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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Sep 13. 2018

대한민국에서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별처럼 흩어진 프리랜서들의 삶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가장 답답한 순간은 언제 입금될지 알 수 없을 때다. 번역 일을 시작한 초기에만 해도, 일단 일이 급하니 빨리 해 줄 수 있느냐는 말에 일을 하면서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계약서를 쓴 적은 손에 꼽는다. 한 회사는 퀵서비스로 계약서 원본을 보내 서명을 한 다음 바로 퀵서비스로 계약서를 받아갔다. 이렇게 계약서를 쓴 곳은, 지난 5년간 단 한 곳뿐이었다. 한 공공기관에선 미리 액수를 말해주고 일을 하던 중에 주기로 했던 금액의 40%가 감수비로 책정되어 있으니, 내가 감수자를 찾아서 감수를 받아오지 않으면 40%를 차감하게 된다고 말한 곳도 있었다. 그마저도 일이 끊길까 두려워 마감시간보다 빠르게 마감을 마친 다음 검수까지 받아야 했다.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점점이 흩어진 프리랜서들


번역을 하면 크레딧을 인정받기가 매우 힘들다. 내가 번역을 했다는 증명서를 발급해주겠다는 곳은 드물다. 40% 감수비의 리스크를 안고도 공공기관과 일을 하기를 선호하는 건, 그만큼 돈을 주는 곳도 드물지만 경력인정을 해주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열악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프리랜서를 착취해서 돌아가는 업계가 얼마나 많을까? 라는 의문은 지난 몇 년간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일을 함으로써 나도 이 착취의 굴레에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먹고 살아야 했다. 부족한 돈이나마 벌어야 했다. 배명훈 작가의 말처럼, 위력은 중력처럼 공간이 일그러지게 했다. 그럼에도 다른 프리랜서들에게는 물을 수 없었다. 나와 업종이 달랐고, 일하는 방식이 달랐고, 연차가 달랐으니까. 그렇게 프리랜서는 서울 밤하늘의 별처럼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서로 다른 중력권에 있는 존재들이었다.


나에게 프리랜서의 삶은 벗을 수 없는 굴레였는지, 만화 관련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게 됐다. 그리고, 나는 또다른 프리랜서들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만화가들이다. 연재를 해서 퍼블리싱이 되면 경력인정이 자동으로 되니까, 번역을 하는 것 보다는 상황이 조금 낫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최소 보장금액이라는 말은 일한 만큼 돈을 받는 번역노동자의 귀에는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터져 나온 레진코믹스 이슈는 또다른 충격이었다. 그동안 대부분의 이슈는 소규모 신생업체의 이슈가 폐업으로 이어지는 패턴을 보였다면, 레진코믹스는 업계에서 세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크게 성장한 업체였다. 그러나 사태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일방적인 웹소설 서비스 종료, 불공정한 수익분배, 프로모션을 무기로 한 작가 차별, 회사에 비판적인 작가들을 블랙리스트로 지정해 차별하는가 하면, 건설업에서나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지체상금을 명목으로 지각비를 징수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진 일은,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프리랜서인 작가 백여명이 모여 영하 20도의 날씨에 시위를 하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까지 이어졌다. 모든 플랫폼의 계약서가 전수조사를 받았고, 시정권고가 떨어졌다. 그렇게 조금씩 업계의 분위기가 바뀐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승리의 기억이었다. 점으로 떨어져 있는 줄 알았던 프리랜서들은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해 스스로 싸움의 장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레진코믹스는 대표 명의의 사과문을 게시했고, 지각비를 반환했다. 이렇게 첫번째 단계가 끝이 났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첫번째 단계, 그 이후


먼저, 레진코믹스는 1년만에 웹소설 졸속종료와 관련한 간담회를 열겠다고 했다. 사과문에 적힌 내용이었다. 문제는 장소가 주로 토익, 토플등 스터디 모임장소로 쓰이는 모임공간이었다는 점, 그리고 30분 내외로 끝날 것으로 예상한다는 점, 지방 거주 작가등에게 차비 제공은 없을 예정이라는 점이 작가들을 분노하게 했다. 작가들 중에는 메일이 누락되어 안내를 받지 못한 작가들도 있었다.


