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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소설 Dec 10. 2017

물안개

'몽상가'에 대하여

호숫가엔 물안개가 자욱했다

물안개는 마치 주전자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김 같았다. 호수 위에 둥둥 떠다니는게 아니라, 물 안쪽에서 바깥으로 스르르 피어오르고 있었다. 뿌연 습기는 호수 품을 벗어난 뒤 공중으로 날아가버렸다.

긴린코(金鱗湖). 온천물과 계곡물이 함께 흘러나온다는 호수다.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만나는 곳에선 안개가 피어올랐다. 안개는 시야를 가로막는다. 건너편에 있는 호텔마저 어지럽게만 보인다. 차라리 호숫물에 비친 호텔이 또렷하다고 느낄 정도다.


ⓒ Grant Fuller, watercolor trees in the mist(Youtube)


성운은 가수다.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른다. 녹음실은 방구석. 간간히 라이브 바에 출근하곤 한다. 라멘집에서 파트타임 알바도 한다. 홍대 방구석 월세를 낼 정도다. 지금까지 낸 곡은 열 세곡. 두 개의 미니 앨범을 냈다. 반응은 뜨뜨미지근. 그래도 타이틀곡 하나는 빛을 봤다. 집념이랄까, 우연이랄까.

성운이 근무하는 라멘집. 그날 사장님은 라멘을 펄펄 끓이고 있었다. 성운이 하는 일은 서빙과 설거지. 음식을 만드는 일만 빼고 모든 일을 다 한다. 그 라멘집에 유명 아이돌 갤럭시가 왔다. 갤럭시라니, 성운의 머리가 핑핑 돌았다. 자기도 모르게 갤럭시에게 다가가, 저기요 라고 했다. 네? 갤럭시가 물었고 성운은 말했다. "제 음악 좀 들어봐주실래요?"

그렇게 해서 퍼진 성운의 노래. 유명 아이돌인 갤럭시는 유명 연예인이 진행하는 유명 라디오에 출연해 성운의 노래를 불렀다. 그것도 라이브로. 갤럭시의 노래솜씨에 팬들은 빠져들었다. 이 노래가 뭐지? 하며 검색했다. 들었다. 성운의 노래를 다운받았다. 차트순위가 펄쩍펄쩍 한칸 씩 뛰더니. 처음으로 톱100 안에 들어버렸다. 성운의 가슴에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러나 뜨거운 것은 딱 거기까지. 껑충껑충 뛰던 차트순위는 채 한달도 지나지 않아 쭉 미끄러졌다. 서둘러 올라간만큼 허무하게 내려갔다. 사실은 성운이 내려간게 아니라, 다른 인디 뮤지션들이 올라온 걸지도 모른다. 성운의 음악을 '들었던'  사람은 절대 줄지 않는다. 다만 성운의 음악을 계속 듣지는 않을 뿐이다. 차트는 매주, 매일, 매 시간을 시시각각 평가했다. 한번 내려가면 그걸로 끝인거다. 차트란 원래 차가운 것일지 모른다, 고 성운은 생각했다.


새벽부터 꿈꾸는 인간은 감기에 걸리기 마련인가


호숫가에 선 성운은 뜨거운 입김을 뱉는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들이 마신다.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 현실과 꿈의 온도차 속에서 성운은 혼란스럽다. 새벽부터 꿈꾸는 인간은 감기에 걸리기 마련인가.

어머니는 아들이 음악을 한다는 말을 뱉자마자 돌아섰다. 성운은 그 때 처음으로 어머니의 등을 보았다. 항상 가슴으로 성운을 안아주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등을 보였다. 실망감이 컸을 것이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갈라선 것도 아버지가 음악을 끊지 못해서였으니까...

대학 시절 아버지는 통기타를 아주 잘 쳤다. 색바랜 청바지에 가죽재킷을 걸친 아버지의 모습은 어머니의 혼을 빼놓기 충분했다.

가슴깊이 그리워지면/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이렇게 다시 찾아와요/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이문세의 노랫말을 흥얼거리는 아버지의 입술에 어머니는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입술을 갖다댔다. 낭만이라는 겁없는 충동은 어머니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버지는 낭만, 그 단어 자체였다.

그러나 낭만이라는 단어는 서른을 채 넘기지 못했다. 아버지는 결혼 후에도, 성운을 키울 때도 낭만이라는 단어를 잊지못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셋방에서 항상 치던 기타 선율은 성운의 귓가에 퍼졌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낭만이라는 단어를 성운에게 주입하고 만 셈이다. 아버지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성운은 주입식 교육의 산물이었다.


어느새 호숫가에 붉은 기운이 퍼져오기 시작했다. 호수 뒷편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붉은 기운은 물안개를 밀어내며 호수를 차지해갔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물안개가 사라지는 것도 순식간. 긴린코는 다른 호수와 별 다를 바 없이 평범했다. 그저 아름다울 뿐이었다. 고요하게 잉어들이 호수를 헤엄친다. 일그러졌던 건너편 별장은 또렷히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은 뜨거운 온천물과 차가운 계곡물이 만나는 곳. 성운의 호수엔 안개가 피어오른다.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토록 아끼던 기타는 지금 성운 곁에 없다. 해가 뜨기 전까진 자꾸 흔들릴거라고, 성운은 또 생각했다.



<끝>



이 소설은 아래 기사를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529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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