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하루 Aug 17. 2018

‘다 잘되겠지’라는 말


  B가 내게 물었다.  


  “노력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겠죠?”


  목소리는 단단했지만 격하게 흔들리는 눈빛 탓에 B는 어딘가 아파 보였다. 그래서 난 테이블 쪽으로 몸을 더 밀착시켰다. 진부한 대답이 아닌 진심이 담긴 대답을 해주고 싶었으니까. 착각일 수 있지만, 나는 그녀의 심정을 92.8%쯤 이해하고 있었다. 경험해 봤으니까. 느낌 아니까.


  “세상이 공평하지가 않아. 알잖아. 노력한다고 다 성공하는 게 아니란 거. 노력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거.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알아. 너 힘든 거. 네가 얼마나 죽을힘을 다하고 있는지도. 나머지는 ‘운’에 맡겨보자. 지금 너한테 가장 필요한 건 잠이야.”


  테이블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뜨거운 커피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기다렸다. B의 대답을.


  “배신감이 느껴져요. 누구한테 느끼는 건지 나도 모르겠는데, 막 억울하고 밉네요. 처음 입사할 때는 잘하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B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알게 된 동생이다. 그녀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었고, 나는 서른 살의 백수였다. 취미와 취향, 모든 게 다른 우리 사이의 공통점은 ‘같은 숙소’란 것뿐이었다. 우리는 작은 게스트하우스의 유일한 한국인이자 여자라서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이 끝나 고 연락처를 주고받았지만, 전화통화를 한 적은 없었다. 가끔 메신저로 짧은 안부를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다짜고짜 전화를 건 B가


  “언니, 오늘 봐요.”

  

  라고 말하며 갑작스레 만남이 성사됐다.

  그때 B는 중견 기업의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겨우’란 표현은 좀 잔인하지만, 그녀는 졸업 후 9개월 넘게 수많은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원한 회사에 겨우 합격했다(‘겨우’란 부사를 여러 번 반복한 건 그녀였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녀는 명랑하고, 쾌활하고, 발랄했다. 특히나 사람을 대하는 센스가 뛰어났다. 누군가 말을 하면 동그란 눈에 힘을 주고 경청하고, 말이 끝나면 적절한 감탄사를 뱉어냈다. 그러니 회사에서도 오죽 귀염을 받았을까. 얘기를 들어보니 예상대로 회사 사람들과도 잘 지낸 듯했다.


  그녀는 회사에 대한 불만은 크게 없었다. 그저 계약이 끝나는 날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긴장될 뿐이었다. 그렇게 계약 종료가 3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까지 와버렸다. 그런데 회사는 조용했다. B는 30년도 아니고, 3년도 아니고, 고작 3개월 후의 자신을 예측할 수 없단 사실을 깨달았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괴로운 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수당도 안 주면서 주말 근무까지 시켰던 과장, 회식 때마다 노래와 춤을 시켰던 부장, 회사 근처 맛집 탐방을 함께했던 대리, 잔심부름을 도와줬던 사원까지. 누군가는 그녀에게 “너 곧 정규직 될 거래.”라고 말해줄 것 같았는데 모두들 조용했다. 그녀는 참고 참다가 사원과 대리에게 물었다.


  “3개월 남았는데, 어떻게 될까요?”


  돌아온 대답은 건조했다.


  “다 잘되겠지.” 


  그녀는 부장과 과장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그들은 매우 걱정스러운 말투로


  “요즘 회사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서 큰일이야…. 근데 다 잘되겠지.”


  라는 말을 남기고 각각 화장실과 회의실로 발길을 돌렸다.


  그 후 B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피곤함에도 닫히지 않는 눈꺼풀로 인해 괴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어떤 밤에는 알 수 없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고, 또 어떤 밤에는 이런 고민에 빠진 스스로를 비난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녀의 수면시간을 갉아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번개처럼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여행에서 만난 그 언니였다.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회사 관두고 놀러 왔다던 철없는 그 언니, 바로 나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케이스가 많나요? 이 포지션은 어때요?”


  2년 전, 나는 “마지막으로 우리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냐?”라고 묻는 면접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까칠한 목소리로 말이다.

  외국계 회사였던 그곳은,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사례가 적었다. 난 이미 정보 수집을 통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나의 합격 여부를 쥐고 있는 면접관에게 말이다.


