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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의 이탈리아 종단 자전거 여행 2일 차

by 존과 지니

2025년 9월 19일(금)

[6일 차] Lecco ~ Treviglio 102km / 누적 거리 502km


7시 알람에 겨우 일어났다. 약효가 있었던 건지, 이틀밤을 못 자서 그랬는지 기절하듯 잠들었다. 가을 날씨가 건조해서 그런가 옷을 대충만 짜놔도 아침엔 바짝 말라있다. 내 코막힘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겠지...

조식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매일 먹는 조합 - 씨리얼+오트밀에 무가당 요거트 비벼 먹기, 커피, 크로아상과 버터, 있을 경우 바나나 or 달걀. 어우 송진내..


스위스에서는 다리 토시를 하고 다녀서 잘 몰랐는데 이탈리아로 내려오고 날이 더워져서 토시를 버렸더니 다리에 못 보던 게 생겼다. 오십견 위아래로 보라색 멍이 생겼는데 어디 부딪혔겠거니..하고 신경을 안 썼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멍이 허벅지와 종아리 쪽으로 점점 번지고 있었다. 존한테 사진을 보내주니 근육파열 전조 증상일 수 있다고 했다. 갈색 오줌이 나오는 순간 당장 라이딩을 멈추고 며칠은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하니 오늘부터는 살살 단거리만 가기로 한다. 다행인 건 당분간 큰 업힐이 없다.


여행 초반인데 아침에 벌써 게을러지는 것 같다. 출발과 동시에 근처에 있는 자전거 수리점에 찾아갔다. 허공에 펌프질을 하면서 칙칙 소리를 내니까 아저씨가 알아듣고는 튜브에 공기를 주입해 준다. Psi를 묻지도 않고 손으로 계속 만지작 거려가며 알아서 넣어줬다. 츤츤하면서도 프로 냄새나..


이곳 Lecco는 엄청 큰 호수가 있고 그 호수를 보기 위해 관광객이 많이 몰린다. 호수 앞으로 나가서 자전거 도로를 타본다. 호수가 엄청나게 크지만 별 감흥은 없다.


공사 구간에서는 일하는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우회해 간다.

자전거 도로는 포장과 비포장을 계속 반복했는데 그럭저럭 달릴만했다. 어제까지는 훈련이었는데 오늘은 레알 여행이다. 해가 넘모 따땃하다.


다시 달리기 시작한 강변의 자전거 도로는 거의 비포장이었다. 돌이 자꾸 휠에 맞아 튕기니 스포크가 걱정이 된다.



18km 지점에 마을이 나와서 카페에서 음료수를 먹으며 쉬었다. 음료는 한 번에 기본 2개씩!!


강변의 자전거 도로를 계속 따라가기 위해 다시 출발했다. 노면이 꽤나 괜찮은 구간이 계속됐지만 언제 비포장이 나올지 몰라서 마음 한편은 항상 불안하다.


애매한 자전거 도로는 중간에 쓰러진 나무 때문에 엄청난 경사의 돌계단으로 우회하게 만들었다. 이 가파른 경사로 짐 달린 자전거를 가지고 올라가니 너무 힘들었다. 특히 큰 돌멩이와 이끼로 된 바닥 때문에 클릿이 너무 미끄러웠다.


어째 저째 올라가니 포장도로가 나왔다. 이번 여행에서 지금까지 땀이 제일 많이 난 순간이다.

도로로 나오자마자 자전거 여행자 2명을 만났는데 지나온길 어떠냐고 묻는다. 사진을 보여주면서 절대 가지 말라고 했는데 자기들은 갈 수 있단다. MTB가 아닌 일반 여행용 자전거였다. 'Ok, go and try. Good luck!'


자전거 도로가 짜증 나서 차도 샛길을 타기로 한다. 밀라노에서 멀어지니 SP도로가 이제 탈만 하다. 다음 마을에 들러서 중국식당을 갔다.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볶음밥과 칠리새우까지 주문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먹는 밥이 너무 좋은데 입맛이 없어서 목구멍으로 잘 안 넘어간다. 20-30번을 씹다가 제로콕으로 겨우 삼킨다. 중국인들은 영어도 잘하니 소통이 대단히 편했다. 이탈리아로 넘어와서 여기 롬바르디아에는 일식당만 그득하던데.. 힘내라 대륙!!


차도를 타고 달리다가 마을 부근에서 생긴 자전거 도로를 타고 다음 마을 시내에 진입했다. 당연히 비포장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이제 비포장 돌길에 익숙해지는 내가 싫다.


목적지인 Treviglio까지 10km 남은 지점에 와서야 제대로 된 포장도로를 만났다. 사실 동부해안으로 가려면 브레시아(Brescia) 근처로 질러가는 편이 나은데, 큰 도시 주변은 차가 많기도 하고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와서 강변길을 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생각보다 더 아래로 내려와 버렸다.


기찻길 아래에 굴다리 2개가 있는데, 왼쪽은 차량 전용, 오른쪽은 사람&자전거 전용이다. 음, 아주 바람직해~


예약해 둔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맥주를 한 잔 마신다. 나의 빅데이터에 따르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좀 더 friendly 한 맛이 있다. 맥주를 건네주며 '오늘 길고 힘들었지?' 해주는 한마디가 고맙다.


샤워&빨래를 해놓고 마을을 둘러봤다. 시내는 어떻게 생겼는지 저녁으로 먹으면 좋을 식당이 있는지 등을 살펴본다. 중심가 안쪽은 생각보다 작아서 비슷한 골목길을 요리조리 빙글빙글 돌았다.


마땅한 곳이 없어서, 숙소 건너편의 레스토랑으로 오픈시간에 맞춰서 갔다. 안티파스티, 프리모, 세컨디, 와인과 커피까지 나오는 코스메뉴가 25유로다. Coperto도 포함이니 개이득~ 각각 선택해서 주문하니 봉골레 스파게티가 먼저 나왔다. 음.. 면을 삶아 놓은 건지 오버쿡이군.


아? 안티파스티가 안 나왔는데.. 직원 언니를 부르니까 두 가지 중 골라야 한다고 했다. 시킬 때 말을 했어야져!! 와인도 왜 안 주나여? 주세요, 레드와인으로!! 메뉴판에는 물도 준다고 되어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것도 말 안 했다고 안 줬네, 참나..

그래서 가장 처음에 나와야 할 참치 가르파쵸를 두 번째로 먹었다.


그다음에 세컨디로 소고기.. 좀 얇긴 했지만 질기지 않고 맛있었다.


마지막 커피는 라떼마끼야또를 달랬더니 카페마끼야또가 나왔다. 젠장..이탈리아에 사는 걸 고맙게 생각해라. 너는 코리아였으면 3번은 짤렸어. 마지막까지 이 집은 카드가 2개나 안 먹혀서 처음으로 현금을 냈다. 제발 어디 가서 아까처럼 K-drama 좋아한다 소리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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