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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의 스위스 자전거 여행 3일 차

알불라 패스 (Albula pass)

by 존과 지니

2025년 9월 16일(화)

[3일 차] Thusis ~Albula pass ~Pontersina, 69km / 누적 거리 224km



간밤에 비가 내렸는데 다행히도 아침에 그친 것 같다. 비가 오면 아무래도 노면이 미끄럽고 브레이크 제동력이 낮아져서 자전거 타기에는 아주 안 좋다.


7시에 조식을 준대서 일어나서 내려갔는데, 아뿔싸.. 뷔페식이 아니다. 커피와 오렌지 주스 한 잔, 크로와상과 번 하나씩 그리고, 치즈 덩어리와 버터&쨈. 오늘은 Albula pass를 넘어가야 해서 든든히 먹고 싶었는데 나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계란을 하나 달라고 하니 수란보다도 덜 익은 계란이 나왔다. 껍질을 반으로 쪼개서 숟가락으로 퍼먹었는데, 원래 이렇게 먹는 음식인 것 같다.


이제 출발이다. 어제 산책하면서 봐놨던 길로 가려다가 구글 지도가 안내해 주는 길로 가봤더니만 자동차 전용도로로 보이는 엄청난 터널이 나왔다. 구글, 네 이놈! 약간 내려온 곳을 다시 올라가서 어제 봤던 길로 다시 라이딩 시작.


이른 새벽까지 비가 내렸는지 군데군데 아직도 바닥이 젖어있다. 날이 흐리긴 하지만 더 이상 비가 오지는 않을 것 같으니 다행이다.


알불라 패스(Albula Pass) 자체가 옛길로 가는 길이라 초입이 좀 가파르긴 했지만 그럭저럭 넘어갔다. 초반은 3번 국도라 차가 좀 있다. 다행히도 내가 가는 방향은 괜찮은 편.


줄리에르 패스 통행 가능 안내가 있다. 줄리에르 패스는 중간에서 알불라와 나눠지는 고갯길이다.


중간에 옛길 없는 터널이 2개 나왔다. 매우 불안했지만 다행히 터널 안 사이드에 인도가 있었다. 연석으로 단차를 줘서 꽤나 안전했다.


3번 국도가 끝나니 작은 마을이 나왔다. 알불라 패스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표지판이 잘 되어있다.


와우, Albula에 도착했다. 이렇게 빨리? 근데 여긴 1000미터도 안 되는 그냥 입구 마을이었다.


조식이 부실했으니 식당을 먼저 갔다. 오늘의 수프와 닭가슴살&샐러드, 제로콕을 시켰다. 살이 좀 빠졌으면 좋겠다..=_=


호텔 이름처럼 이 마을에서 알불라 패스와 줄리에르 패스가 나누어진다. 둘다 생 모리츠로 가는 길이다.



이제 진짜 Albula pass로 간다. 국도를 벗어났으니 차가 좀 없길 기대했지만 은근 차들이 다닌다. 풍경이 좋은 곳이라 드라이브를 위해 일부러 이 길로 가는 것 같다.


가파른 경사와 완만한 언덕길이 반복된다. 넘모 힘들다. 요즘 자전거를 많이 타지 않은 데다가 자전거에 짐을 매달아서 그런 것 같다. 길은 꽤나 탈만 했는데 그냥 내 체력이 아주 거지 같은 게 문제라 힘들어지면 주저하지 않고 계속 쉬다가 간다.


중간 마을인 Bergun에서 딸기 요거트와 바나나, 제로콕을 사 먹었다. 제로콕이라니...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고ㅋㅋ 가방이 작아서 물을 많이 지고 갈 수가 없다. 가는 동안 목이 마르지 않도록 음료수를 미리 최대한으로 마셨다. 바로 옆에 또 다른 자전거 여행자도 마트에서 산 빵으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이 오빠는 물통이 3개나 되네..


하도 마셔댔더니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여긴 공중화장실도 없는 산골짜기 작은 마을. 마트에 물어보니 옆에 빵집으로 가라고 했다. 문짝에는 1프랑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내가 마트에서 온 걸 봤는지 빵집 할매가 그냥 이용하라고 했다. 고마워요..


