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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 Dec 17. 2024

진짜 나를 찾으셨나요?

'무엇'이 아닌, '나'로서 출발하는 진짜 시작.


‘누구를 쫓아가다 보면 나도 그렇게 되는구나.' 중학생이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 반 1등 서영이랑 같이 놀면서 내 성적이 올랐기 때문이다. 3살 터울의  친척언니가 멋져 보여서 언니 스타일의 옷과 액세서리를 샀다. 어느 날에는 김민희가 되고 싶었고, 또 어느 시기에는 아이유가 되고 싶었다. 주변에는 항상 '난 방송국 피디가 될 거야'라며 떠들고 다녔다. 옆에 사람을 쫓아할 때는 그 방법이 먹혔는데 막연한 동경만으로는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되려 내 안이 흐물흐물 해지더니 나라는 사람의 빈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내가 바라는 것과 나의 모습에 괴리가 생기자 20대의 나는 자책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티를 낼 수도 없었다. 한마디로 창피했던 거다. 그렇지 않은 척하는 세월 속에 끙끙 앓으며 홀로 곪기도 했다. 나보다 잘난 남자친구는 만날 수도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숨기는 것이 많아졌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자신감은 사라지고 되려 초라하게 느껴졌다. 다들 이렇게 각자의 분야를 잘 찾아가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기간이 못해도 3년 이상인데, 그 순간이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을 지워 준 나의 뇌 덕분이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아파할 본체를 위해, 몰래 삭제 버튼을 눌러 준 뇌세포가 문득 고맙다.


어느 날 나는 청소를 시작했고, 옷 정리를 위한 행거를 구입했다. 원래 그랬다는 듯이 '나 돌보기'를 시작했다. 이유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지 그럴 시기가 찾아왔던 것 같다. 춥고 길었던 겨울이 지나가고 봄바람이 불면 꽁꽁 언 땅 밑에서 생명들이 하나 둘 다시 기지개를 켜듯이, 흑백이던 내 삶에 연둣빛이 돋기 시작한 것은 꽤나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나는 하나씩 좋아하는 것들을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쥐꼬리 같은 월급 인생이지만 화방에서 붓과 종이를 사서 작가님의 작업실 취미반을 등록했다. 서툴고 멋지지 않아도, 돈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사실은 이미 다 내려놓은 상태였다. 인간의 본능이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듯, 나라는 인간도 나를 알고 싶어진 것이다. 방송 왕작가님이 주체하는 글쓰기 모임을 찾아가고, 작가수업을 신청했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에 대한 투자는 허물어지는 통장잔고 대신 건강한 정신을 채워주었다. 글쓰기는 지금도 붙잡고 있다. 이 행위가 분명 나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어 정신적인 코어를 단단히 잡아줄 것이란 믿음으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글을 쓴다. 엄마의 일기를 우리 아이들이 훗날 읽으며 기뻐하지 않을까 라는 마음과, 나와 비슷한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분 좋은 상상이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나'를 위해서 쓴다. 내가 나답게 잘 살기 위해서 쓴다. 누군가는 쉽게 깨달았을 그 깨달음을 오랜 시간이 걸려 깨달았다. 참 많이 돌아왔다. 그래도 괜찮다 결국에 잘 돌아와 주었다.




내가 제법 잘 해낼만한 것을 찾기에도 바쁜 인생. 바보처럼 남의 인생을 열심히도 궁금해했다. 동경하는 그 사람이 가진 '무엇'이 나에게는 없다는 생각에 열등감을 키웠다. 살아보니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대로 열등감에 사로잡힐지, 나대로 행복하게 성숙할지는 나의 손에 달려있다.


내가 쉽게 하는 것들을 하다 보면 나에게도 '더 잘하고 싶어'라고 외치고 싶은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내 장점을 찾고 그것에 집중해서 갈고닦을 순간이 분명 온다. 그럴 때 노력해 봐야겠다는 결심은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밀려올 것이다.


바다와 대면한 서퍼가 담담하게 파도를 타듯 나만의 파도를 탈 그 때를 기다릴 거다.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 물결을 살피다 내 몫의 파도가 오면 그 파도 위에 잘 올라타야지. 소박한 결심을 다지는 오늘의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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