  이제 와 고백하면 반사 반응처럼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다. 추측하건대, 계약직으로 일하며 저장된 어떤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동물적인 반응인 듯하다. 물론 그 경험이 무엇이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태연한 표정과 달리 마음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타들어갔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대화 중에 혼자 흥분해서 떠들다가 돌아가는 길에 번뜩, 굳이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쏟아낸 것 같아 갑자기 무안해지는 기분. 그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난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뻔뻔함을 유지해야 될 것 같았다. 면접관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마른 입술을 정리하기 위해 혀를 살짝 내밀며 이렇게 대답했다.


  “노력하면 될 수도 있겠죠. 그건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잖아요.” 


  빙고! 역시 그랬다. 뭐든 다 네가 어떻게 하냐에 달린 문제지, 라는 모호한 답변이었다. 차라리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례가 많지 않아요.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닌데. 제가 답변드릴 수 있는 건, 합격하면 일단 1년만 계약하고요. 상황에 따라 최대 2년까지 가능해요. 그 이후는 제가 답변할 수 없네요.”


  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속에 담아두지 말고.    




  그날 B는 여러 감정을 보여줬다. 분노하다가, 허탈하게 웃다가, 슬퍼하다가, 자신을 위로하다가, 결국 다시 분노했다.


  나는 끝내 “잘되겠지.”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혼자 끙끙거리며 누르고 있던 감정들을 최대한 많이 쏟아낼 수 있도록 그냥 가만히 있었다. 곪아 터진 마음도 상처와 비슷하다. 고름을 빼내야 피가 나고, 그 피 가 굳어서 딱지가 앉아야 상처가 사라진다. 물론 쉽게 사라지지 않는 상처도 있다. 나는 그녀가 최대한 많은 고름을 빼내고, 피가 살짝 맺힌 따가운 상태로 돌아가길 바랐다. 그래야 잘 수 있을 테니까.

  모든 상황에 해당되지 않지만 때론 “다 잘되겠지.”란 말이 아주 무심하게 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다 잘 안 될 수도 있지! 그럼 어때서? 넌 잘했고. 앞으로 더 잘할 거잖아.라는 말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왈 >

  B와는 다시 연락이 뜸해졌다. 역시 나이와 취향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혹시나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을 위해 그 후 이야기를 하자면, 회사는 계약 종료 2주를 남겨두고 1년을 더 연장하자고 했다. 그녀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지만, 이미 회사에 오만정이 떨어진 후였다. 그래서 과장을 위한 주말 근무도 안 하고, 부장을 위한 노래방 공연도 안 하고, 대리와의 맛집 탐방도 관뒀다. 대신 퇴근 후 그래픽 디자인 학원을 다녔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회사를 관두고 작은 디자인 회사의 신입으로 이직했다. 물어보니 원래부터 그림 그리고 낙서하는 걸 좋아했다나?

  아무튼 지금은 사업자 등록 후 1인 그래픽 디자인 회사를 차렸다. SNS를 보면 일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것 같다. 역시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    


  살다 보면 팍팍한 세상의 한가운데서 괴로운 상황까지 맞닥뜨려야 할 때가 있다. 이"네가 노력이 부족한 거 아냐?"라던가. "죽을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봐." 같은 조언에 귀를 쫑긋 세우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말은 무심하게 던지는 "잘되겠지."란 말보다 나쁜 결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느끼기에 최선을 다 했다면, 다 한 거다. 그러니 제발 골병 난 몸과 마음으로 '노력의 정도'를 탓하며, 수면장애에 시달리며, 모든 것에 매달리고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의 기준에 부응하기 위한 시간 속에서, 나의 기준과 행복이 손실된다면, 그 괴로운 상황은 계속해서 다른 형태로 반복될 테니까. 그런 점에서 B가 택한 '성실히 주진 일만 끝내고, 열심히 딴 길 모색하기'는 꽤 괜찮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책의 프롤로그에
인사가 빠진 분들이 있어서 추가합니다.

제 글을 읽어 주셨던 브런치 독자님들 덕분에
책도 출간하고, 우수 출판 콘텐츠로 선정되고,
이렇게 위클리 매거진 연재도 하게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요.

책의 프롤로그입니다. 이 분들께도 고맙긴 해요. 결과적으로는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