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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친구 지혜 Jan 24. 2021

저 오늘 우울해서 결석합니다

교실 한 가운데에서 우울을 외치다

나는 개근상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1년에 한 번씩은 결석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결석을 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오늘은 학교 갈 기분이 아니라서, 잠이 좀 더 자고 싶어서, 학교 수업이 재미없어서 등등 학교를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이유는 생각할수록 많았다. 


아침에 부모님 두 분 모두 회사에 출근하시고 나면 집에 남아 있는 사람은 나와 할머니뿐이었다. 할머니도 처음엔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손녀를 어떻게든 등교시키려고 애쓰셨다. 하지만 나도 한 고집을 했던 터라 쉽게 마음을 바꾼 적이 없다. 그렇게 할머니가 포기를 하시면, 나는 그날만큼은 학교에서 아픈 학생으로 기록에 남았고, 그때부턴 그 누구도 학교 밖 나의 하루를 막을 수가 없었다.


‘아프다’라는 말은 프로 결석러에게 필수적인 마법 같은 주문이다. 누구든 아픈 사람에게는 너그러워지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아프다는 말을 남발해서였는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땐 이미 마음이 너무 많이 아픈 상태가 되어버렸다. 바로 회복할 수 없는 ‘우울’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우울이 내 곁에 자리하게 됐는지 셈을 하는 건 이제 와서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그래서 지금 내가 어떻게 아픈가 하고 헤아리는 일이니까. 기숙사 고등학교에서 나는 외출이 잦았다. 매번 내과에 가기 위함이었다. 가서는 어지러운 머리와 몸을 간이 침대 위에 눕히고 수액을 맞았다. 수액 봉투와 주삿바늘을 잇는 관을 통해 아미노산, 비타민 등이 흐르는 것을 보다가 까무룩 잠에 들곤 했다. 하지만 수액이 비어있는 마음 한구석까지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내가 맞은 수액 봉투가 스타벅스 프리퀀시를 모으듯이 넉넉하게 쌓여갈 때쯤 나는 무사히 졸업을 했고, 대학생이 되었다. 이제 성인이 되었다는 해방감이 좋았고, 배우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무엇 하나 행복하지 않은 게 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좋은 선생님들과 좋은 친구들, 그리고 이전처럼 아프지 않다는 느낌이 내 일상을 이끌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찰나였다. 아프지 않다는 건 내 착각이었다. 아픈 마음은 사람을 보는 눈을 흐리게 만들고, 내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사람을 사귀는 걸 허락했다. 자기 연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에 긴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경찰서에 전화를 걸고 나서야 나는 상대방만큼이나 내가 망가졌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결석은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침대 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밥을 먹는 것도 귀찮아서 끼니를 연달아 먹지 않고 무기력하게 천장만 바라봤다. 눈 뜬 시간보다 감고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학교 과제를 완성하지 못했고, 시험을 제대로 응시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을 ‘정말 아팠다’란 다섯 글자 대신, 자기 연민 없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아직 나는 찾지 못했다. 


또다시 학교에서 나는 아픈 학생이 되었다. 몸이 아닌 마음이 아픈 사람이란 걸 스스로 알고 나니 어딘가 속이 갑갑해졌다. 아프다고 말할 때마다 어디가 아프냐는 주변 사람들의 물음에 나는 거짓 병명을 늘어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아프지 않았기에 아프다는 거짓말이 참 쉬웠는데 말이다. 


수업에 또 결석한 채로 무기력과 꿈 사이를 헤맬 때 이런 장면을 떠올린 적이 있다. 학생들이 가득 차있는 교실 한가운데에서 손을 들어 교수님께 말한다, “저 오늘 우울해서 결석합니다.” 그러고는 자기 물품을 챙겨서 교실 밖을 나가는 거다. 자유로워진 나는 이곳저곳을 가벼이 노닐며 나를 위한 하루를 보낸다. 침대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순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끝없는 후회들 속에 내가 떠올린 가장 가벼운 상상은 그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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