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니의 스위스 자전거 여행 1일 차

취리히에서 크와튼(Quarten)까지 83 km

by 존과 지니

2025년 09월 13일(토) - 스위스 이탈리아 자전거 여행 출발


아침 일찍 존이 자전거와 나를 태워서 인천공항으로 데려다줬다. 제2 터미널 단기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근처에는 카트가 이미 동났다. 집에서 가져온 미니 카트에 자전거 박스를 실어가서 수하물을 부치고, 환전도 하고.. 비행기를 타면 종일 꿉꿉할테니 일부러 아침에 샤워를 했는데 부지런히 이것저것 하다 보니 출국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땀이 났다;;


출국 수속을 끝내고 라운지로 갔더니 대기 줄이 장난 아니지만 배도 채워야 하니 기다린다. 라운지에서 양껏 먹고 마시느라 배가 터질 것 같다. 더워서 맥주랑 와인을 벌컥벌컥 마셨더니 취한다. 이틀간 잠을 적게 잤는데 취기가 오르니 너무 피곤하다.


어서 비행기에 타서 한숨 자고 싶은데..

출발이 지연됐다.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을 더 넘게 기다려서 드디어 비행기를 탔다. 리에 앉자마자 바로 잠들었다가 한 시간쯤 지나서 깼는데, 아직도 땅바닥이다.ㄷㄷ 알고 보니 중국의 군사훈련으로 중국 영공을 통과할 수 없어 지연된 것이다. 오 마이갓..


13시간 반쯤의 장거리 비행. 이놈의 이코노미 인생ㅠ 기내식과 잠만보의 콜라보로 시간이 모두 지나갔다. 내 자전거가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기대했다. 기도메타의 삶..ㅋㅋ


취리히 공항에 도착했다. 자전거도 박스에 조금의 손상도 없이 무사히 도착했다. 요즘은 자전거 가게에서 박스를 돈 받고 판다. 투덜댔지만 귀찮음 이슈로 존이 회사 근처 자전거 가게에서 2만 원이나 주고 사 왔는데 값어치를 하듯 s-work 박스는 매우 짱짱하고 폭이 넓었다. 그래서 페달을 분리하지 않아도 되는, 공구 하나를 덜 챙겨도 되는!!! 넘나 기쁜 상황이 펼쳐졌다. 나의 해외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번 안전, 2번 경량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조립하고 존이 알려준 & 구글지도의 자전거 도로를 따라 예약해 둔 숙소로 갔다. 숙소는 2 km 정도 떨어진 공항 앞마을(Kloten)에 있는 호텔로, 혹시나 자전거에 이상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해서 걸어갈 수 있을만한 거리로 골랐다.


원래는 오후 5시 반쯤 도착하는 일정이었는데, 비행기가 2시간 이상 지연됐고 자전거 조립도 하다 보니 8시 반이 넘어서야 공항을 나섰다. 해가 완전히 져버려서 길이 너무 껌껌하다. 잠깐 서서 지도를 보고 있을 때는 지나가는 자전거 오빠들이 괜찮냐고 물어보고 지나간다. 내가 유럽에서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차든 사람이든 라이더에게 호의적이기 때문이다. 구불구불 시야가 안 나오는 도로에서 나 때문에 차가 잔뜩 밀려도 경적 한번 울리지 않는다.


호텔에 도착해서 셀프 체크인을 마치고 방 안에 자전거와 짐을 들여놨다. 1층 로비에 생맥주를 마시려고 갔더니 키친이 지금 막 닫았다면서 바로 근처에서 맥주 먹을 수 있는 장소를 알려줬다.


바로 옆 코너에 햄버거를 파는 식당이 있어서 들어갔다. 한잔에 무려 15,000원이 넘는 생맥주를 두 잔이나 마셨다. 스위스는 처음인데 도착하자마자 높은 물가에 대한 체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마신다.


누가 나에게 '넌 뭘 할 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라고 물어봤었다. 아직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는 그때 3초 정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휴가 내고 유럽에서 자전거 탔을 때였어.' 그리고 지금 다시 유럽에 왔다. 8년 만에..




2025년 9월 14일(일)

[1일 차] Kloten ~ Quarten 84km / 누적 거리 84km



새벽부터 비가 온다고 하더니 아침까지 그치질 않는다. 조식이 6시부터 시작이라 일찌감치 일어났다가 어제 자전거 세팅이 이상했던 것 같아서 존과 보이스톡을 했다. 후드 앞부분이 밑으로 너무 내려가 기울어져 있었다. 그 부분은 분해도 안 했는데 무슨 일인지.. 조정해서 올려놨는데 원래보다 더 올라간 것 같다. 일단 탈만해서 그냥 타는 걸로..

공항 근처라 그런가 조식을 일찍부터 주는 점이 좋다. 오랜만에 이놈의 빵식 시작. 아침부터 뻑뻑한 빵이 잘 안 들어간다. 겨우겨우 1인분을 먹은 것 같다. 먹기 싫은 거 억지로 먹느라고 1시간을 소비했다.


비가 그쳤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해서 결국 8시 반쯤에 출발했다. 어제 공항에서 급하게 조립해서 그런가, 앞바퀴가 왼쪽으로 틀어져있다; 바로 고쳐 잡고 다시 출발.


