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은의 타이완 푸방 앤젤스 이적이 주는 메시지
2024년의 아이콘이라 할 만한 인플루언서라면 누가 있을까요? 단연 전 기아타이거즈 치어리더 이주은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아직 앳된 티가 흐르는 아기 같은 외모, 무표정이 너무 잘 어울리는 백설기 같이 흰 얼굴 여기에 치어리더 기준으로는 다소 어설퍼 보이는 춤동작. 화장을 고치다가 삼진 세리머니를 위해 급히 일어서서 췄던 '삐끼삐끼' 댄스를 약간 로 앵글에서 찍은 그 모습이 전세계를 강타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주은 치어리더가 최근 타이완의 푸방 앤젤스 구단의 치어리더로 입단했습니다. 타이완의 프로야구 치어리더는 외주 업체 직원으로 활동하는 한국과 달리 엄연히 구단 직원입니다. 연봉이 한화 기준 4억 4,000만 원이라고 하죠. 푸방 앤젤스는 기아 타이거스에서도 뛰었던 투수 크리스 세든이 진출했던 팀이기도 합니다. 좀 더 과거로 올라가면 그 전신의 전신의 전신…쯤 되는 준궈 베어스에는 과거 빙그레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도인 투수' 한희민이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주은의 타이완 프로야구 구단 치어리더 진출설은 꾸준히 나왔고 올 게 왔다는 분위기입니다. 선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팀 선배이기도 한 이다혜 치어리더가 한국인최초로 타이완 프로야구팀 치어리더 입단 물꼬를 텄죠. NC 다이노스 치어리더, 레이싱 모델 출신이자 틱톡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아영 씨도 대만에서 활동 중입니다. 이주은보다 한 해 일찍 푸방 앤젤스 치어리더가 됐죠.
비단 프로야구 치어리더뿐만 아니라 타이완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활동하는 한국인 여성 인플루언서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같은 중화권으로 치면 중국에서 벌 수 있는 돈이 압도적이지만 초상권, 저작권 등의 개념을 말아먹은 기업들이 많고, 자기들에게 불리하지 않으면 묵과하는 중국 당국의 행태 등은 인플루언서 사이에서도 좋지 않은 입소문이 이미 나 있죠. 특히 팬데믹 이후로 중국 내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왕홍(중국 인플루언서, '왕뤄홍런 网络红人'의 줄임말)들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특히 미중 대결이 격화하면서, 미국 편이라고 생각되는 한국인들은 중국 기업이나 당국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죠.
그에 비해 타이완은 아무래도 자유진영에 속해 있는 만큼 한국에 대한 호감이 있습니다. 20대 시절, 다니던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타이완 출신 형이 있었는데 자기네 나라를 대만, 타이완으로 제대로 부르는 나라는 몇 없고 그 안에 한국이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K-팝의 위상이 크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타이완 출신 아이돌도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비슷한 체제 국가에 대한 신뢰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여성들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인스타그램만 조금 잘 관리해도 식비와 의류, 일상 소모품 등의 걱정이 없어진다. 물론 몇 년 전보다는 기업들이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줄이고 있지만 그 외에도 방법은 많습니다. 여행도 아주 저렴한 비용 혹은 공짜로 즐길 수 있죠.
하물며 '공식적'으로 외모가 '인증'된 치어리더의 경우에는 더합니다. 플래그십급 카메라를 들고 야구보다 야심에 꿍꿍이가 있는 유사연애 희망 아재 사진술사들이 바이럴을 맡아 줍니다. 특히 이 아재들은 다른 건 몰라도 여성의 피부를 잡티 하나 없는 백옥으로 만드는 데 달인들이죠. 치어리더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고마운 존재인 건 맞다. 그래서 가끔 단상에서 팬 서비스를 하기도 합니다.
이게 팀 응원단 차원에서는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선수들이 주목받아야 할 경기에서 주객이 전도되는 듯한 상황도 연출되고, 이들을 촬영하려는 이들은 야구를 관람하러 온 다른 관람객들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특정 구단에서는 응원단장이 치어리더를 SNS에서 공개 저격하기도 했죠. 이는 해당 치어리더가 악플에 시달리는 계기가 됐고 이것이 타이완 프로야구단으로의 이적에 큰 원인이 됐을 거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다혜 치어리더의 케이스죠.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응완단장과 치어리더는 소속이 다릅니다. 치어리더는 에이전시로부터의 파견직입니다. 물론 업무 상 응원단장이 지시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외 SNS 저격 같은 행위가 나왔다는 것에는 맥락이 있습니다. 적어도 에이전시가 적극적으로 해당 치어리더를 보호하지 않았다는 뜻이죠.
이주은, 이다혜 치어리더가 속해 있던 에이전시는 해당 업계에서 상당한 규모를 갖고 있습니다.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축구, 농구 등 주요 프로스포츠에 치어리더를 파견하고 있죠.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치어리더들의 활동기가 무척 짧습니다. 즉 가장 예쁠 때 들어와서 얼굴을 알린 다음 다른 길을 찾아서 퇴사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수준의 박봉이라는 것이죠. 이건 과거에도 그랬습니다만, 요즘도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앞서 언급한 이유로, 각자 알아서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이 많은 시대이니, 알아서 먹고 살라는 기조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인재들이 나가게 두는 에이전시들을 보면 요즘 같은 시대에 돈 될 만한 자원들을 그냥 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미지의 환금성이 최대인 시대, 이만큼 좋은 자원이 어디 있을까요?
