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자킨토스 로드 트립
자킨토스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섬입니다.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과 절벽이 많아, 이탈리아의 아말피를 연상시키지요.
최고 해발 고도 756m나 되는 비교적 높은 산악 지형이다 보니 곳곳에서 바다의 파노라마 절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드라이버의 피로도는 높습니다.
지형이 그렇다 보니 대중교통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돌아보아야 할 여행자들에게 좋은 여건은 아니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렌터카나 여행사의 투어 버스, 또는 4개의 커다란 바퀴가 달린 쿼드(quad)를 이용합니다.
물론 바이크를 이용하는 사람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항구 근처인 중심 타운에 숙소가 많이 몰려 있기 때문에 보통 그곳을 기점으로 시계 방향, 또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보는 게 일반적이지요.
아래 지도의 빨간 점이 있는 곳이 우리의 숙소.
이틀 동안 몇 군데의 뷰 포인트와 해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자킨토스 시가지의 뒤편 언덕에 있는 작은 마을 보찰리(Bochali) 뷰 포인트.
구름이 드리워진 오전의 햇살은 아직 가뿐합니다.
창백한 금빛이 가늘게 스며든 바다는 푸름보다 회색에 가까웠지요.
바람은 말을 아끼고, 하늘은 잠시 숨을 고르던 아침.
집들은 콜라주처럼 붙어 있고 그보다 낮은 곳엔 바다가 거울을 펼쳐놓은 듯 말없이 누워 있습니다.
마을 골목에 들어서면 누군가가 창을 닫는 소리,
스푼이 도자기 그릇을 스치는 소리,
작은 새들의 노랫소리들이 들리겠지요.
그 모든 사소한 일상의 소리들이 바다의 고요 앞에서는 잠시 귀를 접습니다.
가진 것보다 비워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다음 목적지는 시기아 유황온천 비치.
온천욕을 하자는 건 아닙니다.
지나가는 길이니 예쁘면 잠시 머물고, 취향과 다르다 싶으면 벗어나면 되니까요.
구불구불한 도로는 어느새 좁은 자갈길로 바뀌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우회전하라고 하는데 길은 보이지 않고 저 멀리 바다의 기척만이 깃털처럼 흔들리고 있었지요.
내가 먼저 차에서 내려 100m쯤 걸어 내려가 보았습니다.
바다엔 유람선으로 보이는 배가 한 척 멈춰 서있고 한쪽에 작은 카페가 보입니다.
그곳이 어딘지 모르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적한 바닷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예쁘기까지 합니다.
카페 고객을 위해 만들어놓은 편편한 주차 공간도 있었지요.
정차되어 있는 언덕으로 다시 올라가 그날의 드라이버인 J에게 내려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페라가키(Peragaki) 해변 카페 'Kantina Magda'
그렇게 우연히 만난 곳은 페라가키(Peragaki) 해변의 절벽에 있는 작은 카페 'Kantina Magda'입니다.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키가 높은 테이블이 길게 세워져 있고 그 위에 진홍빛 패랭이 화분이 놓여있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작은 해변에 짚으로 만든 파라솔이 접힌 채 한가로이 서있습니다.
인적은 보이지 않고 아기의 칭얼거림 같은 물결이 오가는 바다색은 순한 파랑.
바다는 아무것도 묻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이름 모를 조약돌 위로 부드럽게 밀려왔다가 다시 미끄러지듯 되돌아갔지요.
때때로 실수는 가장 정직한 직관입니다.
길을 잘못 들었던 게 아니라 길이 우리를 옳게 이끌었던 것일지도 모르지요.
낯선 해변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길에게 감사했습니다.
나바지오 뷰포인트, 침묵을 마시는 절벽
그리스에서 가장 많은 사진 촬영이 되는 장소 중 하나이며 섬의 상징인 나바지오(Navagio)는 그리스어로 난파선을 뜻합니다.
