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1 남자 1
드라마 <졸업>에서 남청미와 최승규의 대화를 보다가 힌트를 얻어서 써 봤습니다.
“익숙하네, 자조가.”
“이 쪽 애들 원래 그래요. 문돌이들, 대학원생들, 예백들.”
“예백?”
“예비백수.”
“와.”
“뭐요.”
“자조도 그 정도 되니까 뭔가 경지로 보인달까.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 아니, 그러고도 살아 있는 게 신기하네.”
“밝으니까.”
“그러게요. 참 밝네요. 자조가 일인 사람이 그렇게 밝기도 쉽지 않은데. 믿는 구석이 있는 자의, 뭐 패션 자조 같은 거예요?”
“믿는 구석, 있지요. 구석이 있지요.”
“아아. 아직 환금성이 확인 안 돼서 그렇지, 사전 증여 끝난 땅도 좀 있고 그래요? 여주? 아니 요샌 평택이 대세인가?”
“내 방구석이요. 다 같이 쓰는 연구실 구석. 아무도 안 오는 도서관 구석 힌두교 경전 자리.”
“계속.”
“거기서 내가 읽다가 알아낸 것들. 도무지 지금 세상에서 돈하고 바꾸려야 바꿀 수도 없는 무용한 건데, 이게 막 그 구석탱이만 갑자기 밝아지는 느낌.”
“아니, 보통 그러면 자조가 아니라 뭐 자존감이 올라가고 그런 게 일반적이지 않나?”
“이게, 자존감이란 게요, 100% 내적 요인으로만 작동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주 조금일도 외부에서 알아줘야 하거든. 아무리 인프피(INFP)라고 해도, 최소한의 외적 인정이 있어아, 이 내적 동력이 돌아가거든요. 미군 핵항모가 아무리 무한동력에 가깝다 그래도 우라늄이 있어야 되잖아요. 아주 극소량이라도.”
“자조가 그걸 해결하는 방법이 돼요?”
“기대를 안 하게 되거든요. 자조를 하면. 세상에 대한 기대를 끊으면, 환하게 빛나는 내 구석이 더 환해지는 느낌이라서.”
“가족은요?”
“가족이 제일 싫어해요. 티 다 나는데 안 내는 척 싫어해요. 아빠 빼고.”
“어머니는요?”
“나 살피느라 자기 친아들 못 챙겼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설마.”
“원래 잘 해주셨어요. 그간 고생해주신 게 있으니 나도 말은 못하지. 그래서 더 밝은 자조 하는 거지.”
“안 됐다. 좋은 걸 같이 좋아해 줄 사람이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