원픽이엔티라는 MCN이 있습니다. 컨텐츠는 간단하죠. 매력적인 외모의 인플루언서들이 화제가 되는 춤을 추는 장면만 촬영해 세로 화면에 최적화시켜 내보내는 겁니다. 이아영 치어리더를 포함해 'Kick Drum Bass 챌린지'로 유명해진 이화여대 무용학과 출신의 장진원, 이주은, 이아영과 함께 푸방 앤젤스 치어리더로 활동하게 된 김자인 치어리더도 원픽이엔티에서 숏폼 댄스 영상으로 활약하던 이들입니다.
2023년 출범 당시 원픽이엔티에는 이아영과 장진원 정도가 다였지만 지금은 15명의 인플루언서를 거느린 MCN이 됐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원픽이엔티가 아예 에이전시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하겠다고 덤벼들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치어리더 에이전시들은 그 좋은 인적 자원들을 갖고, 그걸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이 사업 모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흔한 유튜브 채널을 제대로 운용하는 곳도 드뭅니다. 이다혜, 이주은 치어리더가 있던 에이전시의 홈페이지는 언제 업데이트했는지 모를 올드한 디자인입니다. 홍보 이미지에도 전설 같은 인물들이 나오네요.
물론 신사업 아니라도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한, 정확히는 대표자가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상황이라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치어리더 정도야 어차피 소모품으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죠. 아마 내부 직원들이 MCN의 운영을 제안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원금 회수 시기가 다소 길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에이전시들의 노쇠화를, 새로운 MCN들이 노리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봐야 할 겁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원픽이엔티와 같은 숏폼 위주 MCN들은 소속 인플루언서들에 대한 지원이 큽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에이전시 업종을 추가하고, 인플루언서들의 몸값을 수익화하고 서로 만족할 만한 배분 비율까지 갖추면 기존 에이전시들은 큰 타격을 입을 확률이 커보입니다.
저는 이주은 치어리더의 이적을 보면서 중견 이하 규모의 언론사들도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큰 언론사들은 기자 개인 페이지를 만들고, 기자 개인을 스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몇 년 됐죠. 기자란 직종은 여러 다른 사무직종과 달리 자신의 이름으로 사는 몇 안되는 이들입니다. 많은 기자들은 나중에 책을 내고 작가가 되기도 합니다.
이건 시대의 변화에 대한 부응입니다. 더 이상 독자들은 신문이나 잡지의 제호만을 보지 않습니다. 매력적인 개인의 컨텐츠를 소비하고 싶어하는 것이죠. 메이저급 언론사들은 이를 간파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해당 기자들의 퇴사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키워 놨더니 빠져나가기를 반복한다는 겁니다. 그런 이유로 중견 이하 언론사에서는 도입이 어렵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메이저 언론사야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섰지만 중견 이하 언론사의 경우 구인난이 심각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퇴사와 이직이 빈번한 현장에서 선후배(이제는 후배급이 더 많아서 크흠)들을 보면, 해당 언론사들이 너무 경직된 게 아닌가 합니다. 돈을 벌 기회 앞에 경직됐다는 말입니다. 생각만 바꾸면 다른 식으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즉 언론사가 스타 기자를 키우는 에이전시 역할을 하는 것이죠. 기자들은 누구나 더 큰, 더 공신력이 높은 매체로 이직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런 매체에서는 어느 정도 중견급 매체에서 경력을 쌓은 이들을 수급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이 니즈를 잘 이용하면 '기자/리포터 에이전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자동차 판에서는 '차봤서영'이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훌륭한 크리에이터가 있습니다. 연합뉴스의 '통통테크'라는 채널에서 활동했던 언론인 출신이죠. 어느덧 실버버튼을 받았습니다. 같은 채널에서 활동했던 김주연 씨는 'ZUYONI'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무려 71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통테크가 망했을까요? 아니요. 여전히 다른 기자, 리포터를 영향력 있는 리포터로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인기 크리에이터의 산실인 겁니다. 물론 연합뉴스라는 거대한 언론사니까 가질 수 있는 구조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그렇다고 작은 언론사가 이를 무조건 할 수 없는 일일까요? 키워 놓으면 나간다는 푸념은 낡은 것입니다. 그게 언론사 사장님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키워서 파세요. 좋은 값에 말입니다. 계약서도 쓰시고요. 성장을 적극 지원하고 필요하면 개인 채널을 개설해 주는 MCN의 역할을 스스로 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눌 수 있는 이익은 그냥 직원 한 명을 오래 붙잡아 둬서 생기는 이익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게 요즘 여러 사례로 증명되죠. 하다못해 협찬 갈라먹기를 해도 그냥 월급 주는 것보다 이익이 되지 않을까요?
제발 직원의 성장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장하는 직원, 인기 있는 기자는 대표자에게 돈이 되면 됐지 해가 되진 않습니다. 말로는 '내가 키워주려고 해도 의지가 없다'고 하시지만 과연 얼마나 투자를 하고 계시나요? 사업자에게 직원 교육 명목으로 지원될 수 있는 다양한 국비가 있는데,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라며 도외시하는 기회는 얼마나 많은지 저도 많은 중소, 중견 언론사를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그 안타까움이 이주은 치어리더의 무해한 표정을 보며 더 크고 단단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