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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May 05. 2020

스물여덟 꼬마 어린이에게

어린이날에 보내는 편지

To. 콩 아가씨


잠이 들기 문득, 너에게 하늘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모든 소리가 잦아든 아주 평화로운 밤하늘, 그 소박한 감상을 너의 한구석에 숨겨두고 마음이 바쁠 때마다 꺼내보게 하고 싶었어.


요즘은 하늘이 참 맑아서, 길을 걸을 때마다 마음이 좋아. 답답한 일도 없는데 속이 사르르 풀리는 풍경, 해가 비치는 하루 한 나절을 너에게 꾸어다가 같이 구름 움직이는 거나 볼까 싶을 정도야. 점심시간 산책을 다녀오겠다는 너의 연락을 뒤늦게 보면 우리 애도 하늘 구경을 했을까 생각을 하곤 해. 오밀조밀 건물들이 모여사는 골목길에서 하늘 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고개를 들고 쉬었으면 해서.


봄꽃을 떨군 가로수 사이에 서서, 찬찬히 하늘을 보는 너를 상상하다가 문득 혹시 혼자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이 무섭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어. 나는 혼자 서서 하늘을 보면 가끔 무서워지더라고, 하늘만 보면 앞이 잘 안보이니까. 앞에서 자전거가 오고 있지는 않을까, 기껏 풀어진 마음에 조바심이 들곤 해. 그래서 다음에 너를 만나 하늘을 보면, 살며시 안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너에게 가장 편안한 품이 되어 마음껏 마음이 설레는 것들을 볼 수 있게끔 말이야.


나는 스물두 살의 너와 불꽃놀이를 보던 날이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나. 모두가 멈춘 한강 다리, 조금 더 잘 보겠다고 도로 난간에 올라선 너를 나는 밑에서 꼬옥 붙잡고 서 있었어. 불꽃놀이가 다 끝나고, 너무 좋았다며 조르르 눈물 흘리던 네가 나는 참 예쁘고 소중해서 마음이 떨렸지. 편지를 쓰는 지금도 마음이 설레는데 그때는 어땠겠어.


때로는 어른스럽지만 내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 당신. 나는 항상 그렇게 옆에서 너를 붙잡고, 네가 기댈 수 있게 서있으려고 해. 일을 하며, 살아가며 이리저리 흉 진 마음이 내 곁에서는 그래도 맑고 편안할 수 있도록 말이야. 평생 어리고 아름다운 우리를 놓치지 않도록 서로를 위한 품이 되어 살 수 있도록.


우리 둘이 함께라면, 아마 우리는 평생 그렇게 장난스럽고 예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덜 익어 반 정도만 잘라둔 고기를 보고 '티라노!'라고 하는 커플이 몇 년 지났다고 얼마나 컸겠어. 삶의 짐은 조금씩 늘어나겠지만 나, '티라노!'에 '오오오!'라고 해줄 수 있는 너만 있으면 항상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이 있어.


어린이날.


어린 날에 사주던 장난감 대신 구두를 사주고 예쁜 꽃을 사주긴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 이 날은 항상 기념하며 살자. 그렇게 마음 한 구석을 조금 느리게 키워 나가며 살아요 우리. 함께 하늘을 보면서, 바람이 세차도 참 느리고 더딘 하늘을 보면서. 천천히 서로의 시간을 만끽하고, 둘이서만 만들 수 있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채워요.


사랑해요.

나의 스물여덟 꼬마 어린이.




2020년 5월 5일

너를 가장 사랑하는 남자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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