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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의 스위스 자전거 여행 4일 차

베르니나 패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by 존과 지니

2025년 9월 17일(수)

[4일 차] Pontersina ~ Bernina pass ~ Albosaggia 81km / 누적 거리 305km



숙소에서 조식을 7시 15분부터 준다고 해서 시간 맞춰 일어났다. 여기도 해발 1,700m 정도 되니 현재 기온이 영상 2도다. 으, 추워... 취리히에서 출발한 이후로 고도와 위도의 콜라보로 콧물이 계속 난다. 어젯밤에는 코가 막혀서 깊게 못 잤는데 아침부터 노란 콧물이 덩어리로 나온다. 바로 옆 쿱(COOP)이 아침 8시부터 오픈한다니까 조식 먹고 신라면을 파는지 가봐야겠다.


우와~ 이제껏 먹은 유럽 조식 중 역대급 최고다. 오렌지를 직접 짜서 먹을 수 있고 듣도보도 못한 온갖 종류의 햄과 치즈, 시리얼, 수제요거트에 과일까지 진짜 다양한 음식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져온 접시는 진짜 송진 내 그 자체다. 커피와 크로아상, 수제요거트와 계란에 오늘은 과일까지... 날이 너무 추워서 천천히 먹고 준비한다. 배가 너무 불러서 쿱은 안 갔다.


10시가 다 돼서야 출발한다. 골짜기까지 햇빛이 들어와서 체감온도는 그닥 낮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시작하자마자 600m 정도 업힐이다. 구글 지도의 자전거 경로는 임도 느낌이 뿜뿜 하다. 경사가 급하지 않으니 일단 국도로 가본다. 3번 국도에는 생각보다 차가 많지 않아서 쉬엄쉬엄 올라갔다.


중간에 잠깐 쉬고 있는데 관광버스에서 내린 여행객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나에게 대단하다고 엄지척을 해줬다. 나도 힘들어유...ㅎㅎ


굽이굽이 있는 기찻길 옆으로 3번 국도를 타고 계속 올라갔다. 아니 도대체 왜 업힐이냐고! 어제 나 알불라 패스를 넘었다니까??


두둔, 이게 뭐지? 베르니나 패스(Bernina Pass)? 나 어제 정상을 지났는데요? 음, 그러니까 알불라 패스는 정상 능선의 시작일 뿐이었나.. 이게 마지막이면 좋겠다. 도로 통제여부가 입구에 표시되어 있다. 신경을 안 쓰고 다녔는데, 아마 눈 오는 겨울시즌이 아니라 항상 오픈되어 있는 것 같다.


Bernina pass의 정상에 도착했다. 알프스의 또 다른 고개인가 보다. 어쩐지 어제 호텔 이름이 Hotel Bernina였다...; 사람도 많고 너무 추워서 대충 있다가 살살 내려갔다.

<존의 부연 설명: 베르니나 패스는 지니님이 어제 넘었던 알불라 패스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악 열차 노선인 베르니나 익스프레스가 지나가는 루트다. 사진 왼쪽 건물 뒤쪽으로 Ospizio Bernina 기차역이 있다.>


베르니나 패스(Bernina Pass)는 해발 2,330m라 알불라 패스(Albula Pass)보다 조금 더 높다. 그래서 오늘 다시 알프스의 고개 정상을 넘었다. 정상은 역시 춥긴 하지만 어제와는 다르게 날이 대단히 맑아서 풍경이 훨씬 좋다. 사실은 어제보다 덜 힘들게 올라온 이유가 클 수도 있다. 이제 진짜 핑크빛 내리막만 나오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드디어 내리막! 스위스의 포장도로는 아주 비단길이라 내리막에서도 부담이 없다. 게다가 반대방향에는 차가 거의 없어서 더더욱 신나게 내려갈 수 있었다.


내려가는 남쪽 방향은 내가 올라온 곳보다 훨씬 가파른 경사였는데 여길 자전거 타고 올라오는 동네 주민들이 꽤 있다. 커브길이 많아서 뒤에 차가 10대씩 밀려도 차들은 절대 빵빵거리지 않고 슬금슬금 뒤따라 갈 뿐이다. 특히나 헤어핀 부분은 정말 가파른 구간이 많아서 나였다면 이쪽으로는 올라오지 못했을 것 같다.


콧물이 계속 나와서 내리막길 중간에 있는 식당에서 라떼마끼야또를 먹었다. 아직 스위스인데 식당 주인은 이탈리아 말을 한다. 이탈리아 국경 부근에 살면서 스위스에서 일하면 개이득일 거라고 계속 생각했는데 아마도 그런 케이스인 것 같다. 테라스에 앉았는데 햇빛이 느무느무 따뜻하다.


여유를 부리다가 다시 내리막을 가는데 중간중간 짧은 공사구간이 나와서 살살 타고 갔다. 이렇게 좋은 도로를 유지하려면 쉬지 않고 보수를 하긴 해야 할 듯.


내려오는데 신기하게 기찻길(?)과 나눠 쓰는 구간이 있다. 바퀴가 홈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철로를 수직으로 통과한다. 홈을 피하느라 간혹 이상하게 달려도 차들은 전부 나를 기다려준다.


