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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모 Sep 03. 2020

로즈의 (비)극적인 생애가 보여주는 것들

영화〈로즈〉(The Secret Scripture, 2017)를 보고 

영화 〈로즈〉는 짐 쉐리던 감독, 루니 마라 주연의 아일랜드 영화이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당시를 살아가던 젊은 시절의 '로즈'가 겪게 되는 사건들이 펼쳐지는 과거 시점과 그 후로부터 50년 동안을 정신병원에 갇혀 지낸 늙은 '로즈'가 '닥터 그린'을 만나게 되는 현재 시점이 계속해서 교차되면서 진행되는 플롯의 구성을 띠고 있다. 이러한 영화 전체의 교차편집의 구성은 오프닝 씬에서부터 암시되는데 내가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도 이 오프닝 씬이었다.



오프닝 씬


영화가 시작되면 정신병원의 복도에 서 있는 늙은 로즈가 복도의 풍경을 보고 있다. 로즈의 시점 쇼트로 제시되는 정신병원의 현재의 복도 풍경을 보여주는 쇼트에서 과거 시점의 정신병원의 복도 풍경을 보여주는 쇼트가 겹쳐지고 과거 시점의 소리들이 늙은 로즈의 귀에 환청처럼 들려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배경에 깔린 채 정신병원으로 향하는 닥터 그린의 모습과 로즈의 모습이 교차편집으로 제시된다. 디제시스 바깥의 음악인 줄로만 알았던 〈월광 소나타〉는 오프닝 씬이 마무리되는 시점, 닥터 그린이 정신병원에 도착해 늙은 로즈와 마주치는 장면에서 디제시스 내에 존재하는 음악임이 밝혀진다. 늙은 로즈가 정신병원 내에 있던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 뒤늦게 보여지는 것이다. 이 오프닝 씬은 주인공인 로즈에게 정신병원과 관련된 부정적인 과거의 어떠한 사건들이 있다는 암시, 그리고 영화가 그녀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교차해 보여줄 것이라는 점, 그리고 닥터 그린과 늙은 로즈의 만남이 영화를 출발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 영화의 내러티브에서 〈월광소나타〉가 디제시스 안팎으로 주요한 기능을 할 것이라는 점을 동시에 효과적으로 잘 전달한다. 



월광 소나타


영화 속 가장 주요하게 쓰이는 음악인 〈월광 소나타〉는 로즈의 기구한 삶의 비극성을 더 고조하고 때로는 긴장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러티브 상에서 로즈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마이클과 나눴던 대화의 소재이기도 하기에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는 행위는 로즈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마이클과의 행복한 순간을 기억하는 매개로도 기능한다. 즉, 디제시스 안에서 〈월광 소나타〉는 마이클과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비극 (혹은 더 나아가 비극적이었던 로즈의 인생 전체)을 상징하고, 디제시스 밖에서도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조율하며 과거 시점과 현재 시점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음악인 것이다.

오프닝 씬에서 교차편집과 함께 유려하게 쓰인 이 음악은 영화 곳곳에서 반복되는데, 이 음악이 쓰인 가장 의미심장한 장면은 마이클과 로즈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현재 시점에서 늙은 로즈가 정신병원에 있는 피아노로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며 과거 회상에 빠지는 듯한 장면과 과거 시점에서 로즈가 마이클과 성관계를 맺는 장면이 여러 번 교차 편집되어 보여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가장 행복한 순간에 흐르는 〈월광 소나타〉 음악은 그 순간 직후에 도래할 파국(로즈는 정신병원에 끌려가고 마이클은 양장점 젊은이들에게 처형당한다)을 불길하게 암시한다. 또한 다시 한번 로즈의 삶을 흔들어놓음(정신병원 내에서의 임신과 탈출 시도 후의 출산)과 동시에 먼 훗날 그녀를 구원할 아들을 잉태하는 순간이기도 하기에 이 순간의 〈월광 소나타〉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로즈의 삶 전체를 함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


과거와 현재 시점을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영화의 플롯은 현재 시점에서 닥터 그린과 늙은 로즈가 만나 늙은 로즈의 이야기를 듣고, 늙은 로즈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쓴 책을 읽음으로써 과거 시점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영화의 한국 개봉 제목은 〈로즈〉이지만 원제는 ‘The Secret Scripture’이고 영화의 원작인 소설 또한 동명의 제목을 가지고 있다. 이 원제의 뜻이 암시하듯이 영화 내에서 로즈가 정신병동에서 자신의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성경에 필사적으로 덧썼던 책 "The book of Rose"가 바로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과거 시점의 로즈의 기억인 것이다. 과거 시점의 로즈의 이야기를 관객과 함께 닥터 그린이 점점 알게 되면서 로즈가 기다렸던 아들이 바로 닥터 그린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를 맺는다.

2차 세계대전 시기, 아일랜드와 영국과의 관계, 보수적인 카톨릭 교회 등이 공존하는 복잡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억울하게 고통과 박해를 받고 결국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평생을 보내야 했던 로즈의 일대기는 파란만장하다. 그리고 그러한 시절 속에서 극적으로 낳은 아들을 떠나보내고 생사도 모른 채 기다리다가 다시 재회하게 된다는 이야기 자체는 감동적이고 기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가 이 스토리를 기적적으로 느껴지게 풀어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느껴진다.

