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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Sep 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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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숙달되는가


사랑을 분석한 다양한 책들을 읽고 있지만 머리로만 알게 된 은 그 다음 사랑에 완벽하게 반영되지 못한다. 누구나 사랑을 경험하기 때문인지 사랑은 배울 수 있고 숙달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믿게 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경험한 사랑의 에피소드를 나열하면서 이번 사랑에서 진화의 흔적을 찾는 것은 사랑에 빠진 이유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반복되는 같은 실수 앞에서 자책만 늘어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대를 덜하게 되는 것이었다. 능숙해진 덕분은 아니었다.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사랑을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진정한 겸손과 용기, 그리고 믿음과 절제 없이는 개개의 사랑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 없다. 그러한 덕목들이 드문 문화에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는 것은 매우 드문 성취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과연 겸손과 용기, 믿음과 절제를 가지고 성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닌 것 같았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리퀴드 러브>에서 '사랑의 기술을 표피적으로 습득한 이들의 훈련된 무능'에 대해 이야기했다. 연애 상담을 할 때면 자주 마주하게 되는 일이었다. 연애 계발서를 읽거나 다른 사람의 상담을 통해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문제나 사랑에 대한 성찰이 아니다. 바우만의 표현으로는 ‘케이크에서 입에 쓰고 먹기 힘든 부분은 빼고 관계의 즐거움이라는 달콤한 크림만 떼어내 먹으려는’ 태도를 취한다. 자신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상대가 자기 마음대로 조정되길 바란다. 관계 안에서 어떤 부담도 떠안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한다. 아프기 싫고 상처받는 게 두려우니까 그럴 수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자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상대만 내 뜻대로 바꾸면 관계가 개선될 거라는 생각은 허상에 가깝다.


연애에 대한 조언을 하면서 '어떤 나라의 무슨 대학 모모 박사가 연구한 결과, 어떤 통계로' 이런 자료를 제시를 하는 걸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자신의 연애가 연구 결과의 평균 안에 들어가 있다고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연구 결과를 제시하는 사람에게만 유용할 뿐이다. 이런 방식은 상담하기 무척이나 편리하다. 우선 권위에 기대어 그럴싸하고 ‘있’어 보인다.


통계라는 건 평범과 성공을 보장해주는 수치가 아니다. 현상일 뿐이다. 현상을 직시하고 그 현상 안에서 예측을 하는 것이다. 남자들의 50% 이상이 짙은 붉은색 립스틱보다 코럴 핑크를 좋아한다는 통계가 나왔다한들 버건디나 마르살라 컬러를 발랐다고 남자를 유혹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게다가 가끔은 그 박사들과 그 연구가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사례들이 대부분 외국의 것이라 한국적 상황에 맞게 일치하기도 어렵다. 개인별로 상담을 하는 게 아니라 전체의 속성에 대해 말할 때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접근하면 힘드니 그런 게 필요할 때도 있긴 하지만 이런 걸 요구하는 매체들은 언제나 사랑을 진지하게 성찰하기보단 흥밋거리로 다룰 뿐이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이 숙달되긴 하는 것인지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매번 저지르는 일, 그건 사랑이기도 하고 실수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는 사랑을 놓아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랑이라는 환상에 취해 있구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 무서워졌다. 나만 불능의 인간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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