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세체다에서 보낸 편지
날씨 연구를 했습니다.
BBC, 아큐웨더, 발 가르데나 네트워크 등 여러 사이트의 정보를 모았지요.
'5일이나 남았네'
생각하면 좋으련만 내 마음은
'5일밖에 안 남았네' 합니다.
온라인으로 돌로미티 슈퍼 썸머 카드 4일권을 구매했습니다.
내일은 돌로미티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세체다(Seceda)와 알페 디 시우시(Alpe di Siusi)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자동차는 잠시 휴식 모드,
두 곳 모두 숙소에서 1km도 되지 않으니 걸어서 가면 됩니다.
어제 숙소로 돌아온 후, 주행 중 대시보드에 나타나 화들짝 놀라게 했던 빨간 자동차에 대해 문의했습니다.
렌터카의 답변은 그때 상황의 사진을 보내주어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고 무책임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주행 중에, 예고도 없이 불쑥 잠깐 1~2초 정도 나왔다가 사라지는 걸 도대체 어떻게 촬영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꼬불꼬불한 길을 혼자서 여행하는데 말이죠.
그 상황을 얘기했더니, 그래도 사진을 봐야 진단을 할 수 있다는 갑갑한 대답만 되풀이합니다.
뭐 일단 오류 싸인일 수도 있으려니 생각하기로 했지요.
폭스바겐이 표시하는 경고등의 종류를 다 찾아봤지만 내가 본 것과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요.
아무튼 오늘은 차를 안 쓰기로 했습니다.
발코니로 나가보니 청명합니다.
알페 디 시우시로 올라가는 빨간 곤돌라들은 멈춰있는 모습이 편안해 보였지요.
1층으로 내려가니 밀카가 투숙객들을 위한 간단한 아침 식사를 세팅하고 있습니다.
각종 빵과 잼, 주스, 요구르트, 과일...
필요한 사람들은 자유롭게 가져다 먹을 수 있지요.
그녀는 여전히 민소매의 짧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습니다.
'안녕, 실비! 날씨가 좋네요, 오늘은 어디로 가세요?'
'세체다에 가려고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에요. 케이블카 타는 곳은 알죠? 걸어가면 돼요.'
'네, 그러려고 해요, 그런데 안 추워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그리고 신난 듯 말합니다.
'춥긴요? 여름이잖아요. 여긴 여름이 아주 짧아요. 즐겨야죠.'
세체다 입구까지는 에스컬레이터와 무빙워크로 연결(약 300m)되어 있어 비교적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티켓 머신에서 예약된 큐알 코드로 티켓을 받았습니다.
8시 30분부터 운행이 시작되는 곤돌라는 아직 정지해 있고 나처럼 성미 급한 여행자들이 몇몇 기다립니다.
오르티세이에서 세체다에 가려면 우선 곤돌라(정원 6명)를 타고 푸르네스(Furnes)까지 갑니다.
거기서 다시 대형 케이블카(정원 62명)로 갈아타면 세체다 정상에 도착하게 되지요.
6월 초는 아직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굳이 곤돌라의 정원을 채우지 않아도 되기에 혼자 곤돌라에 올랐습니다.
케이블카 문이 열리고 몇 발자국 걸어 나가 세체다의 흙을 밟은 순간, 그대로 숨이 멎었습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무릎을 꿇듯이 천천히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사진은 멈춘 시간, 아니 네모 안에 가둔 시간이지요.
뷰 파인더로 세체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어디까지 잘라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셔터를 눌렀습니다.
스크린에 나타난 세체다는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이 아니었지요.
숨 막히는 감정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돌산이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몇 조각일 뿐, 작은 프레임은 그저 초라한 틀에 불과했습니다
세체다는 작은 네모에 담아내기엔 너무 컸습니다.
들고 있던 카메라를 슬며시 내려놓았죠.
그리고 메모리 카드에 이미지를 찍는 대신, 가슴에 새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고백컨데 이 글을 시작하기 전,
하얀 스크린 속에 깜박이는 커서를 얼마 동안 바라보았는지 모릅니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아서지요.
그 커다란 실체를 문자로 풀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요.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체다에 올라간 후 한참 동안 멍하게 바라보던 그날처럼 말이지요.
세체다는 기록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대상을 눈앞에 두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며 무언가를 남기지 않고 놔둘 수 있는 마음.
사라지더라도 괜찮다고 여길 수 있는 너그러움.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더군요.
말러 교향곡 5번 첫 악장을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은 알 겁니다.
트럼펫 솔로가 같은 높이의 3연음과 2분 음표를 두 번 반복합니다.
여리게, 그러나 뼈가 있는 소리여야 하지요.
솔로가 이어지는 16마디는 5번 교향곡의 첫인상입니다.
80여 명이 모두 악기를 내려놓고 있는 동안 솔리스트는 혼자와의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합니다.
말러의 5번 1악장의 솔로 부분을 완벽하게 연주한다면 그 사람은 단연코 세계적인 트럼펫터입니다.
세 번째, 네 번째의 3연음의 피치는 앞과 같지만 2분 음표는 3도 올려서, 3번 반복됩니다.
음량도 서서히 키웁니다.
그러면서 겹 점음표와 16분 음표로 선명하게 대비되는 리듬으로 이어집니다.
트럼펫은 그 기세를 몰아 가장 높은 B에 호흡을 불어넣는 동시에 심벌즈가 힘차게 부딪칩니다.
그렇게 투티(총주)가 터지면 마치 하늘이 열리는 듯 눈이 번쩍 떠지지요.
