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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 리토미슐

9. 리토미슐 (Litomisl)

by 전나무


웨하스처럼 부드럽게 녹아드는 이름, 리토미슐.

옅은 바람에도 스르르 열릴 듯한 그 이름을 향해 차를 몰았다.

스메타나가 태어난 곳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먼저 달려가던 곳이었다.

음악은 공간을 채우는 힘이 있다.

가을의 도로를 달릴 때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온 멜로디가 차 안의 공기를 조금씩 바꿔놓았다.

음표가 떨릴 때마다 풍경이 그 뒤를 따라 흘렀고, 창밖의 나뭇잎들은 마치 그 리듬을 아는 듯 가볍게 흔들렸다.


음악이 길을 이끌고, 길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기묘한 순환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목적지에 가까워졌다.

7080 가요에서 올드 팝과 영화음악, 클래식까지.

'세월이 흘러가면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이문세의 첫 소절처럼, 지나간 시간들이 가을 햇살에 비쳐 다시 반짝였다.

음표들을 따라 풍경이 지나가고, 어느 순간엔 우리가 멜로디의 한 조각이 되기도 했다.



리토미슐 성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성으로 가는 동안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세월을 품은 오래된 레코드의 첫 음처럼 조용한 골목길,

자전거를 끌며 언덕을 오르는 노인의 뒷모습,

어깨에 가볍게 내려앉는 노란 잎들.

작은 장면들이 하나의 소품처럼 이어졌다.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체코의 소도시 성들은 1년 내내 열려 있는 곳이 아니고, 일주일에 이틀 혹은 사흘만 공개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볼법한 고풍스럽고 소박한 바로크 극장이 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크다.

그날 이후로도 이런 일은 반복되었다.

닫힌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며, 어쩐지 시간에게 미안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정작 놓친 것은 문이 아니라 그 주변에서 조용히 흐르고 있던 풍경이었다.

공원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키 큰 나무들이 떨궈 놓은 낙엽이 수북했다.

두 손으로 잎을 퍼올려 허공에 띄우면 꽃잎처럼, 음표처럼 흩어졌다.

한참을 웃으며 나뭇잎을 던지고 있을 때, 어디선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단어의 모서리가 생기지 않은 나이의 말소리.

버터 조각이 녹아내리듯 둥글고 부드러워 듣기만 해도 마음이 말랑해졌다.

그 웃음과 발걸음, 낙엽 밟는 소리가 짧은 트리오처럼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했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생가는 성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와인 양조장 사택이었던 그의 집도 문이 닫혀 있었다.

그가 연주했을 피아노 대신, 낡은 피아노 한 대가 위로처럼 입구에 놓여있었다.

그가 청력을 잃어가던 긴 어둠 속에서 완성한 교향시 '나의 조국'을 떠올리며,

이 조용한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이 세상을 다시 듣기 위해 얼마나 깊은 내면을 건너갔을지 생각해 보았다.








요셉 바할의 포트모네움 미술관도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니 닫힌 문은 마치 도시가 가진 여백을 더 깊게 느끼라는 신호 같았다.

리토미슐은 보여주기보다 숨겨두는 것을 더 잘 아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 여백 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숲이 깨어날 때의 부드러운 현악, 풀잎을 스치는 바람 같은 목관의 잔향.

도시 전체가 낮게 깔린 서곡처럼 느껴졌다.



닫혀 있는 문들 사이로도 조용한 방식으로 자신을 내어주던 곳, 리토미슐.

여행은 완성되는 게 아니다.

그 빈자리 덕분에 다시 떠날 궁리를 하곤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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