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녕 May 09. 2023

전역

60 시간 후 종료

곧 전역하여 민간인이 되는 제 제자의 마음이 저와 같을까요? 사실상 학교는 4월 초 이후로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모든 친구들이 프리셉터십이라고, 쉽게 말하면 마지막 실습을 200시간 빡세게 하고 있을 겝니다. 저 또한 이제 막바지에 들어섰는데요, 프리셉터십이 다른 친구들보다 이르게 시작되어 19일이 드디어 마지막 날일입니다. 이번 실습과 이전의 실습의 차이라면 매 근무마다 저를 1대 1로 평가하는 프리셉터가 있다는 점이랄까요? 프리셉터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 간호사는 무척 쿨합니다. 프리셉터십은 일하는 제가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돈을 주고 참여하는 것이라,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미 저와 같은 길을 거친 제 프리셉터는 1-2시간 일찍 집에 가라고 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만... 규정은 규정이기에 달콤한 유혹을 어쩔 수 없이 무시하고 있습니다. 60시간이면 끝인데, 끝까지 존버하겠습니다.  


프리셉터십은 프리셉터의 병원 근무 일정에 따라 지옥과 지상이 구분되는데요, 제 프리셉터는 이틀은 12시간 데이 근무이고요, 바로 이틀은 12시간 나이트 근무입니다. 그리고 5일 오프이지요. 문득 보면 꿀잡이다 싶습니다. 저도 시작 전에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쉬는 5일은 나이트 근무로 뒤 바뀌어버린 몸의 리듬을 다시 회복하는 시간으로 몽땅 씁니다. 네, 잠만 줄곧 잤습니다. 나이트 근무가 끝나는 당일과 바로 다음 날은 항상 좀비가 되어 있지요. 현재 저는 4일의 오프가 지나는 시점인데요, 드디어 몸이 회복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이때부터 집안일이라든지 공과금을 낸다든지, 우체국을 다녀온다든지, 도시락을 싸갈 음식을 한다든지, 치과를 간다든지 등등의 일상생활을 할 수 있어요. 보수를 생각하지 않고선 절대 존버하고 싶지 않은 근무 스케줄입니다. 


나이트 근무중...


프리셉터십 위치 선정은 본인이 앞으로 일 할 분야로 정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호스피스를 신청했습니다. 급우 대부분이 병원을 썼기에 저는 경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요양병원으로 프리셉터십을 신청하려다가 급 변경한 저의 선택에 무척 감사했지요. 제가 일하는 호스피스는 최대 10명의 환우를 받게 돼있습니다. 의사의 진단하에 남은 수명이 3개월 미만일 때만 입원 자격이 되고요. 제가 일하는 호스피스는 전액 무료로 후원이 기반인 기관입니다. 호스피스 특성상 2 주에 한 분은 돌아가십니다. 말 그대로, 오프 후에 출근하면 돌아가신 분이 꼭 계시지요. 대부분 뇌종양이나 암인 경우가 많고요. 다만 연세에 따라서 암과 다양한 동반 질환이 많으시긴 하지만 호스피스이기에 치료에 의의가 있기보다는 통증관리에만 초점을 둡니다. 덕분에 모르핀과 진정제가 제가 드리는 대부분의 약물입니다. 


현재 이사지 최종 후보를 토론토로 바꾸게 될 만큼, 호스피스에서 일하는 것이 무척 좋아졌습니다. 이 선택의 최고 단점은 정부에서 제공되는 시골에서 일할 때 주는 혜택인 최고 2천만 원의 학자금을 제해주는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분명 호스피스가 그 동네에 있다면 제 선택에는 변화가 없었을 거예요... 그만큼 저는 호스피스에서 일하는 것에 푹 빠져버렸어요. 에혀. 뉴브런스윅도보다 온타리오도가 훨씬 호스피스 케어가 진보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더욱 기대가 됩니다! 학자금 까이꺼 갚지요, 뭐. 


실습이 최종적으로 끝나면 간호대 졸업생 자격으로 일을 하는 게 보통인데, 전 또 쳐나갑니다. 2년간 얻은 제 흰머리를 데리고 한 달간 상춘객으로 섬으로 절친을 보러 갑니다. 국시가 7월 중에 있는데요... 너무 해이해 지지 않게 시간표를 짜서 복습과 예상 문제 풀이를 할 예정입니다. 이 매거진의 끝은 제가 국시를 붙는 날이겠네요ㅋㅋㅋㅋ 사실 프리셉터십을 하면서 공부를 할 여력이 될 줄 알았던 것은 12시간 로동의 빡셈을 제가 간과했던 탓이 큽니다. 공부는 6월부터 하기로 해요, 우리. 친구들과 밤새 수다 떨 생각에 벌써 신이 났어요. 하지만 지금 제 눈은 졸음에 동태눈알이 된 상태이고요... 엄... 너무나 늦게 생존신고를 하러 찾아온 저를 용서하시구욤. 열심히 살고 있었구나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실습 끝나고, 공항에서 뵙기로 해요. 

매거진의 이전글 마지막 학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