시간은 벌써 2시가 훌쩍 넘었고, 다시 출발해서 점점 산으로 올라간다. 곳곳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위스의 기찻길이 보인다. 기차 타고 올라가면 참 편하겠지...^_^


지금의 이 거지 같은 체력으로 해발 2,000m 이상을 올라가려니 힘들다는 단어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괴롭다. 젊은 날(?) 쌩쌩한 체력으로 유럽에서 자전거 타던 꽃 같은 상상만 하다가 왔나 보다. 해가 지기 전에 정상까지 올라갈 수 없으면 어떡하지? 그런 건 없다. 무조건 가야 한다. 어차피 여기엔 숙소도 없다.


해발 고도 1,500m를 넘어가니 풍경이 푸른색에서 누런색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리고 잠시 맑아서 후덥 하려고 했던 하늘도 다시 흐려지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올라갈수록 온도가 낮아지는데 해가 점점 가려지니 쌀쌀해진다. 자전거를 계속 타야 몸에 열이 나는데 자꾸 쉰 탓일까..

아주 가파른 경사가 아닌데도, 36T 1단으로 계속 가는데도!! 조금이라도 경사가 세지면 또다시 쉬곤 했다. 그래도 좀 쉬면 낫다. 어떨 때는 200m 겨우 가고 쉬었다. 간식을 먹었던 Bergun에서 여기까지 10번은 쉰 듯. 나는 왜 닭가슴살을 먹었던 걸까...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자전거 여행자를 바라보며 나도 다시 한번 힘을 내본다.


하고자 하면 못하는 일은 없다. 수많은 휴식 끝에 결국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멋진 인증샷을 찍으려고 했지만 뭔가 대단한 표식은 없었다. 춥기도 해서 대충 그냥 찍었다.


알불라 패스의 정상은 무려 2,315m, 현재 기온은 영상 7도.


나와 같은 시간에 반대쪽에서 자전거를 타고 올라온 두 명의 남자들도 올라오자마자 주저앉아 쉬었다. 그들의 인증샷은 내가 찍어줬다.


정상의 레스토랑에서 라테 마키아토를 마시며 뷰를 감상하고 사진을 찍었다. 어우, 추워.. 그래도 이 풍경은 보고 가야 할 것 같다. 산만 내려가서 쉬려고 숙소를 예약했는데 비슷한 이름의 숙소가 두 개가 있어 실수를 해버렸다. 예상한 곳보다 12km 더 가아한다. 총 22km지만 내리막 위주니 가봐야겠다.


내려가는데 헤어핀과 경사가 장난 아니다. 나라면 이쪽으론 못 올라왔을 것 같다.


시리다 못해 감각이 없어진 손을 부여잡고 Albula pass의 끝에 내려와서 국도를 달리는데... 이곳 차도는 갓길이 거의 없는 데다가 생모리츠로 가는 길이라 차량통행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 중간에 자전거 도로로 빠졌는데 간간히 있는 비포장 도로가 생각보다는 탈만했다. 어제 임도를 타서 그런지 지금 힘들어서 정신이 없는 건지 잘 모르겠다. 빨리 숙소에 가서 좀 쉬고 싶다.


지친 몸으로 힘들게 달려서 마을 입구를 갔는데 왜 이렇게 마을이 오르막 꼭대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1km가량 남겨두고 내려서 끌바를 했다. 곧 공사 구간 때문에 차도는 거의 1차선이 됐기 때문에 어차피 걷는 게 나은 것 같다.


숙소 체크인을 하면서 느낀 것은 스위스 사람들은 대게 친절하다는 것이다. 물가가 높으니 월급도 높아서 그런가...=_=


짐을 놔두고 바로 맥주 한 잔을 마시러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스웨덴 출신 직원이 추울까 봐 담요도 가져다주고 사근사근하게 말을 많이 걸어줘서 고마웠다. 다 마시고 방으로 돌아가 샤워&빨래를 했다. 이 호텔은 뉴질랜드처럼 화장실에 열선 히터가 있다. 옷이 잘 마를 것 같다.


7시를 훌쩍 넘겨서 호텔에 도착해서 씻고 이것저것 정비를 하니 거의 9시가 됐다.

저녁 식사를 하러 1층 레스토랑에 갔는데 영업시간이 거의 끝나가는지 나를 받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받아줬다.


홈메이드 파스타와 익힌 채소가 곁들여진 립을 먹었다. 좀 비싸다 생각했는데 소고기 립이었다. 양도 괜찮고 우리나라 갈비찜이 생각나서 맛있게 잘 먹었다.


오늘 너무나 힘든 하루였지만 첫 번째 고비인 알불라 패스를 넘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양치를 하고 누워서 내일 지도를 보는데, 뭐지... 왜 또 올라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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