량을 뻥튀기한 것이고 원래의 강은 이런게 정상이다.


오늘 목적지는 아그리젠토(Agrigento) 근처 Realmonte의 해변이다.아그리젠토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달린다.


국도라고는 해도 우리와는 교통 문화가 다르다. SS115 도로에 간간히 자전거 이용자 주의 표지판이 있고 자동차 운전자들은 대부분 우리를 배려해서 위협적이지 않게 추월한다. 이탈리아가 유럽에선 운전을 거칠게 하는 나라로 유명하지만 자전거 여행자에겐 한없이 친절하다.


드디어, 아그리젠토 외에도 우리가 가야할 레알몬테가 이정표에 표시된다. 아직 20 km 남았다.


중간에 카트 경기장이 있다. 자동차 경주가 인기있는 유럽에서 카트 경기장은 그리 드문 시설이 아니다.


길 가에 연못도 있다. 고르고 연못(Lagheoot Gorgo)이라 한다.


계속해서 SS115번 도로를 따라 간다. 바로 산 너머에 푸른 지중해가 있는데 해안 도로가 연결되질 않아서 바닷가로 달릴 수가 없다.


그래도 푸르른 초원과 숲에 다양한 기암절벽 산들이 펼쳐지니 지루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산지 도시들이 계속을 따라서 산 속에 있는 것과는 달리 시칠리아의 도시들은 언덕 꼭대기에 있다. 그런 도시 중 하나인 시큘리아나(Siculiana)를 지나쳐간다. 이런 언덕 위 도시들은 꽤 자주 볼 수 있다.


레알몬테 시내로 들어가는 큰 길 전에 샛길로 빠진다.


근데 어짜피 레알몬테로 들어가는 길이다.


레알몬테의 바에서 시원한 음료라도 마시면서 쉬려다가 동네 경로당같은 시끌벅적한 바를 보고선 그냥 지나가버린다. 레알몬테도 언덕 꼭대기에 있는 동네라 바닷가까지 쭉 내려간다. 우리의 목적지는 터키인의 계단인데 레알몬테부터 계속 이정표(Scala dei Turchi)가 보이니 그냥 따라가면 된다.


바다 가까이로 나와서 조금 달리니 푸른 지중해와 육지 사이에 하얀 것이 보인다.


드디어 터키인의 계단이 보인다. 현재 이 위치는 터키인의 계단이 잘 보이는 전망대 같은 곳이다.


바로 근처에 오늘 예약한 숙소가 있다. 오늘은 50km 정도 밖에 안 달려서 아직 오후 1시도 안 되었다.


주인집 모녀가 오늘 우리가 쉴 곳을 안내해준다. 가정집 같은 곳이라 외부에서 함부로 침입할 수 없는 곳이니 자전거는 우리 방 근처 벽에 세워둔다.


객실은 넓지는 않지만 깨끗하다.


짐을 풀어놓고 터키인의 계단을 보러 나선다. 아니 가기 전에 점심부터 먹고 싶은데 가는 길에 마땅한 식당이 없다.


터키인의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이라고 되어 있길래 내려가는데 마침 중간에 음식점이 하나 있다. 전망이 좋은 식당이라 비쌀 것 같은데 그래도 좋은 데서 먹고 싶으니 들어가본다.


터키인의 계단이 보이는 언덕 중간에서 코스 메뉴로 점심을 먹는다.


이런 데서 밥 먹는 것도 좋다. 우리나라는 이런 경치 좋은 곳에서 먹으면 음식값이 상당히 비싼데 여기 시칠리아도 바닷가는 비싸다.


자전거는 다 탔으니 먼저 맥주부터 한 잔 하고. 해산물로 된 안티파스토에 생선구이로 된 식사를 먹는다. 다 괜찮았는데 생선에 비늘이 조금 남아있던 것이 조금 실망이다.


밥먹고 좀 쉬다가 터키인의 계단 쪽으로 슬슬 내려간다.