그리고 또다른 차원의 일이 알려졌다. 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도둑맞았다는 제보가 기사화된 것이다. 오마이뉴스 신지수 기자의 ‘“제 계약서 좀 봐주세요” 게시판에 올리는 프리랜서들’ 이라는 기사에서 만난 작가 A씨는 “<나의 보람>은 저 혼자 스토리 쓰고, 캐릭터 만들고, 콘티와 작화에 마무리 작업까지 한 데뷔작이었다. 그런 데뷔작을 뺏겼다”고 말했다. A작가는 레진코믹스가 문을 열기 전인 2012년 말, 한희성 레진 대표에게 데뷔 제안을 받고 이듬해 1월부터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A씨에 따르면 한희성 대표는 캐릭터 이름, 장르를 제안한 것을 제외하면 작가가 준비해간 콘티를 보고 평가하는데 그쳤다고 했다. 그나마 자세한 조언은 선정성을 강조하는 방식이었다. 수음 장면을 그리고, 검은색 박스로 신체부위를 가려 상상력을 자극해야 조회수가 많이 나온다는 말이었다. A씨는 당시 미성년자였다.


그렇게, A씨는 <나의 보람>을 혼자 만들어 2013년 레진코믹스 오픈과 함께 연재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희성 대표가 글작가에 이름을 올리고, 수익의 30%를 가져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보람>은 글, 그림 작가 구분 없이 계약한 작품이었다. 레진코믹스는 당시 미성년자였던 A씨에게 법정대리인 동의도 받지 않고 계약을 맺었다. 이는 레진코믹스에서도 인정했다. 그렇다면, 당시 왜 A씨는 부당한 계약에 제대로 항의를 할 수 없었을까?


이 바닥, 다 그렇게 합니다.


당연히 A씨는 당시 계약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제대로 글작가로 참여하지도 않은 한희성 대표가 수익의 30%를 가져가겠다는 말에 3개월간 끙끙 앓던 A씨는 연재 3개월이 지난 9월 말쯤 문제제기를 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업계 관행’이라는 말이었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프리랜서에게 이 말은 전가의 보도처럼 작동한다.


앞서 말한대로, 프리랜서는 철저히 개인화되어 일을 받고 일을 처리한다. 계약에 대한 지식은커녕 경험조차 없는 새로 등장한 프리랜서는 어디에 가면 이 계약서가 제대로 된 것인지 묻기도, 업계 표준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힘들다. 게다가 계약서에는 ‘비밀유지조항’에 의해 계약서 내용을 제삼자에게 유포할시 책임을 묻겠다는 무시무시한 조항이 들어있지 않던가. 레진코믹스 뿐 아니라 많은 업계의 다양한 업체들이 이 비밀유지조항을 빌미로 불공정한 계약을 폭로한 계약 파트너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엄중한 경고’를 하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봐 왔다.


“이 바닥 원래 다 그렇다”는 말은 다양하게 변형되어 통한다. 흔히 그 앞에는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라는 말이 붙는다. 기사에서 레진은 A씨에게 “작가님이 어려서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쪽(웹툰, 만화)은 물론 영화쪽에서도 이 정도 참여하면 글작가가 20~30%를 가져간다. 나(대표)에게 수익을 분배하지 않는 것은 착취”라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을 풀라면서 15%만 가져가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후 A씨의 작품이 연재되는 내내 계약서 수정도 없이 수익배분이 이루어졌다. “레진코믹스 대표 레진이 만든 작품”이라는 대대적인 홍보는 물론, 당시 메인페이지에서 가장 가열차게 홍보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원래 ‘글작가 레진’에서, 연재가 끝난 11월 이후에는 ‘원작 레진’으로 레진이 쓴 원작을 바탕으로 만화가 만들어졌다는 방향으로 고쳐졌다. 오히려 레진의 기여도가 늘어난 것이다. 


이 바닥, 진짜 그렇게 합니까?


