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몬테에서 젤라까지 100 km
2017년 5월 1일
이동 구간 및 거리 : 레알몬테 - 젤라 100 km
총 누적 이동 거리 : 410 km
원래 터키인의 계단과 신전의 계곡으로 만 하루 정도를 소요할 생각이었던 것을 어제 반나절 만에 모두 끝내고 오늘은 다시 자전거를 탄다. 이제 이틀만 더 타면 삼각형의 시칠리아 섬에서 남쪽 해안의 끝인 포르토팔로(Portopalo)에 도착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중간에 젤라라는 동네가 있어서 오늘은 젤라까지 달리고 쉬기로 한다.
어제 잘 먹고 푹 쉬어서 그런지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버렸다. 혼자서 밖에 나와 숙소 마당을 떠돌아다니다가 공기가 차가워서 다시 들어가서 쉰다.
아침 식사를 준비해놓고 주인 아저씨가 기다린다. 다른 곳에 비하면 조촐하지만 알찬 아침이다. 구색도 다 갖추었다.
시칠리아에서는 토스트 비슷한 바삭한 과자같은 빵과 누텔라를 주는 곳이 많다. 누텔라의 열량이 우리의 에너지가 되어줄 것이다. 커피는 당연히 나오는 것이고...
아침에 자주 먹게 되는 크로와상과 시칠리아 전통 과자라는 카놀리(cannoli)도 있다. 카놀리는 페스튜리 빵을 둥글게 말아 튀긴 것에 속을 크림이나 리코타 치즈로 채운 과자인데 튀긴 것과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지니님에겐 영 맞지 않는 음식이다.
식사를 하면서 주인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비록 말은 안 통하지만 번역 어플로 어찌저찌 이야기한다. 젤라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우리가 오늘 밤에 묵을 숙소까지 전화로 예약해주셨다.
빵과 과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이제 주인 아저씨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한다. 하룻밤 묵어가지만 너무 고마웠어요.
출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터키인의 계단도 한 번 더 봐두고...
근데 가는 길도 화려하진 않지만 비슷하다.
어제 신전의 계곡과 저녁먹으러 차로 두 번 왕복했더니 포르토 엠페도클(Porto Empedocle)로 가는 길이 익숙하다.
포르토 엠페도클을 벗어나서 SS115번 도로를 타니 지중해가 잠깐 나왔다가 들어간다.
오래된 폐허 왼쪽은 아그리젠토 시내, 오른쪽 바로 위에는 콩코디아 신전이 보인다.
언덕 위에 쥬노 신전을 마지막으로 신전의 계곡, 그리고, 아그리젠토를 벗어난다.
시라쿠사(Siracusa)까지 214 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 거리는 시라쿠사까지 바로 가는 거리로 우리는 해안 쪽으로 돌아가니 시라쿠사까지 270 km는 될꺼다.
시칠리아에는 오래된 폐허가 많다. 특히 변두리의 작은 마을에는 여기저기 건물이나 땅을 판다는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이 많다. 산 위에도 죄다 오래된 폐허들이다. 그래서 가까이서 보면 폐허가 많고 빈 집이 많은 것이 시칠리아의 동네 풍경이다.
풍력발전기가 보이면 그 동네는 바람이 쎈 곳이다. 다행히 대부분 뒷바람이라 큰 문제는 없다. 지금은 뒷바람이지만 시칠리아 섬을 일주해야 하니 언젠가 지독한 맞바람이나 옆바람을 맞을 것이라 짐작은 하고 있다.
자동차로 200 km는 열심히 운전하면 금방 갈 거리지만 자전거로는 참 힘든 거리다. 뭐 어떤가? 우리는 오늘 100 km만 달리고 쉴테니까.
SS115번 도로 옆으로 작은 도로가 나있지만 시칠리아에서는 가능하면 SS번 국도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SS번 도로가 골짜기를 고가도로로 건너는 동안, 작은 도로들은 오르락 내리락 있는 고생 다 한다.
리카타(Licata)라는 동네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길을 잘못 타게 된다.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벗어나서 해안길로 들어갔는데 어마어마한 오르막 내리막길의 연속이었다.
그 고생을 해서 내려온 곳이 하필 번잡하고 정신없는 시장 한복판이다. 간단한 길거리 음식이나 케밥은 많이 보이는데 식사할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설령 식사할만한 곳이 있다고 해도 여기선 먹고싶지 않다.
해안가로 찾아가보니 괜찮아보이는 깔끔한 간판이 보이길래 그 간판을 따라가니 깔끔한 레스토랑이 나왔다.
슈림프 라비올리와 해산물 리조또, 그리고 샐러드를 주문해서 먹는데 꽤 맛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시장통에 휩쓸리지 않도록 해안도로로 빠져나간다.
리카타의 해안도로는 바다에 착 달라붙어서 매우 멋진 풍경을 보여주지만 금방 SS115번 도로와 합쳐진다.
날이 꽤 더워졌다. 계속 SS115를 따라간다. 시칠리아에서는 마을이 아닌 SS번 국도에 가게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쉬면서 음료수라도 한 잔 하려면 보통 마을로 빠져야 한다.
그런데 슬슬 지칠 때 쯤, 쉴만한 바가 나타난다.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자전거 여행자들도 여기서 모두 쉬어간다.
그 중에서 폴란드에서 자전거 여행을 온 할아버지와 사진도 찍는다. 이 할아버지는 가게에서 만나는 자전거 여행자들과 모두 사진을 찍는다.
