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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Jul 20. 2018

역사가 되지 못한 기록의 재해석

<녹두전>, 혜진양, 네이버, 2017 완결

*스포일러 주의 : 이 리뷰는 작품의 스포일러를 다량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판타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환상을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읽어낼 수 있는 현실의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구전설화는 전통적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생활에 밀착되어 드러나는 대표적인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래동화나 설화가 만들어진 시기가 오래되다 보니, 시대가 변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각색이 되게 마련이다. 혜진양 작가는 설화를 각색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데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는 작가다.


    데뷔작인 <미호이야기>와 후속작인 <한줌물망초>의 경우는 구미호 설화를 각색해 만들어낸 이야기다. 전통 설화를 비틀어 작품을 만들었던 혜진양 작가가 완결한 웹툰 <녹두전>은, 이번엔 팩션의 형태를 띄고 있다. 조일전쟁이 끝난 직후 가상의 과부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인 이 작품은 최근 드라마화가 진행중이다.

정탁의 기록, 피난행록에 남은 한 줄 기록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웹툰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변호하는 신구차 상소문을 올린 정탁의 피난행록의 한줄에서 시작한다. 우의정을 지낸 정탁은 선조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신 신하이자, 조일전쟁 당시 세자였던 광해군을 어릴때부터 보아온 사람이다. 그의 피난행록에는 1592년 왕세자의 빈궁이 해산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그로부터 6년 뒤인 1598년 낳은 아들 "이 지"가 첫째 아들이라고 기록이 되어있다. 학자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당시 피난길을 함께 했던 정탁의 기록이 가장 정확하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다.


    이렇게 한줄 기록에서 출발하는 팩션들 중에 인기를 끈 대표적인 만화로는 강경옥 작가의 <설희>가 있다. 또한 표절시비가 있었던 <별에서 온 그대>역시 같은 주제를 비슷하게 풀어냈다. 역사에 등장하는 한 줄 기록은 역사와의 접점을 만들어줄 뿐 아니라, 독자들의 판타지를 채우기에 아주 매력적인 소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이 기록을 작품 후반부에야 밝힌다. <설희>의 주인공은 불로불사를 얻어 현대를 살고 있지만, <녹두전>의 전녹두와 등장인물들은 모두 당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혜진양 작가의 전작들이 설화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었기 때문에, 전작의 독자들은 이 작품이 픽션일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보게 된다.

마른 우물에 뛰어드는 녹두와 당황한 동주

    때문에 처음 작품을 접한 독자들은 이 작품을 여장남자의 로맨스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로 추정되는 이야기로 출발했지만, 혜진양 작가는 특유의 유머코드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할만 하다. 보통 '사극'하면 연상되는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는 이 작품에 드러나지 않는다. 작가가 후기에서 밝혔다시피 '역사공부 하는 작품도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시도는 사극이라는 장르가 해체되어 다양화 되는 과정에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주인공 전녹두는 누군가를 피해 도망치다가 마른 우물에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 마침 동동주라는 아이를 만난다. 그리고 이야기는 예쁘장한 남자인 전녹두가 여장을 하고 과부촌에 숨어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런 시트콤적인 설정은 독자들이 시대적 배경을 인지하되, 정확한 시대상보다는 과부촌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등장인물들에 더 몰입하도록 한다.


각 에피소드의 제목은 "ㅇㅇ하는(하지않는) 여인"으로 표기되어있다.

    이 작품은 총 5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점이 <녹두전>을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조선시대의 성차별적 단상들을 보여줄 뿐 아니라, 아예 에피소드 별로 과부촌에서 살며 녹두와 관계된 인물들의 과거사를 조명한다. 대부분의 인물은 '과부촌 옆에 있는 기방'이라는 더욱 특수한 공간에서 지내거나 깊게 연관되어 있는데, 아주 특수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두번째 에피소드인 '이름 없는 여인'은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했던 고사리의 기구한 운명을, 세번째 에피소드인 '울지않는 여인' 편에서는 무명으로 불리던 매화수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딸을 낳게 되어 존재해서는 안되었던 고사리가 낳은 매화수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비교적 최근까지 같은 땅의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문제였다. 고사리의 시아버지는 자진 열녀비(죽은 남편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과부에게 내리는 열녀비)를 받고 싶다는 말을 했고, 시어머니는 '도망쳐 죽은 사람처럼 살라'고 부탁했다.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 기방의 백설기를 만나게 된 고사리

    그렇게 고사리가 살게 된 곳이 기방의 귀신들린 집이라는 소문이 붙은 빈 집이었고, 거기서 1년간 기거하게 된 녹두와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이 작품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촘촘한 차별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특히 가사노동과 관련된 장면에서, 주인공 전녹두와 전황태는 "여성의 일"로 치부하는 것이 드러나곤 한다. 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동동주나 고사리의 말에서도 가사노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거나 팔자가 늘어졌다는 식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인상깊다.

'여자가 둘인데 왜 우리가 아침 차리는 걸로 싸우는 거지?'

        뿐만 아니라 여장남자인 전녹두가 남성임을 바로 알아채는 사람들은 모두 과부촌의 여성들이고, 남성들은 대부분 알아채지 못한다. 물론 몸매 등 외적으로 드러나는 이유 때문이라거나, 과부촌이나 기방이라는 여성중심 사회의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 시대 여성들이 갖추고 있는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과부촌이라는 곳 자체가 차별과 억압에서 도망쳐 나온 여인들이 자리잡은 곳이기 때문에 더 민감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 여백인 셈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제목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마지막화의 제목은 "자살하는 여인"이고, 모든 에피소드의 갈등이 해소되고 마침내 엔딩으로 향하는 최종장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전녹두는 "과부 전녹두는 여기서 죽는다"고 말한다. 그간 동동주의 어머니이자 여장남자로 살아온 전녹두가 동주의 반려자이자 남성으로 살기를 '선택'하는 장면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했다면, 분명 녹두는 자신의 삶을 선택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녹두는 '문제 많은 차남'이 되기를 선택한다. 자신을 길러준 양아버지의 둘째 아들이 되었다고 선언한 것이다. 누구의 무엇이 되기 싫어서 선택한 것이, 결국에는 유교적 세계관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작품에 등장하는 왕이 "광해군"이라는 점은 신선하다. 역사적으로 재평가를 받고 있는 광해군이 자신의 아이에게 하는 짓을(비록 가상이지만) 전면에 드러내는 것은 "그래도 될까?"싶은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역사에 의해 희생당한 성군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광해군"이라는 이름보다, '인간'으로서의 광해군에 더 집중한다.


    앞서 말한대로, <녹두전>은 엄밀한 역사만화가 아니다. 오히려 사극 시트콤으로 보아야 적당하지 않을까 싶은 그리 엄밀하지 않은 고증을 보여준다. 작가가 은연중에 내비치는 젠더문제나 유교적 사상에 대한 비판은 혜진양 작가의 유려한 스토리텔링에 가려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기존에 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던 혜진양 작가는 <녹두전>을 통해 팩션에도 능수능란함을 보여주었다. <녹두전>은 좋은 작가에게 "기록되지 않은 역사"라는 한줄 기록이 주어졌을 때, 어떤 힘을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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