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기야 조용히 꺼지거라
격주로 올려야 하는 글이지만, 오늘은 세계 요리를 탐구할 마음이 전혀 없기에 제 마음대로 순서를 바꿨어요. 학기가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반복되는 내용이 많아서 쉬운 구석도 물론 있지만요, 이번 학기에 배우고 있는 perinatal 이 어지간히 괴롭히네요. 이 과목은 출산 전후의 산모와 태아의 생리/병태/간호를 다루는데요, 강사의 강의가 알아야 할 분량을 채워주지 못해 공부해야 하는 양이 참 과격합니다. 전 전자책이지만 종이책을 들고 오는 친구들을 보니 4천 장이 넘는 책이더라고요. 다음 학기에도 줄곧 배울 예정인데요, 이래저래 강의질에 불만족스럽습니다. 이러면 학생이 고생해야지요 뭐. 2학기와 4학기가 제일 힘들다고 하는데, 3학기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적어도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짠 커리큘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씨.
사진을 먼저 공개했어요. 네, 두 번의 median cubital 실패 후, cephalic 정맥을 무사히 뽑았습니다. 기술면에서는 자신 있는데, 아직은 보이는 정맥이 맘 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절반은 보이진 않지만 만져지는 정맥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 부위를 기억하며 찌르기가 선뜻 겁이 납니다. 이 말을 강사에게 하니, go with your gut 느낌대로 하라네요ㅋㅋㅋ 제가 제일 유념하고 있는 부분은 제가 손을 떨어 혹여나 환우의 천자 부위를 아프게 하지 않지 않을까 하는 건데요, 다행히 손을 떨지 않아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과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덜덜덜 떨까 봐 걱정이 많았거든요.
위의 사진은 제 배우자의 피입니다. 어제는 학교 랩에서 동기들의 정맥을 채혈했는데요, 저 또한 오른팔, 왼팔을 내어주었습니다. 오른쪽을 맡은 친구는 실수가 조금 있었지만 무사히 성공했고요, 왼쪽 친구는... 긴장을 워낙 해서 중간중간 실수하는 부분이 많았는데요, 성공적으로 채혈하지는 못 했습니다. 친구가 긴장을 하는 게 저에게도 느껴지고, 자신 없어 보이는 모습에 저 또한 긴장이 돼서 앉아있는 동안 입의 침이 마르고, 똥줄이 타더군요. 이래저래 아픈 건 매한가지인데 다음 주에는 침착하고 조용히 지켜봐 줘야겠어요.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방금 봉사활동을 하고 왔어요. 설마요, 스스로 자원했을라고요. 지역사회 간호학 과목의 기말고사가 봉사 활동을 세 군데 하고 리포트를 제출하는 것입니다. 이제 두 번 했네요. 월요일은 구세군 산하 기관에서 마지막 봉사활동을 해야 합니다. 다음 주에도 여전히 시험 2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번 학기의 마지막 과제 4개도 있을 예정이고요.
그간 세 명의 얼굴이 사라졌어요. 4학기가 시작되는 20일 후에는 몇 명의 얼굴이 사라질까요. 적어도 그중 제 얼굴을 없기를 바랍니다. 토요일이니까 오늘은 영화를 한 편 보면서 방전된 기를 충전해볼게요. 모두 잘 자요.
Cover Photo by Javardh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