땅이 좀 젖어있었지만 자전거 도로가 워낙 잘 돼있어서 달릴만했다. 보행자 겸 자전거 도로는 차도와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아스팔트가 깔려있어서 매끈했다. 마을에 들어가면 자전거 도로는 차도의 사이드로 내려오고 위쪽은 완벽하게 인도로 표시된다. 외곽에서는 다시 겸용이 되는데, 어차피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서 자전거 도로나 마찬가지다.


요렇게 저렇게 달리는데 비가 다시 온다. 휴게소에 딸려있는 편의점 앞에서 잠시 쉰다. 뭘 사서 마시려다가 비가 곧 그칠 것 같아서 다시 떠났다. 지도를 자세히 보질 않은 데다가 교차로에 갈래가 많아서 계속 멈춰서 구글지도를 확인했다. 로밍 안 했으면 정말 큰일 날뻔했다. 유심도 귀찮아서 로밍을 처음 해봤는데 귀차니즘의 승리여라...


30킬로도 안 달렸는데, 벌써 배가 고파진다. 아침 너무 조금 먹음 & 비 그치길 기다리느라 시간 흘러가버림.. 근처에는 마음에 드는 식당이 없다. 조금 검색해 보니 5킬로 더 가면 한식당이 있다!!!!! 곧 영업시작이라고 나오니 힘내서 달리자~


닫았다. 일요일은 오후 2시부터 연다고 쓰여있다....


그냥 바로 옆 디저트 가게에서 라떼마끼야또와 바클라바 2조각(피스타치오, 후무스)을 먹었다. 너무 달다.. 이가 다 썩을 것 같아서 다신 안 먹을 듯.. 화장실 간다고 하니까 엘베 타고 가라고 키를 줬다. 엘베 버튼이 없고 키를 꽂아 돌려야 눌리는 신기한 시스템.



그리고 쭉 달렸다. 비가 점점 그치면서 하늘이 맑아졌다. 산과 들판이 보이니 제법 스위스에 온 느낌이 난다.


휴가 전 바쁘게 일하느라고 가민에 지도를 미리 다운로드하는 것조차 깜빡했다. 게다가 혼자 다닐 때는 루트를 원래 잘 넣지 않아서 그냥 GPS 레코더가 되어버린 나의 가민..

구글 경로에 의존해서 타고 가는데, 자꾸 비포장 도로가 나타나서 승질이 난다. 피하다 피하다가 더 이상 에둘러 갈 수 없어서 결국 잘잘한 자갈밭을 타고 강변을 달린다. 자전거 경로라고 표시되어 있는 게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오늘은 존이 2019년도에 혼자 달렸던 길과 거의 비슷하게 가고 있다. 스위스에서 공중화장실에 가려면 1프랑/1유로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데,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캠핑장의 화장실 정보를 미리 알려줘서 아주 잘 다녀왔다.


비포장길로 캠핑장을 벗어나 계속 자전거 표지판을 따라갔더니 아주 큰 호수 옆에 차도와 완벽하게 분리된 진짜 자전거 도로가 있다. 군데군데 터널이 있는 게 북한강 자전거길이 생각났다.


이 어이없는 자전거 도로는 아주 급경사로 나를 안내했는데, 똑같은 지점에서 존이 사진 찍은걸 나중에 보니 좀 웃겼다. 역시나 말도 안 되는 경사라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호수가에서는 자전거 도로로 완전히 빠져버리니 미니마트조차 만날 수 없다. SPAR라는 편의점은 일요일에 전부 닫나 보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힘들어서 그냥 호수 앞 매점에 들어갔다. 가민을 보니 81km. 일단 제로콜라 하나 때리고, 호수뷰를 바로 앞에서 감상했다. 맑은 날씨의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무지 많았다.


4시 반이 다 되어가서 숙소를 찾으려고 부킹닷컴을 켰다. 원래 플럼(Flum)에서 자려고 했는데 숙소가 없다.. 잘만한 곳은 2km or 31km.. 오늘은 지치고 배고파서 그냥 코앞에 있는 호텔로 예약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국도변에 덩그라니 있는 레스토랑이 딸린 호텔이다.


바로 가서 체크인 후, 생맥을 한잔 들이켰다. 여긴 잔이 안 시원해서 그런가, 시원한 느낌이 별로 없다. 할맥 와서 벤치마킹 좀 해라..



직원들은 너무 친절하다. 자전거를 따로 보관할 수 있는 장소를 안내해 줬다. 뭔가 겨울철 스키장비 보관장소 같다. 전기자전거 두대가 이미 파킹되어 있다.


방에 가서 씻고, 옷 빨아서 널어놓고, 1층 레스토랑으로 갔다. 어차피 먹을 곳 여기뿐.. 야외 테라스의 뷰가 대단하지만 날이 쌀쌀해서 바깥에 앉은 사람은 없다.


대신 풍경이 아주 잘 보이는 실내의 창가 자리에 앉았다. 유럽에는 창가에 항상 꽃이 있다.


내 안에서 닭가슴살과 슈니첼이 싸우다가 슈니첼이 이겼다.

사이드가 각각인 메뉴가 좀 있길래 하나 골랐는데 안 튀긴 돼지고기 목살 같은 게 나왔다. 넘모 좋았다!!!! 사이드로 익힌 채소와 파스타도 낭낭하게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점점 해가 지고 있다. 술은 안 먹었다. 어제 맥주 2잔 마시고 그냥 잤더니만 오늘 길 찾느라 너무 멈추고 시간을 허비했다. 오늘 밤은 지도를 볼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존과 지니의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