영화가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전략은 앞서 썼듯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구성이고, 과거 시점은 늙은 로즈와 그녀가 쓴 책을 통해 닥터 그린과 간호사가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어내려가는 행위를 통해 보여진다. 과거 시점에서 제시되는 젊은 시절의 로즈를 보여주는 시퀀스들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전쟁 때문에 아일랜드의 한 마을로 로즈가 흘러들어오면서 외부자로서 로즈가 마을 안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은 그 시절 엄격한 카톨릭 사회였던 아일랜드의 마을공동체의 모습, 영국과 아일랜드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과거 시점이 잘 진행되다가도 현재 시점으로 돌아왔을 때 보여지는 닥터 그린과 간호사의 대화나 병원의 상황 등은 외려 영화에 대한 몰입을 깨는 역효과를 낳았다. 닥터 그린의 역할을 한 배우 에릭 바나의 연기가 어색하게 다가온 이유도 있었지만, 현재 시점에서 보여지는 대화나 연출 모두가 어색하고 대충 넘어가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닥터 그린의 상황과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려웠고, 이는 결국 영화의 마지막 부분인 닥터 그린이 자신이 로즈의 아들임을 알게 되고 늙은 로즈와 만나게 되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제대로 몰입이 되지 않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닥터 그린이 로즈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뜻밖의 반전 혹은 기적적인 재회처럼 다가와야 하는데 영화의 중반부부터 뻔히 예상이 되고 너무도 전형적인 반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닥터 그린이 늙은 로즈를 찾아가게 되는 배경에는 카톨릭 교구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이 닥터 그린과 운전기사와의 대화로 암시된다. 이는 과거에 로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주범이었던 곤트 신부가 뒤늦게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이 데리고 간 로즈의 아들(닥터 그린)에게 어머니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이 이 기적적인 재회가 운전기사의 "교회가 다 그렇죠"라는 대사 하나로 얼버무려지는 것처럼 느껴져서 더 개연성이 떨어지게 다가왔다. 그리고 로즈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놓은 결정적인 계기가 된 정신병원 입원을 초래한 곤트 신부, 그리고 카톨릭 교구가 뒤늦게 구원자처럼 나서는 것 또한 납득하기 어려웠다. 



로즈는 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엄혹한 시절, 영화 〈로즈〉에서 보여주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다양한 층위에서 나타난다. 영국과 아일랜드와의 관계로 인한 사상 검증, 보수적인 카톨릭의 강한 영향력, 소규모 마을공동체 내의 억압, 정신병원의 비인간적인 학대적 치료 등은 마을 외부에서 새로 이주해 온 로즈에게 더 가혹하게 작용했다. 영화 〈로즈〉는 로즈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구시대의 부조리함을 폭로하고 억압과 차별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았던 한 인물의 고귀함을 다루려고 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 〈로즈〉에서 그 시대의 부조리함을 제대로 다루었는지, 그리고 로즈라는 인물의 인간다움을 제대로 조명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로즈〉에서 보여주는 그 시대의 부조리함은 단편적이다. 영국군에 지원한 마이클과 그를 처단하려는 양장점 청년들의 갈등에서 한쪽 편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의 엄혹함을 읽을 수는 있고, 곤트 신부의 행동들을 통해 그 당시 카톨릭의 권력과 횡포를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영화 내에서 양자는 모두 로즈를 둘러싼 개인의 비뚤어진 애정, 그리고 한 커플의 사랑을 가로막은 비극으로만 환원된다. 결국 로즈가 정신병원에 갇힌 건 한 남자의 비뚤어진 집착 때문이라는 말로 정리되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정신병원에 갇힌 후에는 로즈의 피해와 고통스러움에만 초점이 맞추어진다. 비인간적인 처우와 학대적인 치료를 받는 장면들, 그리고 임신한 몸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 등은 로즈가 겪는 고통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뒤에 있는 구조의 부조리함을 볼 수 없게 만든다.

단 한 장면, 정신병원의 환자들 중 임산부들만 따로 생활하는 병동에서 일하는 소인증 일꾼의 출신을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일꾼은 그 병원에서 출생한 아기들 중 입양을 거부당해 병원에서 길러진 사람이다. 그 일꾼의 존재는 세대를 이어 전수되는 카톨릭 병동의 학대적이고 폐쇄적인 구조의 부조리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일꾼의 존재 또한 로즈에게 병동의 탈출을 결심하게 만드는 계기로만 작동하고 기능적으로 소비된다.

이처럼 개인의 피해자의 역사를 통해 구조의 부조리함을 폭로하려는 서사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은 구조의 부조리함은 단편적으로만 다룬 채 개인이 받는 피해의 고통에만 초점을 맞추는 '고통 포르노' 같은 연출에 함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로즈〉는 여러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은 영화였다. 다만 오프닝 씬과 함께 루니 마라의 연기만큼은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상을 바라는 남성들의 발언에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맞받아치는 대사를 내뱉는 장면들, 구애를 하는 남성들 사이에서 자신의 매력을 아는 듯 당당하게 행동하는 로즈를 연기한 루니 마라의 연기는 영화 속에서도 인상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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