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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Oct 15. 2024

괜찮은 날

괜찮아서 좋아

어느 순간 속얘기를 잘하지 않는다. 어쩌면 가혹한 현실의 늪에서 겨우 버티고 있을 상대에게 부정의 기운을 짊어지게 하고 싶지도 않고, 시끄러운 이야기를 하자니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너무 장황해서 그냥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실은 나도 내 속을 몰라서다. 어느 날은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상황인데 며칠 지나면 또다시 해볼 만한 것 같기도 한데 너무 극단적으로 어둡게만 생각했나 싶다. 어느 날은 뭐 저딴 인간이 다 있냐며 절대 상종 안 할 거라고 했는데 다른 방향에서 대화를 해보니 이 부분에서는 또 괜찮은 사람인 건가 싶기도 하고. 심지어 짠해 보일 때도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일주일, 일주일을 기준으로 봤을 때 사흘 정도는 무미건조하고 이틀 정도는 스트레스받고 열받기도 하다가 하루정도는 활짝 웃을 만한 기분 좋은 일들을 겪는 것 같다.


시끄러운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간을 쪼개 책을 읽거나 초록색으로 가득한 공원에 가 잠시라도 걷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하지만 외부적인 요인으로 어쩔 수 없이 잠을 뒤척이게 되는 일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다가온다. 이게 힘들어서 멈추면 또 저게 힘들게 하다가도, 이런 게 가끔 웃음을 주다가 저런 게 갑자기 선물 같은 결과를 주기도 하니. 어느 날은 어둠 속에 푹 빠져있다가도 또 살만해지며 밝아지는 것이다.


아무리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여러 요소들로 인해 내 모습 시시때때로 변하기 마련이다 보니 어두울 땐 타인을 만나기 싫지만, 또 미리 해둔 약속이 있을 땐 적당히 숨기고 밝은 기운을 더해보고자 한다. 그러다 보면 또 정말 괜찮아지기도 하니까.


즘은 어냐는 누군가의 질문에는 힘들어도 '괜찮다', 너무 좋아도 '괜찮다' 정도로 간략하게 표현하게 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들쭉날쭉한 나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그냥 이 순간 대를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것 자체가 '괜찮은' 것 같아서다.


가끔은 이 정도면 무던한 하루였다 싶은 날이면 오늘은 정말 좋았다고 표현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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