영어로 쉽렉(shipwreck) 비치로 불리기도 합니다.
1980년 10월, 파가니오티스 호는 아테네 피레아스 항으로 항해를 하던 중 악천후로 인해 이 섬의 아기오스 해변에서 좌초되었습니다.
주민들은 난파선으로 인한 환경적, 미적 재앙에 크게 우려하며 불평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폐선을 옮길 수 없었고 배는 그대로 해변에 떠밀려와 모래 속에 발을 묻고 해변에 덩그러니 놓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을 변장한 행운이 되었지요.
오늘날까지도 접근이 어려운 이 해변의 거친 아름다움과 난파선의 조합은 전 세계에 섬을 알리는 독특한 배경을 만들어냈고 관광의 중심이 되었으니까요.
우리나라는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더욱 유명하게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드라마는 한 편도 안 본 지라 그것으로 인한 관심은 없었습니다.
다만 사진에서 본 신비로운 물빛으로 인한 호기심이 컸지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었지만 2023년 이후 낙석 위험으로 인해 해변으로의 접근이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그 대신 보트 투어를 통해 해변이 보이는 바다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지요.
근처에 있는 브로미 항에서 보트를 타고 나바지오 주변과 블루 케이브, 화이트 비치 등을 돌아보는 3시간 코스가 가장 짧습니다.
나는 물공포증이 있어 작은 보트를 타지 못합니다.
근처 카페에서 기다릴 테니 친구들에게 보트 투어를 하라고 권했지요.
하지만 '굳이'라는 단어로 포장한 '의리'로 타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굳이' 나를 위해 그럴 필요는 없는데 하면서도 고마웠지요.
그러므로 나바지오를 멀리서나마 내려다볼 수 있는 뷰 포인트가 다음 목적지입니다.
우연히 만난 피가다키아(Pigadakia) Folk Culture Museum
밴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산골 마을을 지나는데 그림 같은 작은 집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옆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 같은 작은 타베르나가 있었지요.
내가 잠시 민속 박물관 간판을 보느라 조수 역할에 소홀한 사이 드라이버 J가 그만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이미 들어선 좁은 골목길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후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뒤따라오던 작은 트럭이 민속 박물관 앞에 정차하더니 물건을 내리는 겁니다.
그 차가 비켜주어야 후진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 잠시 기다려야 했지요.
드디어 순간 포착할 순간입니다.
재빠르게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지요.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걸 눈치챘는지 남자가 친절하게 먼저 물어왔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거냐고요.
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려주자 그는 적절하게 차를 옮겨주었습니다.
노인들은 호기심 그득한 눈으로 이방인들을 쳐다봅니다.
그곳의 공간이 넉넉했더라면 잠시 내려 할아버지들 옆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도 좋았을 걸 합니다.
길을 잘못 든 게 아니라 마치 그 풍경 속에 들어가도록 미리 계획되어 있었던 듯 뜻밖의 시간을 선물 받았습니다.
피가다키아(Pigadakia)의 작은 민속 박물관 앞에서의 그 순간도 병 속의 오일처럼 오래오래 기억에 보관될 것입니다.
그렇게 차창 너머로 드문드문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끝도 없이 깎인 절벽이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길을 지나 드디어 나바지오 뷰포인트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내려다본 절벽 끝의 푸른빛은 내가 아는 어떤 '푸름'보다 더 명징했습니다.
전망대라고 하기엔 너무 협소한 조그만 포인트 앞에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아마도 그곳에 서야만 쉽렉 비치(Shipwreck Beach)의 폐선이 보이나 보다 짐작했지요.
드디어 내 순서입니다.
뷰 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한 조각 해변에 드리워진 바다,
아니 그건 바다가 아니라 그냥 색깔로 다가왔습니다.
믿을 수 없이 맑고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가 그라데이션으로 펼쳐져 있었지요.
