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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Jun 23. 2021

어른은 다시 아이가 된다

이미지 출처: 영화 <고령화 가족>



 "다 큰 어른은 다시 아이로 돌아가는 법이야."


 오래전 할머니가 내게 해줬던 말이다. 어떤 맥락의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저런 얘기가 나왔는지는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그때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었고, 잠깐 정신이 들었을 때 들려준 이야기였던 것 같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할머니는 치매를 앓는 와중에도 떼를 쓴다거나, 괴팍한 행동을 보인 적이 없었다. 원래 성격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상냥했고 배려심이 깊었다. 치매 전보다 훨씬.


 증상이라 하면 곁에서 손을 붙들고 있는 내가 누군지 모를 뿐이었다. 뭐랄까. 꼭 기억상실증에 걸린 시한부 환자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뇌리에 박힌 탓에 '아픈 노인'이 등장하는 콘텐츠를 볼 때면 속이 매캐해지곤 했다.


 그랬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해가 흐른 지금. 아니, 요즘. 나는 저 말을 다시금 꺼내보는 날이 늘었다.


 '어른 아이.'


 30대 후반이 된 나는 간혹 아이 같은 마음이 되어버릴 때가 있다. 여전히 시시콜콜 속을 까놓는 건 어색하지만, 마음이 지칠 때면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별말은 안 한다. 같이 점심 먹자고 할 뿐이다. 참 별거 아닌 행동이지만, 내게는 큰 변화다.


 스무 살. 아버지 사업이 힘들어져 월세집으로 떠밀려 가며 가족이 흩어져 지낸 적이 있다. 그때부터였다. 무엇이든 혼자 결정하고 해결하는 습관을 들였다.


 솔직히 의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그런 탓에 지금도 부모님은 나를 '참 편하게 키운 딸'로 평가한다. 가끔은 어릴 적부터 손이 안 가도록 다 알아서 했다고 하는데, 이건 왜곡된 기억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내 새끼한테 씐 콩깍지 같은 거랄까.


 "이게 다 그 호르몬 주사 때문이야!"


 갑자기 부모님을 소환하는 일이 늘어나자. 남편과 그 이유에 대해 장난스럽게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결론은 호르몬 변화로 내렸었다. 최근 2년간 임신을 준비하며 호르몬 약과 주사를 복용한 기간이 꽤 되는데, 그게 원인이 아닐까 싶었던 거다.


 아주 얼토당토않은 추론은 아닌 것이, 하필이면 그 시기에 회사까지 퇴사해서 시간까지 넉넉해지는 바람에 빈틈도 많았다.


 넉넉한 시간과 호르몬 주입으로 '어른 아이'가 된 나는 오늘도 엄마와 점심을 먹었다. 맞다. 또 내가 전화로 불러낸 것이다.


 메뉴는 연탄불 생선구이였다. 엄마와 난 젓가락을 쥐고 함께 생선가시를 발라내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백신 접종 후 얼마간 몸살을 앓았다는 얘기. 무선 청소기 배터리가 이렇게 비싼 줄 몰랐다는 얘기. 동네에 새로 생긴 마트의 야채와 과일이 제법 괜찮다는 얘기. 그러다 엄마가 물었다.


"집에 반찬 없지? 해줄까?"


 그 순간 파리가 날아와 내 미역국에 몸을 담그고 반신욕을 시도했다. 대화의 방향이 급커브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저 질문을 듣는 순간 머리와 가슴속에 쌓인 흙먼지가 싹 닦이는 기분이 들었다. 위안이 됐다.


 엄마는 늘 그랬다. 내가 힘들고 지쳐 보일 때면 '무슨 일 있냐'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밥 먹어'하며 방문을 두드리는 게 전부였다. 그때는 혼자 끙끙 앓느라 몰랐다. 그게 엄마가 내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란 걸. 지금의 난 아이처럼 저 말을 듣기 위해 부모님을 찾는다. 특히 속이 까맣게 타들어갈 때면 말이다.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로 아이처럼 웃으며 했던 할머니의 말. 그건 진짜 어른이 되면 내 안에 숨겨진 모난 돌을 꺼내도 부끄럽지 않은 이가 누군지 알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그런 존재가 내 곁에 있다는 걸 확인할 때면, 아이처럼 작은 에 행복해지고 별거 아닌 일에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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