진짜로 이 웹툰업계는 그렇게 돌아가는 걸까? 웹툰 리뷰를 5년간 해오면서 그동안 작가들을 만나서 인터뷰할 기회도 있었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품의 피드백을 요청받은 일도 있었고, 취재에 도움을 줄 일도 있었다. 레진의 논리대로라면, 나도 그 작품들이 내는 수익의 20%~30%를 받아야 한다. 작가들이 마음을 상한다면 15% 정도까지는 ‘양보’ 할 수 있는 입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적은 없었다.


인터뷰에서 만난 글작가들은 주로 두가지 방식으로 기여한다. 첫번째는 소위 ‘글콘티’로 불리는 방식이다. 소설처럼 자세하게 장면, 액션 등을 묘사하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대사까지 글로 적는 방식이다. 두번째는 ‘그림 콘티’ 방식으로, 컷 안에 어떻게 묘사를 할지 간단한 스케치로 전체적인 연출까지 전달하는 방식이다. A씨의 말에 따르면 한희성 대표는 이 두가지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강풀 작가는 주변 인물들의 이름에서 캐릭터의 이름을 따온다. 예를 들어 소설가 김중혁과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강풀작가의 <마녀>의 캐릭터로 등장했다. 이들도 이름을 줬으니 수익배분을 받는 걸까? 다른 ‘바닥’은 몰라도, 이 ‘바닥’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정말로 원작자라면, 본인이 쓴 원작 글을 보내면 될 일이다. 설마 전서구에 묶어서 원본을 보내버려서 없는 것이 아니라면, 우편으로 육필원고를 보냈고, A씨가 그것을 파기한 것이 아니라면 이메일, 워드나 한글 파일이 남아있을 것이다. 원작자로 원고를 그리는 협의를 했다면 콘티 파일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하지만 ‘레진님’이 캐릭터 이름을 지어준 것 외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대해 문의를 하자 “단순한 아이디어 제공 차원을 넘어서는 기여를 했다”고 답한 레진코믹스에 증거를 요구하자 “대표가 입증 자료를 찾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참고로 이 사건은 A씨가 작년 12월부터 저작권 반환과 배상, 계약해지 등을 요구한 상태다. 레진측은 지난 1월, 글작가 수익분배금 전액과 보상금을 내걸고 합의를 요청했지만 아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자의 문의에 내놓은 답은 입증 자료를 찾고 있다는 답이었다. 9개월째 자료를 찾고 있는 모양이다.


만약 레진님이 작가가 되고 싶었다면, 작품을 써야 한다. 작품을 쓰는 사람이 작가다. 그 작품의 질적, 양적 문제와는 상관없이작품을 써야 한다. 위력으로 일그러진 공간에서 미성년자에게 계약을 강요하고,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는다고 작가가 되는게 아니다. 작품을 쓰지도 않고 작품을 썼다고 말하는건 도둑질이다. 편집부의 역할을 했다고 원작자 행세를 하고, 작품의 수익을 작가로서 배분받는건 범죄다. 저작권법 137조에서는 저작자가 아닌 자를 저작자로 하여 실명, 이명을 표시하여 저작물을 공표하는 것은 형법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작가가 되고 싶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진짜 착취를 행동에 옮긴 사람이 누군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명백하지 않은가.


이젠 놀랄 기운도 없다. 사과문이 나온지 이제 2개월이 지났다. 도대체 이 바닥은 어떤 모양이길래, 아니, 레진코믹스가 성장한 바닥은 어떤 모양이길래 끊임없이 이런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건지, 이젠 궁금하지도 않다. 사람을 쥐어짜고 갈아넣는게 업계의 상식이라면, 이제는 바뀔 때가 되었다는 말을 한 것도 몇번인지 세기가 힘들 지경이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처벌을 받고, 합당한 배상을 한 다음 재발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의 정비가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저 밤하늘의 별처럼 흩어져 ‘다 그런다’는 말에 서명을 하게 될지도 모를 프리랜서들을 위해서라도. 그 일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프리랜서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사회생활 몰라서 그런다'거나, '잘 몰라서 그러는데'같은 건방진 말이 다시는 할 수 없는 세상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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