그렇게 세체다의 하늘, 산, 구름, 바람이 한꺼번에 쏟아졌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와 함께 내린 여행자들이 모두 어딘가로 사라지고 케이블카 운행을 돕는 직원들만 보입니다.
멀리 그들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뷰포인트를 가리키는 화살표에 10분이라는 표지판이 있더군요.
살짝 오르막이긴 하지만 10분 정도라면 가볼 만하지 하며 그들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가 서 있는 철제 원형 전망대까지 10분이라는 알림은 거짓이었습니다.
적어도 내겐 말이죠.
그 길은 보이는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결코 짧지도 쉽지도 않았지요.
단 몇 걸음 시작했을 뿐인데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오르막은 자신이 없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다 싶었지요.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게 있었으니 그곳은 해발 2500m의 고산이라는 사실입니다.
숨소리와의 타협이 필요했습니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잠시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기록하려는 습관도, 증명하려는 마음도 내려놓은 채 그저 살아 있음 하나로 걸었지요.
이쪽 한 번, 저쪽 한 번 바라보며 숨을 고릅니다.
누가 위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요.
오픈 런 하듯, 첫 번째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왔으니 아무 문제없습니다.
대자연은 때때로 설명을 거부합니다.
너무 크고, 너무 조용하고, 너무 단단해서 말이란 게 부끄러워지곤 하죠.
어떤 표현도 다 빗나갑니다.
그러므로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산맥과 회색 빛 구름과 바람은 내가 마주하는 침묵의 깊이였습니다.
드디어 십자가가 있는 포인트에 다다랐습니다.
세체다는 돌로미티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풍경을 지닌 곳 중 하나입니다.
땅이 뒤집히는 순간을 목격한 듯한 지형, 그 끝에서 세상이 꺾여 나간 듯한 절벽, 바람결에 따라 구름이 흐르며 드러내는 봉우리들은 보는 이의 숨을 잠시 멈추게 하죠.
지구가 격렬히 몸을 뒤튼 자리에서 태어난 땅.
두 지각판이 서로를 밀쳐 올리며 남긴 이 뾰족한 산들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방식으로 존재의 중심을 꿰뚫고 있습니다.
한쪽은 푸른 초원,
다른 한쪽은 단칼에 썰린 것처럼 아찔한 절벽.
그곳에서는 생과 사, 부드러움과 단절이 동시에 시작됩니다.
지금 이 순간, 이 모두를 함께 보면 좋을 사람 하나 없음이 아쉬웠지요.
하지만 오늘은 그저 내 몫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요한 외로움이 세체다를 더 깊고 넓게 만들었습니다.
옛날, 이 산에는 푸나(Funa)라는 이름의 요정들이 살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요정들은 구름을 만들고, 바람의 속도를 조절하며, 하늘빛을 조율하는 자연의 조력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산을 오르기 시작하고, 욕심으로 산을 깎고 길을 내자 푸나들은 슬퍼하며 이 산 깊은 곳으로 숨었다고 해요.
그리곤 단 한 곳만 남겨두었죠.
자신들이 사랑한 풍경을 잊지 않도록 세체다 꼭대기에, 구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뾰족한 봉우리를요.
지금도 회색 구름 속에서도 그 봉우리가 또렷이 보이는 건, 푸나의 마지막 마법 덕분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곳은 약 2억 5천만 년 전, 바다였습니다.
아프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이 충돌하면서 돌로미티 전역이 솟구쳤고, 특히 세체다 지역은 비대칭 융기로 인해 한쪽은 부드러운 경사면이, 다른 쪽은 날카롭게 잘린 듯한 절벽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세체다는 마치 칼로 절반을 잘라낸 것 같은 풍경이 나타나게 된 거죠.
이 독특한 형상이 지금의 아이코닉한 모습, 바로 그 바늘 같은 봉우리들의 연속을 탄생시킨 겁니다.
같은 케이블카를 타고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래로 아래로 트래킹을 떠났습니다.
구불구불한 초원과 저 멀리 말가(산장)도 보입니다.
커피도 마시고 소시지도 먹을 수 있겠지요.
가보고도 싶지만 올라올 생각을 하면 아찔합니다.
욕심내지 말기로 했습니다.
벤치가 있더군요.
홀로 그곳에 앉았지요.
모자가 벗겨질 만큼 바람이 불었지만 날아가진 않는 것이 아마도 그 바람이 나를 이곳에 붙들어 두는 것 같았습니다.
그토록 광활하고 높은 곳에 홀로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지난날들이 파노라마 뷰처럼 스르르 지나가더군요.
그땐 몰랐습니다.
모든 게 버텨야 할 무게 같았고
이겨내야 할 것 같았고
어떻게든 바꾸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저
살아내면 되는 것이었어요.
바람 부는 날엔 바람처럼
꽃 피는 날엔 꽃처럼
살아내면 되는 것이었는데.
나는
자꾸 돌아보며
그 길을 잃곤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너무 늦은 것 같아서
이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
속으로 조용히 접어둔 마음들이 있죠.
그런데 바로 그 마음에
어떤 문장 하나가,
어떤 풍경 하나가,
어떤 사람의 말 한마디가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도착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 순간,
시간은 조금 되돌아가고
마음은 아주 조금, 덜 아프게 되죠.
그게 바로 내가 그곳, 세체다에서 받은 위로입니다.
바람 부는 날엔 바람처럼
꽃 피는 날엔 꽃처럼
살아내면 됩니다.
그날의 나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