가게 근처에 팔코나라 성이 있다. 문화재라기보단 숙박시설로 영업하고 있는 듯하다.
계속해서 SS115번 도로를 따라 간다. 길 옆에 펼쳐진 보리밭이 노랗게 익었다. 봄에 느끼는 이 노란 보리밭의 느낌도 독특하다. 시칠리아에서는 맥주도 생산하니 보리밭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한참을 달려서 드디어 젤라에 입성한다. 금방 숙소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저 표지판은 젤라의 행정구역 상의 경계일 뿐이다.
조금 가다보면 길 옆 언덕에 2차 세계 대전에 쓰여진 벙커가 있다. 숙소 아저씨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못 보고 지나쳤을 것이다. 연합군이 시칠리아를 침공할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 이곳 젤라다. 벙커는 전쟁을 증명하듯이 젤라로 들어가는 입구에 아직 남아있다.
젤라 시내로 들어왔다. 숙소는 나름 큰 길가에 있으니 찾아간다.
오늘 묵을 숙소는 큰 길가인줄 알았더니 큰 교회 옆에 숨어있다. B&B 산티아고... 이름이 맘에 든다. 예상 체크인 시간에 딱 맞춰서 왔더니 주인 아저씨가 바로 안내해준다. 자전거는 현관 계단에 두고, 침실은 약간 좁지만 침대가 충분히 넓으니 좋다.
오늘 저녁은 맛있는것을 먹고 싶다. 주인 아저씨에게 주변 식당을 추천받아놓는다.
숙소 체크인도 했으니 짐을 두고 맥주 한 잔 하러 나간다. 숙소 바로 옆의 큰 교회는 Chiesa de San Giacomo라는 교회이다.
길을 따라서 걸어가본다. 젤라는 오래 전부터 사람이 많이 사는 큰 도시였다고 한다.
젤라 역시 언덕 위에 시내 중심가가 있고 언덕 아래는 항구와 해수욕장이 있다. 해수욕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오래되고 지저분한 느낌의 공원길을 따라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에는 들꽃이 만발했다.
저 아래 바다와 백사장이 보인다.
밑에서 봤더니 우리가 왔던 곳이 성벽같이 되어 있다.
지니님은 바다에 발 담그는걸 좋아한다. 난 발가락에 모래끼고 신발에 모래 들어가는게 싫어서 조심조심 다닌다. 해변
해변에 바가 있길래 앉아서 맥주를 한 잔 한다. 비라 모라티는 시칠리아에서 가장 흔한 맥주이자 가장 자주 마시게 되는 맥주다. 사람들이 와인을 주로 마셔서 그런지 맥주는 그렇게 다양하지가 않다.
슬슬 해가 저물어가니 저녁을 먹어야겠다. 다시 계단을 올라서 시내로 들어온다. 길가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던데 네 명이서 4인용 자전거를 타고 미친듯이 달린다. 숙소로 돌아가서 샤워와 빨래를 하고 저녁 먹으러 나선다.
숙소 주인 아저씨가 추천해준 첫 번째 식당은 오늘 쉬는 날이다. 그 다음 식당으로 걸어간다.
시내의 중심가라면 어김없이 성당(Duomo)이 있다. 성당 옆으로 움베르토 광장이 있어 동네 사람들이 저녁에 이 근처에 많이 모인다.
저녁 7시가 넘으니 제법 공기가 차다. 털옷이나 패딩을 입은 사람들도 많다. 따듯하게 입은 아줌마가 반팔 반바지에 방풍자켓 하나만 입고 있는 우리를 보고 Caldo?하고 물어본다. 뭔 소린가 했더니 caldo가 hot이란 뜻이다. 우리도 5월의 시칠리아가 이렇게 추울 줄 몰랐다.
여기는 고깃집이다. 성당 앞의 간판이 조그맣게 붙어있는 건물의 으슥한 안쪽에 들어가야 하는 집이라 길가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7시 반에 갔더니 아직 준비 중이라 8시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간다.
코스로 주문하고 일단 와인부터 한 잔 한다.
치즈를 이용한 전 같은 것도 나오고 익히지 않고 숙성한 수제 햄도 나온다. 과일과 함께 싸서 먹으니 맛있다.
따로 찍지 않은 햄은 하몽 비슷한 느낌이다.
시칠리아에서 먹게될 줄은 몰랐는데 에스카르고가 나왔다. 맛있다.
그리고 스파게티와 연한 돼지고기 스테이크도 괜찮았다.
이렇게 둘이 배부르게 먹고 와인 까지 50 유로가 나왔다. 이렇게 괜찮아 보이는 곳에서 코스로 먹어도 둘이서 50 유로 정도면 충분하다. 물론 동네 광장 근처 바에서 먹으면 둘이서 10유로에도 배를 채울 수 있지만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곳에서 가능하면 가장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시칠리아의 저녁 식사는 오래 걸린다. 저녁을 8시부터 먹기 시작해서 와인 한 병을 다 마시면서 느긋하게 먹다보면 1시간 반, 두 시간은 우습게 지나간다. 저녁을 먹고 나오면 10시 쯤 되니 숙소에 가서 잘 준비를 한다.
숙소 가는 길에 가게 안을 찍어본다.
자전거만 타는 날에는 딱히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지만 자전거를 타는 내내 보이는 시칠리아의 봄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