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진실이 곧 차별화의 시작
매주 글을 올린다는 게 지난 주에 일이 많아서 올리지 못했다. 추석 연휴를 기회로 삼아 이번 주에 글을 2개 올리는 것이 목표이다. 시작해보자.
지난 번에는 자기소개서 작성에 대해서 어떤 내용들을 작성해야 하는 지와 작성하기 어려울 수 있는 내용들에 대해서 방향을 잡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이번 주에 작성할 글은 <자기소개서>의 ‘스토리텔링’ 부분이다. 이번 글은 자기소개서의 앞부분 중에서도 “지원동기”를 작성하면서 겪을 수 있는, 자신의 약점을 다루는 문제에 대해서 실제 사례(구체적인 내용은 가공하여)와 함께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 지를 알려드리고자 한다. 다음 글에는 지원하려는 대학원에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요소에 대해서 정리할 예정이다. 이 다음에 비로소 ‘연구계획서’에 관한 글을 작성할 예정이다.
내가 작성하고 있는 대학원 입시 관련 글들을 묶어내는 제목은 <1학점으로 인서울 대학원 합격하기>이다. 이 제목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원 입시생을 만난 날은 찬바람이 많이 부는 연말 무렵이었다. 여러 대학원에 원서를 넣었으나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던 그는 마지막 희망으로 나에게 연락을 했다. 나는 처음부터 그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진 않았고, 첫번째 미팅 전까지 그의 자기소개서를 읽어볼 테니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대학원에 대한 막연한 어려움이 있는 지원자들은 본인이 생각하기에 지원하려는 대학원의 수준이 높을수록 자신의 이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쉽다. 특히나 학점이 1학점대로 낮다면, 아무래도 교수들한테 “성실하지 않았던” 학생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으로 대학원의 문턱을 가뿐히 넘는 학생들은 학점이 좋은 편이니까 말이다. 비유를 하자면 출발선상에서부터 큰 격차를 두고 시작하는 것과 같다.
낮은 성적 또는 지원하려는 대학원 학과와는 전혀 다른 학부 학과, 인지도면에서 지원하려는 대학원과 크게 차이가 나는 졸업한 모교, 높지 않은 영어 점수 등 대학원 입시생들의 어깨를 움츠리게 만드는 요인들은 제각각이다. 입시생들의 눈에 이러한 요인들은 자신들을 빛나게 하지 못하는 그림자처럼 느껴진다.
내가 만난 그 또한 그의 대학원 입시 패착 요인으로 자신의 현저히 낮은 학점을 꼽았다. 혼자서 포털 검색창과 유튜브를 도구로 삼아 대학원 입시를 준비했던 그가 나를 찾아온 건 결국 그의 주변에 대학원 입시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서는 맨 첫 글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그가 생각하는 그의 그림자에 대한 설명이 끝난 후에 나는 노트북 화면에 열어 둔 그의 자기소개서 파일 대신 그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그래서 더 좋은데요?”
그가 1학점이란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낮은 학점을 상쇄할 만한 주특기 만들기? 높은 영어 점수? 연구 보조를 한 경험?
그런 것들이 있었다면 애초에 그는 걱정이 없었을 것이고, 대학원 입시에서 낙방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질문은 방향성이 잘못됐다.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묻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림자를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지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
그에게는 다른 누구도 들려줄 수 없는 온전히 그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림자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바로 그의 weak point를 unique point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나의 역할은 없는 내용을 지어내는 게 아니라, 인터뷰를 통해 그가 가진 매력과 강점을 이끌어내서 그들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는 입시 동기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긴 얘기를 최대한 짧게 줄이자면 다음과 같다. 전문대를 1학점대로 졸업하고, 방황을 하다 우연히 자리잡은 직업이 마음에 들었다. 이 직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더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서 학점은행제를 이수하여 4년제 학위를 받았지만 그 또한 1학점대로 졸업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현 직업에 대한 욕심이 더 크게 생겨서 대학원 진학 결심을 하게 됐다.
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후에 우리가 세운 전략은 “공부에 관심 없던 1학점짜리 학부졸업생이 대학원이라는 인생을 뒤흔드는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설득력 있게 작성하는 것이었다. 교수들에게 ‘1학점짜리 학생’의 존재는 ‘불성실함’의 표본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몸담고 있는 아카데믹 세계에서는 보기 힘든 ‘이세계의 존재’와 같다. 그 말인 즉 대학 졸업을 시켜서 학교 밖으로 내보내면 기억에서 사라질 존재를 대학원이란 공간에서 마주했을 때, 그 호기심의 크기는 여타 지원생보다 클 것이란 얘기이다. 우리는 그 호기심을 이끌어내서 그의 학업에 대한 의지를 새로이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00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며~”로 시작한 듣기에만 좋은 그의 자기소개서 문장은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에 관심을 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 이라는 솔직한 말로 바뀌었다. (물론 각색된 문장이다)
우리는 스스로 빛나기 위해서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아니라, 그림자를 그대로 수용할 방법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림을 그릴 때도 밝은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자를 색칠하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인 자연현상 또한 그러하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단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의 그림자는 뒤로 숨기고, 자신이 더 빛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드러내고 말한다. ‘그림자’와 ‘빛’은 서로의 존재를 위해 공존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나의 전략을 반신반의하게 생각했다. 공부를 하기 싫어했고, 못했다는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자세히 하는 건 괜한 부스럼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하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00님이 살아온 이야기와 해왔던 생각과 선택은 00님만이 할 수 있는 자산이에요. 두루뭉술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00님이 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을 갖고 있어요.”
결론적으로 그는 그가 지원한 3군데의 대학원 모두에게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대학원 입시생 중에 자신이 가진 조건 때문에 자신감이 없다면, 오히려 잘됐다고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을 해주자. 그런 조건을 가진 나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자신과 자신의 연구물에 대해서 끊임없이 “성찰”해야 하는 대학원생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통과의례나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약점을 덮기 위해 다른 카드를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의 자기소개서를 읽는 교수들의 눈에는 “당신의 그림자가 대학원생으로서의 수학을 방해할 중대한 요소인지,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란 의문이 자연스레 들 것이다. 이 질문을 상쇄할 만큼의 매력적인 카드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정면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나의 그림자에 대해서 인정하고, 충분히 설명을 하자.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대학원 입시라는 선택을 하게 됐는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여러분의 자기소개서는 진실이 되고, 하나밖에 없는 차별화된 이력과 관점을 가진 사람으로 스스로 거듭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차별화된 여러분은 대학원에서 진행하게 될 연구의 유일성과, 넓게는 학계의 다양성에 기여할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소개서는 대학원 합격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합격 그 이후에 연구자로서 발돋움하기 위한 기나긴 과정의 시작일 뿐이다. 나는 적어도 내 글을 읽은 대학원 입시생들만이라도 자기소개서를 좀 더 의미있는 과제로 여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