쉬엄쉬엄 내려오다 보니 국경을 지난다. 이곳을 지나면 이제부터 이탈리아가 시작된다. 같은 EU라 따로 출입국 심사를 하지는 않지만 통신사가 바뀌는지 핸드폰에서 이탈리아 로밍 안내문자가 날아올 뿐이다.


티라노(Tirano)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SS38 국도를 달리는데 차가 넘모 많다. 우회길도 없이 골짜기를 따라서 주요 도시를 잇는 주 도로니 그럴 수밖에... 이탈리아로 넘어와서 드디어 차 경적소리를 들었다...-_- 그리고 미리 봐둔 식당에서 시그니처 메뉴인 피초케리와 채끝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맛있지만 양이 넘모넘모 많아서 겨우 반 정도 먹었다. 여기에다 음료까지 먹어도 어제 스위스에서 먹은 저녁식사의 반값이다. 30km 떨어진 마을의 숙소를 예약하고 마음의 고향 이탈리아에서 자켓을 벗은 채로 다시 출발~



차가 너무 많은 국도로는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어서 식당 건너편의 철도 옆의 한적한 도로로 빠지기로 했다.


비포장이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올~ 역시 이탈리아!! 끝나는 길까지 100% 아스팔트였다. 스위스처럼 자전거 표시도 잘 되어 있어서 지도를 보지 않고 가기 좋았다. 은근히 내리막이라 대체적으로 편했지만 아무래도 작은 길이라 간간히 참을만한 짧은 업다운은 있었다.



자전거에 패니어를 잔뜩 매단 할배가 '차오~' 하는 걸 보니 이탈리아가 맞긴 한가보다. 할배 뒤를 졸졸 따라가다가 동네 약수터(?)에 같이 멈춰 물을 마시고 물통에도 채우고 있으니 다른 자전거 여행자들도 모두 멈춘다.


누가 말을 건다.'너 어제 알불라 패스 지나갔지? 우리 어제 너 봤어. 니가 더 빠르네?' / 아마도 나의 꽃분홍 고어텍스 자켓과 오렌지빛 헬멧을 기억하나 보다.;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이제껏 해외 자전거 여행을 하는 동양인 여자가 혼자(아니, 함께라도..) 다니는 걸 본 적은 없다. 그래서 대답해 줬다. 'Now, you are (faster)!'


자전거 도로는 강을 따라가다가 다리를 건너서 나무 그늘 아래와 옥수수밭을 지나갔다. 길이 끊기면 어쩌나 하는 찰나에는 항상 안내 표지판이 이어진 경로를 계속해서 안내해 줬다.


Sondrio 아주 외곽에 있는 Agritrismo가 조식 포함에 저렴하기까지 해서! 아까 Tirano에서 예약해 놨다.


계속되는 자전거도로(인도 겸용)를 달려서 숙소에 왔다. 엄청난 대문을 지나 숙소에 들어갔는데 주인장은 영어를 거의 못한다. 눈치코치로 대충 방 키를 받고 딸려있는 식당의 오픈시간을 물어보니 오늘은 끝났다고 한다. 뭐라고?!! 그럼 여기 있는 이 수많은 사람들은 뭐예요? 영업시간을 찾아보니 오늘은 식당이 점심에만 여는 걸로 되어 있다.


일단 짐을 놓기 위해 체크인을 했다. 가격은 아주 저렴했는데 방은 굉장히 컸다. 보통 가족들이 와서 묵는 곳인 것 같았다. 바깥 정원에도 거의 아이들이 있는 가족단위의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짐을 놓고 다시 나갔더니 점심을 먹고 시끌벅적 오후를 즐기던 손님들은 다들 집에 갔는지 아주 조용해졌다. 일단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장바구니를 매고 1km 거리에 있는 슈퍼로 걸어갔다. 유럽의 마트는 비닐봉투를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 뉴질랜드에서 사서 썼던 장바구니를 존이 미리 챙겨줬는데 아주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걸어가는 길에는 인도가 없어서 차도 사이드로 살살 걸어갔다. 복잡한 것이 싫어서 시내가 아닌 외곽의 숙소를 잡았는데 여기에는 영업하는 식당이나 바가 없다. 마트도 없어서 근처의 조그마한 슈퍼로 가는데 이게 과연 열려 있을지 모르겠다.


다행히 슈퍼가 열려있긴 했는데 완전 구멍가게다... 3시쯤에 점심을 뽀지게 먹어서 다행이다. 맥주, 우유, 바나나, 방울토마토를 샀다.


해가 지기 전에 빨리 걸어와서 방 냉장고의 냉동실 칸에 맥주를 넣어놓고 샤워&빨래를 했다.


맥주가 상온에 있던 거라 많이 시원해지지 않았을 것 같았는데... 오 개시원!! 이번 여행 중 현재까지 가장 시원한 맥주!! 숙소가 좀 애매했는데... 넓고 깨끗하고 주방에 조리기구가 있어서 그걸로 병뚜껑도 땄다. 뷰도 좋고, 이 정도면 만족^_^


아.. 코가 자꾸 막히더니 오늘은 기침도 나온다. 이탈리아에 넘어왔으니 내일은 감기약을 좀 사 먹어야겠다. 그리고, 아그리투리스모는 내가 TV에서 본 토스카나 느낌이 전혀 아니라 웬만하면 다시 예약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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