해변을 슬슬 걸어서 터키인의 계단으로 간다.


바닷가에 유독 눈에 띄는 한 덩어리의 하얀 바위 절벽이 보인다. 이것이 터키인의 계단이다.


파도와 바람에 오랫동안 깎여나간 계단 모양의 지형이 독특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런데, 터키라는 말은 왜 붙어있을까? 지중해의 가운데에 있는 시칠리아는 예전부터 아랍 군대나 터키 해적들의 침입을 많이 받았는데 터키 해적들이 배를 정박하기 편한 이곳에 배를 대놓고 올라와서 쳐들어온 것이 터키인의 계단이라는 이름의 유래라고 한다.


비취색의 바다와 갚은 파랑색의 하늘과 어우러지는 극명하게 하얗고 특이한 모양의 바위가 인상적이다.


사람들도 다양하게 사진을 찍고 있다. 이 멋진 곳에 와서 사진을 남기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터키인의 계단에서 앉아있다가 슬슬 일어나서 해변을 걷는다. 터키인의 계단 자체가 무른 바위로 되어 표면에서 계속 하얀 가루가 묻어난다. 지니님 옷도 여기저기 가루가 묻어서 하얗다.


지중해의 바다는 맑지만 화려한 물고기는 많지 않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칙칙한 색의 물고기만 조금씩 보인다.


해안을 따라 쭉 걸어간다. 이제 터키인의 계단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해변 끝에는 이렇게 백사장이 있다. 마자타 해변(Majata Beach)이다.


시간은 아직 오후 3시, 터키인의 계단을 다 보았으니 가능하면 아르젠토의 하이라이트인 신전의 계곡도 보고 싶은데 대중교통이 없다. 집주인 아저씨께 부탁해서 택시라도 불러달라고 하려고 했더니... 흔쾌히 우리를 신전의 계곡 입구까지 데려다 주신다. 돌아가시면서 2시간 후에 데리러 오겠다고 하신다. 왕복 20 km가 넘는 길을 우리 때문에 두 번이나 오신다니 너무 감사하다.


신전 입구의 매표소에서 1인당 10유로인 입장권을 두 장 산다. 이 표는 조금 올라간 지점에서 검사하기 때문에 지금 버리면 안 된다.


이 곳을 즐기는 다양한 코스가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큰 길 위주의 코스만 볼 생각이다. 오른쪽에서 입장해서 왼쪽으로 큰 길을 따라 가면 내리막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광객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내려간다.


들어갔더니 언덕 위에 신전이 보인다.


기둥과 계단 밖에 없지만 신전이란 것을 알 수 있는 수준이다. 여기는 쥬피터(제우스)의 아내이자 가정의 여신인 쥬노(헤라)의 신전이다.


얼짱 각도로 보면 꽤나 그럴 듯하게 많이 남아있는 신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릴 때는 신화에서 쥬노(헤라)의 히스테릭하고 잔인한 모습이 엄청난 충격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바람둥이 남편(쥬피터=제우스)이 한 짓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다시 큰 길을 따라 내려간다.


멀리 아그리젠토의 모습이 보인다. 자전거로 저 언덕 위 동네까지 갔으면 힘들 뻔했다.


시칠리아에는 고양이들이 많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많이 보이지 않는 새카만 고양이들도 자주 눈에 띈다. 이 녀석은 신전의 계곡을 유유히 돌아다닌다.


신전의 계곡에는 단순히 신전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머리와 팔이 없는 석상들도 있고. 그 뒤로는 아그리젠토를 방어하던 성벽의 흔적도 있다. 성벽의 일부는 파내어서 묘지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제 신전의 계곡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콩코디아 신전이 보인다. 콩코디아(=하르모니아) 여신이 쥬노 여신이나 다른 신들보다 인지도는 낮지만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그리스 도리아 양식의 신전으로 신전의 모습을 거의 완벽히 유지하고 있어서 신전의 계곡이라 하면 대부분 이 신전의 사진을 보여준다.