현실이라기보다는 CG라고 하는 게 더 믿음이 가는 그런 색이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곳을 향해 카메라를 최대로 줌 했지만 그저 한 조각에 불과합니다.
무언가를 씻어내듯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맑게 만드는 그 해변에 녹이 슬어 검게 변한 배가 보입니다.
죽음이 아니라 수용의 표정, 버려진 게 아니라 받아들여진 듯 그렇게요.
눈을 뗄 수 없이 아름답지만 마음이 바쁩니다.
감탄할 시간이 없습니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빨리 비켜줘야 하니까요.
'이 세상에 저런 색이 있구나'
1분도 채 머무르지 못했던 그 짧았던 순간의 떨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2000년 된 올리브나무, 시간의 나이테에 귀를 대다
두 번의 천년을 건너온 올리브 나무 앞에 이런 글이 쓰여있습니다
이 섬에서 가장 오래된 이 올리브 나무는 마을의 중앙에 있으며 우리 가족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둘레는 14m입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올리브 나무줄기의 반지름은 매년 0.4mm에서 1.2mm씩 자랍니다.
따라서 나무의 지름으로 볼 때, 20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올리브 나무 성장 생리학에 따르면 수천 년이 지나면 중앙의 줄기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우리는 수세기 된 올리브 나무에서 이러한 현상을 관찰합니다.
이 나무의 줄기는 속이 비어 점차 무너지지만 외부의 어린 나무는 살아남아 원래의 나무와 단일 뿌리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주인이 직접 관리하고 지금도 2년마다 열매를 맺습니다.
노파의 피부처럼 갈라진 나무 둥치 사이로 들어간 빛이 이천 년의 고해성사처럼 울퉁불퉁합니다.
나는 손을 뻗어 그 거친 껍질에 손바닥을 대보았습니다.
침묵이 대답으로 느껴집니다.
비와 햇살, 사람의 손길과 무심한 계절을 어떻게 견뎌온 걸까요.
바다는 시간을 씻어내지만 나무는 시간을 품고 있습니다.
그 안엔 지워지지 않은 삶의 자국들이 말없이 쌓여 있었지요.
나무에 귀를 대봅니다.
시간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싶었으니까요.
자킨토스를 드라이브하다 보면 섬 어딜 가나 수 백 년 된 올리브 고목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자체가 한 폭의 풍경화가 되지요.
그곳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올리브 농경이 자리 잡았고 베네치아 인들은 자킨토스를 올리브 오일 창고로 여겼지요.
현재까지도 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농산물은 올리브입니다.
근처에는 당연히 올리브 오일을 판매하는 상점이 많습니다.
그것은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황금 액체가 아니라 '병 속에 담긴 시간'.
2000년 세월의 체온이 천천히 스며든 '시간의 농축', 그걸 마시는 거라 여기면 약이겠다 싶습니다.
시골집 돌담 옆의 타베르나(Taverna)
제주도의 그것처럼 낮은 돌담 옆의 소박한 타베르나(Taverna, 그리스 전통 음식점), 맛의 가든(Garden of tastes)으로 들어서자 재스민 꽃향기가 온몸에 날아와 앉습니다.
물 한잔, 빵 몇 조각, 섬이 키워낸 올리브유가 담긴 작은 그릇.
타베르나에는 늘 특별할 것 없이 같은 메뉴이고 투박한 담음새지만 소박하고 정감이 있습니다.
맛보다 마음이 먼저라는 게 느껴지지요.
요란한 플레이팅도, 입을 놀라게 할 기교도 없습니다.
프랑스의 화려하고 섬세한 플레이팅이나 접시 가장자리에 소스를 무심하게 붓칠 하듯 그려놓는 이탈리아의 감성이 없지요.
그리스는요.
그저 담고 또 담습니다.
마치 시골 할머니의 열무김치처럼요.
