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지 Jan 02. 2025

겨울엔 목욕탕

물떡을 먹이려 잠깐 들른 분식점에서 사장님이 길가 물청소를 하는데 아이들이 신이 났다. 춥긴 하지만 따스한 햇살이 비치길래 언제까지 그러나 지켜보고 있는데 두 녀석은 끝이 없다. 물이 그렇게 좋을까? 첨벙첨벙 아주 신기한 장난감을 새로 샀을 때만큼 신나는 눈빛으로 그 안에서 한참을 즐기는 아이들. 물귀신 아이들을 키우니 여름에는 전투적으로 물놀이장을 찾아다닌다. 워터파크도 가고 펜션, 호텔, 리조트 등등 수영장이 있는 어디든지 떠난다. 공공 물놀이터도 곳곳에 정말 많아서 틈만 나면 다녀오곤 했다.


겨울이 되면 물놀이를 못 해서 아쉽지 않냐고? 우리 가족은 이때다 하고 목욕탕을 간다. 사우나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와 물놀이를 좋아하는 두 아이에게 목욕탕은 힐링스팟이다. 아이들에게는 수영장만큼 신나는 곳이 목욕탕이다. 물 깊이가 깊지 않아서 오히려 좋다. 잘 노는 아이들 덕분에 엄마 아빠도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고 아이들 노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겨울은 목욕탕의 계절이다. 물을 좋아하는 두 아이와 함께라면 더더욱. 집에서 목욕놀이 대신 목욕탕을 찾은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물속은 작은 천국이다. 어제는 나 홀로 아이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갔다. 첫째 서빈이 오천 원 나희는 공짜. 나는 팔천 원. 만삼천 원의 행복을 누릴 시간이다.


서빈이는 입구부터 신이 나서 "엄마, 오늘은 물놀이장이야?"라고 묻는다. 나희는 조그만 발걸음으로 빽빽한 사물함과 수 없는 열쇠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나를 졸졸 따른다. 카운터에서 요금을 지불하고 사우나에 들어서는 순간, 따뜻한 습기가 얼굴을 감싸는 기분은 언제나 환영이다.


아이들은 작은 물바가지 하나로도 한참을 논다. 서빈이는 물을 담아 자기 키만 한 벽에 척척 뿌려댄다. "엄마, 나도 청소해!"라고 외치는 모습에 빙그레 웃음이 난다. 따뜻해진 대리석 벽에 물 묻힌 손을 척척 손도장 놀이를 한다. 온탕 중앙에서 뽀글뽀글 나오는 물방울을 보고는 대단한 모험을 떠나는 것 마냥 천천히 다가간다. 나희는 물에 몸을 퐁당 담갔다가 재미있는지 빙그레 웃는다. 따뜻한 물이 주는 위안이 참 좋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이곳을 단순한 공간 이상의 의미로 만들어준다.


나도 잠시 앉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다. 하루종일 아이들 먹이고 치우고 놀아주느라 몸에 쌓였던 긴장이 한 겹씩 풀리는 느낌이다. 그러나 오래 앉아있을 틈은 없다. 아직 어린 나희가 넘어질까 따라다니기 바쁘다. 올해 여섯 살이 된 서빈이는 그래도 혼자 풀어둘 만하다.

 "엄마! 여기서는 콩콩해도 되지?"

집에서 매일 뛰지 말고 걸어 다니라고 혼나는 서빈이가 목욕탕에서는 자유를 만끽한다. 신이 난 얼굴로 물속에서 점프를 해댄다. 나희는 그런 언니를 바라보며 내 옆에 척하고 붙어서 킥킥거린다.


아이들에게 물은 단순한 재미 이상이다. 세상을 탐구하고, 몸을 움직이며 스스로를 표현하는 도구다. 물은 그저 흐르고 흘러가지만, 아이들은 그 안에서 순간순간을 느낀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쌓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아이는 각자의 방식으로 목욕탕에서의 시간을 떠올린다. 서빈이는 "다음에는 아빠랑도 오자!"를 외치고, 나희는 내 손을 잡고 걸으며 온몸으로 흥을 표현한다. 나도 미소 지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그래, 다음엔 온 가족이 다 같이 오자.'

목욕탕에서 내가 찾은 건 따뜻한 물이 주는 위로만이 아니지 않을까.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이 내 삶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물 같은 존재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