지니님도 한 컷 찍어준다. 가장 유명한 신전이라 관광객들도 대부분 여기 모이기 때문에 독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다.


그리스 본토보다 잘 보전된 그리스 양식의 신전이라니 신전을 다 본 느낌이다. 안 그래도 그리스 쪽에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는데 가지 말까?

천사 모습을 한 청동상은 2011년에 만들어진 폴란드 조각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바다에서 융기되어 올라온 곳인지 신전의 계곡 곳곳의 바닥에 가리비 화석도 보인다.


다음엔 왠 집이 하나가 있다. 신전들이 보이고 절벽 아래로는 지중해가 펼쳐지는 이 멋진 곳에 누가 이런 집을 짓고 살았지?

1900년대 초에 신전의 계곡의 발굴과 복원을 주도했던 영국군 출신의 알렉산더 하드캐슬이란 사람이 실제로 살던 집이라고 한다. 특유의 색상 때문에 황금의 집( Villa Aurea)이라고 불린다.


알렉산더 하드캐슬의 흉상이 우리를 맞이한다.


집 안에는 사람이 살던 모습은 남아있지 않고 고대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 되었다.


황금의 집을 지나면 쥬노 신전보다 더 망가진, 몇 개의 기둥만 남아있는 헤라클레스 신전이 보인다.


헤라클레스 신전 옆으로 난 다리로 도로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면 가장 큰 신전이자 완성되지 못한 신전인 쥬피터(=제우스) 신전이 나타난다.


이 석상은 원래 신전 안쪽을 받치던 8m 짜리 기둥인데 원본은 박물관에 있고 실물과 비슷하게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커다란 석상과 대리석이 뒹구는 페허의 분위기가 독특하다.


신전 앞에 놓여있던 제단의 흔적이라고 한다.


몇 군데 들르지 않은 곳도 있지만 신전의 계곡의 주요한 것들은 다 보았다. 주인 아저씨 말대로 2시간이면 충분한 듯하다. 이제 출구 쪽으로 가서 주인 아저씨의 차를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리나 싶었는데, 주인아저씨의 차가 나타났다. 저 밑에 주차장이 있어서 거기서 기다린다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이탈리아말을 못하고 주인아저씨는 영어를 못하니 서로 다른 곳에서 기다린 듯하다. 어쨌든 꽤 먼데도 이렇게 데려다 주는 것만 해도 너무 고맙다.


집에 가는 길에 주인 아저씨가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한다. 숙소에 가서 샤워를 하고 나와서 주인 아저씨 부부와 함께 차를 타고 포르토 엠페도클(Porto Empedocle)의 피자집으로 간다.


시끌벅적한 피자집에 들어갔더니 주인 아저씨는 식당 직원들과 한바탕 인사를 한다.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식당이 시끌벅적해진다. 피자도 맛있다. 동네에서 알아주는 맛집인 듯하다.


신전의 계곡에 데려다 주신 것이 너무 고마워서 저녁 식사는 우리가 사려고 했는데 결국은 더치페이로 했다.

저녁을 먹었으니 이제 디저트 타임이다. 조금 춥지만 젤라또를 먹기로 한다.



통채로 케잌같이 썰어놓은 젤라또이다. 생긴 것과 똑같은 맛이 난다.


손님이 아닌 친구처럼 대해준 주인 아저씨와 사진을 남긴다.


포르토 엠페도클 거리의 동상과도 함께 사진도 찍는다. 이 동상의 엉덩이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데 과연?


시칠리아 최고의 하루였다. 터키인의 계단과 신전의 계곡을 모두 들릴 예정이었는데 일정이 애매해서 고민하던 것이 엘레오노라 가족들의 배려로 모두 해결되었다.

B&B의 서비스가 아니라 집에 초대한 손님처럼, 친구처럼 배려해준 주인 아저씨와 가족들 덕분에 시칠리아에서 가장 멋진 하루를 보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듯한 정을 함께 나눈 엘레오노라 가족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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