점심 식사 분위기가 편안해서 나른한 여행의 쉼표가 되었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포크질, 햇살과 공기와 기분을 함께 씹는 듯 부드러웠으니까요.
세상은 멈춘 듯 고요했고 시간은 그림자로만 흘러갔습니다.
그리스 음식점은 디저트를 대부분 서비스로 줍니다.
너무 달아서 머리가 아플 정도인 케이크나 작은 잔에 과일주를 내어주죠.
'조금 더 있다가 가세요' 하는 정이랄까?
그렇게 우리는 그리스의 타베르나에서 음식이 아닌 사랑을 대접받곤 했습니다.
카메오섬, 바람이 건네는 인사
성글게 묶어 만든 나무다리를 건넜습니다.
물 위에 매달린 듯한 흔들림, 그 끝에 작은 섬이 조용히 떠있습니다.
섬이라기보다는 잠시 머물다 가는 마음 한 조각이라는 게 더 어울려 보이는 섬, 카메오는 먼 옛날 지진으로 인해 떨어져 나가 지금의 섬이 되었다고 해요.
하얗고 긴 천들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무언가를 지키는 수호천사 같아요.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바람이 몸을 감쌌고 빛은 천 사이로 쏟아져 내려 침묵의 세례 속으로 데려갑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평온함이 느껴집니다.
이곳은 엄연히 소유쥬가 있는 땅이지만, 그곳에 발을 들여놓은 모두의 것이기도 했지요.
카메오섬의 바람은 기억보다 더 부드러웠고 하얀 천은 내가 미처 말하지 못했던 모든 감정을 대신 흔들고 있습니다.
야트막한 해변 앞에 놓인 나무 의자에 앉아 바람을 맞습니다.
말없이 빈 하늘에 펄럭이는 천을 바라봅니다.
물과 빛으로 이뤄진 듯 모든 것이 고요하고 찬란합니다.
하나의 음이 다른 하나를 비추며 다시 돌아오는 풍경 음악,
아르보 패르트의 Spiegel im Spiegel(거울 속의 거울)
피아노가 3개의 음을 여섯 번 반복합니다.
화음이 바뀌면서 첼로의 첫 음이 시작되고 두 악기는 서로를 부르듯 이어집니다.
물과 하늘, 나와 세계, 기억과 미래가 느리게 서로를 반사하지요.
내가 펄럭이듯, 내가 날아가듯, 내가 춤추듯 후련합니다.
물멍도 불멍도 아닌 '천 멍'을 즐기는 시간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지요.
1인당 5유로인 티켓을 구매하고 섬으로 들어서면 일단 직원이 사진을 찍어줍니다.
나부끼는 하얀 천 아래, 바다를 배경으로 서서요.
그리고 그 사진은 키링으로 만들어져 섬에서 나갈 때 받습니다.
물론 인원수대로 걸려있지요.
입장료 5유로의 추억이 꽤 그럴듯합니다.
카메오는 보통 단단한 조개껍질이나 보석 등을 양각으로 조각해서 만든 장식입니다.
목걸이 펜던트나 브로치에 사용되지요.
이 섬의 이름이 카메오인 것은 작고 특별한 아름다움을 지닌, 마치 조각된 보석 같은 장소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게 아닌가 합니다.
그건 혼자의 생각일 뿐,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바다조차 차가워 보였던 임니오나스 해변
험난한 고갯길을 몇 번이고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이름만큼 낯설고도 기대되던 임니오나스 해변.
오후 세 시가 가까워져 있었지만 그곳에서 식사를 해야 주차를 할 수 있다는 정보 때문이었지요.,
해변이 개인 소유도 아니건만 억지스러운 조건이 마땅치 않았던 만큼 음식도 그저 그랬습니다.
먹는다는 행위가 인간에게 얼마나 따뜻함이 될 수 있는지를 전혀 느낄 수 없었으니까요.
