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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근긍 Sep 01. 2018

아파트가 고향인 우리들

<아파트 생태계> 당신에게 아파트는 어떤 의미인가요.

"경축 아파트 안전진단 D등급"


# 0.

낡은 아파트에 플래카드가 나부낀다. 아파트 안전상태를 경고하는 결과에 주민들은 환호한다. 그들에게 안전진단 D등급은 위험을 알리는 빨간불이 아니라, 재건축을 알리는 파란불이기 때문이다.


<안전진단 D등급을 축하하는 플래카드>

# 1.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아파트 생태계>는 아파트와 오랜 기간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사는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떤 의미인지 조명한다. 영화 속에서 70년대의 도시기획자에게 그것은 과거의 업적이고, 재건축을 앞둔 잠실아파트주민에게는 미래의 부이며, 아파트를 설계한 건축가에게는 건축적 야심의 결과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것은 고향이다.


철거를 앞둔 둔촌주공아파트의 주민은 그곳을 두고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이 말은 옳다. 하지만 어딘지 자연스럽지 않다. 삶의 대부분을 아파트에서 보낸 나조차도 아파트를 고향이라는 표현이 낯설게 느껴진다. 아파트에서 태어났으면서도 그것을 고향이라 부르기 어색한 사회. 이것은 우리가 아파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영화 : 아파트 생태계>

# 2.

물건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진다. 아파트를 기준으로 했을 때 거기서 사는 경험을 사용가치라고 한다면, 아파트를 사고팔 수 있는 가격이 교환가치일 것이다. 아무래도 현재 아파트에 대해서 우리는 교환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아파트 시세. 아파트 분양. 부동산 투자. 아파트에 달려오는 연관검색어들은 제각기 아파트의 교환가치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래서일까. 아파트에서 보내는 시간에 관한 얘기는 아파트의 구매에 비해 적게 얘기된다. 아마도 아파트와 고향이라는 단어가 쉽게 엮이지 못하는 것은 이처럼 아파트에서 시간을 가린 채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사라진 아파트는 그렇기에 항상 존재하며, 시작과 끝이 없다. 재건축이라는 콘크리트 건축물의 붕괴는 하나의 끝이 아니라 부의 연장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파트가 기록한 시간이 아니라 호가창에 새겨진 가격이다. 둔촌주공아파트의 재건축을 앞두고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라는 프로젝트가 기획된 것도 이에 대한 근심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주민과 경비아저씨 등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와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거기에 담긴 이야기를 기록한다. 흐르는 시간 앞에 재건축은 당연한 결과지만, 거기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흔적, 추억 그리고 기억이 남아있다. 아파트는 그저 가격이 아니라 그 속을 살아간 사람들의 시간이 담긴 공간이기 때문이다.


<영화 : 아파트 생태계>

# 3.

영화의 낯선 제목은 아파트를 생태계로 보자 한다. 그것은 아파트에 담긴 시간의 흔적을 긍정하기 위한 시도일 것이다. 현대건축의 아버지이자 아파트를 창시한 건축가 르꼬르뷔지에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건축을 했다. 그가 아파트라는 공간을 설계한 것도 도시화와 함께 도시로 밀려오는 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주거 공간이 새로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그에게 주택은 인간이 살기 위한 기계인 동시에,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도구와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생태계라는 이 영화의 관점은 감성에 젖은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라, 아파트라는 '공공'주택이 탄생에서부터 내재할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오래된 아파트에는 유달리 울창한 나무가 많으며 그것은 1980년대에 지어진 올림픽선수촌아파트도 예외는 아니다. 누군가에게 이 나무는 시야를 가로막는 방해물이지만 누구에겐 그늘을 만들어주는 쉼터이다. 그 인식의 차이만큼 주민들은 나무를 관리하는 조경사에게 나무를 자르라 말라 말을 덧댄다. 주민들은 아파트의 나무를 내 방에 화분처럼 자신의 소유인양 한다. "아파트는 주민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인데...." 조경사는 그런 주민들에게 아쉬움을 내비친다. 사람들이 걸어가며 마주칠 수 있도록 아파트와 조경을 설계했다는 건축가의 목소리도 거기에 공감을 더한다. 아파트는 공공주택이다. 아파트에서의 시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공공주택이라는 단어에서 '공'이라는 글자를 지워 버린다.


<영화 : 아파트 생태계>


"xx가 재작년에 분양받은 아파트가 벌써 2억이나 올랐대"


# 4.

그럼에도 숫자는 압도적이다. 나도 홀로 치솟는 숫자에 고개 돌려 이를 무시하지도 못한다. 나는 여전히 부동산 시세를 확인하며 재테크를 그려본다. 하지만 그것이 아파트의 모든 것은 아니라고 믿어보련다. 그곳은 내가 20년 넘게 살아간 공간이고, 1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에도 행복할 수 있었던 경험이고, 내 손끝에 닿을듯했던 나무가 하늘 높이 치솟게 한 시간이고, 언젠가 내 아이의 손을 잡고 걸을 길이기 때문이다. 이건 그럴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믿음이며 그래야겠다는 다짐이다.


영화의 한 장면. 여의도시범아파트에서 한 교수가 시범아파트의 독특한 구조와 역사에 대해서 말한다. 한껏 진지하게 말하는 교수의 앞으로 어린아이가 천진하게 지나간다. 교수는 아이가 낯이 익다. "나 너 아는데." "제 이름이 뭔데요?". "이름은 모르는데 그냥 알아." 교수와 어린아이의 이상한 말장난. 아파트를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얼룩처럼 새겨진 이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낡고 오래되어 그 마지막을 향해 가는 아파트 한 귀퉁이에서 나이 든 교수와 어린아이 사이의 대화는 숫자로 치환될 수 없는 공공주거 공간인 아파트의 흔적일 것이다. 어느 미래에 철없던 어린아이는 이곳을 자신의 고향으로 기억할 것이다. 아파트를 뒤덮고 있는 숫자놀음에 희비 하면서도 여전히 그곳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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