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 말링, 어느 여자의 노래

Fickble and Changeble, Semper Femina

by 김도헌


로라 말링처럼 평단의 꾸준한 지지를 얻는 아티스트는 흔치 않다. 한국 나이 열여덟 영국 나이 열여섯에 여성 포크 싱어송라이터의 계보에 이름을 올렸고, 그 수준은 매 작품마다 쏟아지는 비평가들의 극찬과 영국 최고의 영예 머큐리 어워즈, 브릿 어워즈의 단골손님으로 매번 증명된다. 6장의 정규 앨범으로 견고한 음악 세계와 고유의 정체성을 쌓아나가는 로라 말링에게선 '전설' 조니 미첼, PJ 하비, 토리 에이모스 등이 겹친다.


영국의 준 남작 말링 가문의 딸로 태어난 로라는 레코딩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아버지 덕에 자연스레 음악에 눈을 떴다. 열여섯 나이로 음악 활동을 모색하던 그는 연인 찰리 핑크(Charlie Fink)가 리더로 있는 팀 노아 앤 더 웨일(Noah and the Whale), 미스터리 제츠(Mystery Jets), 더 레이크스(The Rakes) 등 영국의 인디 밴드들을 거치며 자신만의 '뉴 포크(Nu Folk)' 스타일을 확립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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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버진 레코드에서 발매한 첫 앨범 < Alas, I Cannot Swim >은 찰리 핑크가 프로듀싱하고 멈포드 앤 더 선즈(Mumford & The Sons)의 리더 마커스 멈포드가 퍼커션을 맡았으며 작사 작곡은 오롯이 로라 말링, 본인의 솜씨였다. 십 대의 끝자락에 위치한 사랑을 음울한 정서로 노래한 이 데뷔작은 특유의 담백한 정서와 1970년대 싱어송라이터들의 바이브를 연상시키며 비범한 시작을 알렸다.


스무 살 2010년의 소포모어작 < I Speak Because I Can >이 발매되자 더 이상 세상은 그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루퍼스 웨인라이트, 킹스 오브 리온을 프로듀싱한 에단 존스(Ethan Johns)가 힘을 보탠 앨범은 소녀에서 성숙해가는 여자로의 정체성을 과감하게, 때로는 진솔하게 표현해냈다. 매력적인 보컬과 은은한 감성, 들리는 멜로디의 삼위일체는 로라 말링에게 UK 앨범 차트 4위를, 브릿 어워즈의 브리티시 솔로 아티스트 상을 안겨주었다. 이후 발매한 앨범도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로라 말링은 21세기 믿고 들을 만한 포크 싱어송라이터로 그 입지를 공고히 했다.


로라 말링은 작품을 인공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들어낸 어떠한 다른 결과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투영하는 결과물이고, 때문에 그 노랫말과 멜로디는 온전히 그만의 것이 된다. 창작자로서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로라는 "아티스트로의 정체성과 나 자신으로써의 정체성이 구분되는 것은 진실하지 못하다"라고 말한다. 때문에 로라 말링의 커리어는 그 특유의 자연스러움으로 개성의 부재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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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발매한 6번째 앨범 < Semper Femina >는 그런 한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만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고대 로마의 베르길리우스의 시 구절 '여성은 항상 변하지만, 언제나 여자다.'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제목 아래 그는 데뷔 때부터 지속적으로 가져온 여성 아티스트의 역할과 그를 바라보는 사회의 고정관념, 순수한 여성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뉴스위크와의 인터뷰 한 구절을 인용해보자.


“사람들은 내 음악에 비극적인 내러티브를 끼워 넣었다. 우리 문화는 여성의 비극을 좋아한다. 그런 전통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 비극적이거나 고독한 캐릭터가 아닌 다른 유형의 여성 이야기는 좀처럼 쓰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나는 여성에 대한 그런 고정관념을 바꿔보려 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천성적으로 거기에 저항감을 갖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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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로라는 < Reversal Of The Muse >라는 제목의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했다. 여성 싱어송라이터와 아티스트, 프로듀서, 엔지니어들을 게스트로 데려와 인터뷰하고 음악 산업 내에서 여자들의 역할과 편견, 제한된 권한, 불합리한 대우를 살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으로부터 < Semper Femina >의 아이디어가 만들어졌고, 그 내용은 섬세한 로라의 노랫말과 멜로디, 아름다운 뮤직비디오와 섞여 고유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연대와 결별, 상처와 그의 치유 과정, 그 과정을 통해 어떻게 불완전한 한 명이 고유한 하나의 여성으로 탄생하는지. 앨범 후반부의 'Nouel'에서 'Fickble and Changeble, Semper Femina'라는 핵심 구절이 흐르며 하나의 작품이 마무리된다.


Laura Marling - Soothing
Laura Marling - The Valley




'새 시대의 고전주의자'로 남는 것 이상의 성취를 거두려 하는 로라 말링은 흐름에 부합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정체성에 민감한 21세기,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는 특유의 가녀린 섬세함, 있는 그대로의 꾸미지 않은 순수한 감성으로 삶을 노래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해나간다. 동시에 여성, 외모로부터 오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으며 끊임없이 투쟁해나간다. 우리 세대에게 계속해서 유의미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현대의 포크 싱어송라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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