식사를 마치고 바다 쪽으로 내려가려 하자 또다시 프라이빗 구역이라며 진입을 막는 팻말이 길을 가로막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고, 그냥 한숨처럼 바람을 들이마시며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어요.
자킨토스에서 유일하게 마음이 식었던 곳, 바다조차도 조금은 멀고 차가워 보였던 임니오나스였습니다.
잔테(Zante)의 솔로모스 광장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자킨토스 중심가인 타운입니다.
그곳은 잔테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역사적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이 자킨토스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영향에서 비롯된 이탈리아식 이름입니다.
어감도 부드럽고 좀 더 감성적으로 느껴지더군요.
예상대로 중심가답게 해안 도로에는 모든 주차 공간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쉽지 않습니다.
어찌어찌 주차를 마친 후 솔로모스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단순한 도시의 쉼터가 아니라 자킨토스 섬의 정체성이 고요히 숨 쉬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지요.
광장에는 그리스의 작사자, 자킨토스 출신 시인인 디오니시오스 솔로모스(1798-1857) 동상이 서 있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어요.
"자유여, 너를 위한 것이라면 죽음도 달콤하다."
그의 시처럼, 자유를 위한 갈망과 그리움, 고요한 사랑의 언어가 이 도시 곳곳에 스며 있는 듯했습니다.
광장의 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조금 전 주차하는 걸 도와주던 청년과 다시 마주쳤지요.
그저 우연이라기보단, 이 작은 섬이 가진 느슨하고 다정한 시간의 농담 같았습니다.
그 카페가 일터이지만 그날은 휴무일이라고 합니다.
누나를 만나러 잠시 카페에 들렀는데 우연히 마주친 거죠.
그러나 그 기분 좋은 우연은 비둘기들의 다급한 날갯짓에 바로 흩어졌습니다.
내 머리 위로, 테이블 위로 시시때때로 날아드는 무심한 기세에 길게 앉아있을 수가 없었지요.
여행은 그렇게 매끄럽지 않은 순간까지도 추억으로 만듭니다.
광장을 벗어나 중심가로 들어서자 아케이드들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작은 가게들, 기념품점, 젤라토 가게, 그리스 음악이 흐르는 카페와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노부인이 천천히 걷는 거리가 꽤 번화하고 아름다웠지요.
솔로모스 광장은 단지 한 시인의 이름이 아니라, 이 섬이 간직한 시(詩)의 얼굴이었고,
중심가는 그 시가 일상의 언어로 번역된 공간이었습니다.
기억을 붙잡는 일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이틀 만에 시작한 이 글은 어느새 9편.
아직 물비늘이 남아 있는 감정들을 조심스럽게 펼쳐내고 있지요.
그건 단순한 기억을 되살려 쓰는 게 아니라, 얼마나 마음을 담아 시간을 보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순간을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을 살았다는 이 이야기는 미래의 내게 보내는 편지고, 내 마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사실 기억을 붙잡는 건 쓸쓸한 일입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애틋함, 지금은 더 이상 곁에 없는 풍경이나 감정에 대한 작은 저항이기도 하죠.
그래서 기록합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노래를 들으며 그 순간을 다시 살려내려 애씁니다.
사실 그건 시간에게 맞서는 일이고 순간을 붙잡아두려는 마음의 사다리 같은 겁니다.
그건 손끝이 아직 햇살을 기억하고, 마음이 그 바다의 색을 불러낼 수 있을 때여야 가능합니다.
기억은 얕은 것보다 깊은 것이 결국 오래가기 마련이죠.
그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기억의 서랍에 담는 이 일은 내 안의 시간을 구해내는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방식입니다.
가끔은 헤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 천천히 걷다 보면 더 깊은 나를 만나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숨겨진 묵음의 여운을 듣기도 합니다.
지금도 나는,
바람에게 온몸을 맡긴 채 펄럭이는 카메오의 하얀 천을 바라보며
'거울 속의 거울'을 듣는 내가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