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시까지 오늘부터
5주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여행 얘기는 시험이 끝나면 포스트를 만들어 제가 겪은 영국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실 돌아오는 날 Pin dinner라고 제가 살고 있는 뉴브런스윅 도(캐나다는 미국처럼 주가 아닌 한국처럼 도를 씁니다.)의 간호사협회 대표가 학생에게 직함이 달린 LPN 핀을 달아주는 행사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미련이 없답니다. 사람에 지쳤으니까요.
6월 28일은 졸업일이었습니다. 물론, 불참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졸업식을 가본 경험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은 대학교 OT와 겹쳐 어쩔 수 없었습니다만 대학교는... 굳이... 전문대학이라고 제가 챙겨 갈 일 없지요. 졸업식에 안 간다는 말에 주변 친구들이 놀라며 어째서 라는 반응을 보일 때마다 똑같이 얘기해 줬습니다. '대학 때도 안 갔는걸 뭘~'
고등학교 때만 해도 정말 유교적 사고관을 가진 훈장님 같았는데, 지금의 저는 장자가 아닐까 싶어요. 의례나 의식은 인간 본연의 속성을 채워주는 듯 하지만, 그래서 안정감을 주나... 전 굴레 같아서 피하게 되네요. 막내인 게 티가 나나요? 강제로 시키면 반대로 갑니다. 20대 까지도 입 닫고 까라면 깠는데, 30대부터는 입을 닫으라 하면 귀를 닫고 있더군요. 앞으로 40대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요.
멀리 왔네요, 이야기가. 다시 시험으로 돌아가지요. 시험공부는 사실 영국에서 여행 중에도 틈틈이 해왔습니다. 그래서 가끔 여행 같지 않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학생은 공부 안 하면 불안하잖아요? 약명이라도 반복해야 잠이 오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외계어 같은 면역저하제 이름은... 그냥... 보면 토 나와요.
이제 제대로 공부한 지 한 주가 지났는데요. 오늘은 반나절 휴일로 정했습니다. 7일 중 한 번은 좀 풀어주는 날도 있어야지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아동간호학에 쏟습니다. 워낙 자료가 방대해 이것이 기억에 날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요, 어쩌겠어요,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봐야지요. 앞으로 한 주간 각 계통의 질병에 관련된 아동간호를 복습하면 끝인데요, 나머지 시간은 찜찜한 부분만 복습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이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국시의 40프로가 아동간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학기 중에도 제일 분량이 많아 지치게 했는데 참 거머리 같은 학문이네요.
공부를 시작한 첫 주 초반에는 저녁에 잠이 들 때마다 '아, 자기 싫다. 내일 또 반복이잖아.' 아침에는, '일어나기 싫다. 오늘도 똑같을 거잖아.' 했지만... 이틀을 겪어보니 이런 생각이나 자세가 저에게는 달리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의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자.', 저녁에 잘 때는, '오늘도 수고했어.'라고요.
운동은 습관처럼 매일 하고 있는데요, 학생이 아닌 이상 더 이상 운동을 제쳐둘 변명거리가 달리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걸어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요가는 숙제 같아서 일단 제일 만만한 속보를 하는 중입니다. 대신 요가 호흡법으로 아랫배에 힘을 주고 있어요. 오르막 길이 나올 때마다 지옥의 맛이라고 하면 믿으실까요. 처음에는 음악을 들으면 걷다가 반복되는 음악에 지겨워 걷는 즐거움을 증강하기 위해 뭐가 좋을까 챗 GTP에게 물어보니 mindful walk을 추천해 주더군요. 걷는 것조차 명상으로 이용하라는... 그 이후로는 호흡에 집중하면서 걷는 중입니다. 지루할 새가 없습니다. 하나만 집중하니까요ㅋㅋㅋㅋㅋ 가끔 마주치는 캐나다 구스 떼나 꿩을 보는 것도 큰 재미이기도 합니다. 구스들은 새끼가 있을 때 위협적이기에 그냥 제가 멀리 돌아가요. 고양이만 하악질을 하는 게 아니었더라고요. 혹시 들어보셨나요? 의외로 무섭습니다.
아차차, 좋은 소식이 있어요. 전 시험만 보지 않은, 졸업한 간호생입니다. 이전 프리셉터십을 했던 호스피스에 취직이 된 상태입니다. 시험에 몰입을 하고 싶어서 첫 출근은 시험을 보고 난 다음으로 조율했고요. 이렇게 학생 대출금을 갚는 여정이 시작되었네요. 그래도 더 이상 노동력에 비해 허탈했던 시급을 벌지 않는 것에 큰 위안입니다.
이제 슬슬 기출문제를 풀어 볼게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