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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근긍 Oct 06. 2018

<너는 여기에 없었다> 여기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덥수룩한 수염에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이 어두운 남자 ‘조’(호아킨 피닉스)는 은밀한 뒷일을 해결해주는 해결사이다. 어느 날 그는 상원의원의 딸 ‘니나’(예카테리나 삼소노프)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게된다. 납치단체로부터 ‘니나’를 구출하지만 이내 새로운 무리들이 나타나 ‘니나’를 데려간다. 겨우 도망쳐 나오지만 그들의 위협은 멈추지 않고, ‘조’는 사라진 ‘니나’를 다시 찾아 나선다.
 


영화를 보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영화의 중간중간 ‘조’의 기억을 삽입하는 낯선 편집의 방식 때문일 것이다. 사이키델릭한 음악과 서사와 무관하게 삽입되는 이미지들. 영화는 ‘조’가 겪었던 사건을 명확하게 보여줘 이를 설명하는 대신에,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불쑥 떠오르듯 파편적으로 ‘조’의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한다.
 
비닐로 얼굴을 가린 채 힘겹게 숨을 쉬는 기억이 그 중 하나이다. 폭력적인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숨어 침대 밑에 엎드려 있는 어머니. 그 사이에서 공포에 떠는 어린아이 ‘조’. 그는 어린 시절의 공포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파병 중에 겪었던 소녀의 죽음이다. 철창 사이로 한 소녀에게 초코바를 건네지만, 이내 어떤 이가 소녀를 죽여 초코바를 가져간다. 죽어가는 소녀의 발에 묻은 흙. 또는 전투 중 컨테이너를 열었을 때 얼어붙은 소녀들의 표정. 전장에서 보았던 소녀들의 이미지는 여전히 그를 괴롭힌다.
 


이런 소재를 가진 영화들의 클리셰처럼 ‘조’의 어머니는 ‘니나’를 데려간 녀석들에게 살해당한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복수 서사를 강화하기 위한 클리셰로 받아들이기엔 어머니와 ‘조’의 대화는 이상한 구석이 있다. ‘조’의 어머니는 20년 전 헤어진 ‘조’의 여자친구 안부를 묻는 사람인 동시에, 냉장고에 70년대 식료품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조’의 트라우마 속에 빈번히 등장하는 어머니는 기어코 ‘조’의 과거를 들춘다. 영화 ‘사이코’를 보다 잠든 어머니에게 영화에서처럼 칼로 찌르는 흉내를 내는 ‘조’가 실제로 어머니를 죽였다는 말하는 것은 물론 과장이겠지만, 자신의 입안을 찌르려던 칼로 어머니를 죽이는 흉내를 낼 때, 이 두 가지 동작은 트라우마와 죽음이라는 동일한 메타포를 감싸고 있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라 이 영화에서 죽어 나간 인물들은 ‘조’가 가진 과거의 상흔과 무관하지 않다. ‘니나’를 데려가고 ‘조’의 손에 죽어간 그들은 경찰의 배지를 달고 있거나 의원이자 의원의 경호원이다. 어린 소녀 ‘니나’를 데려간 그들의 폭력은 물론 ‘조’에게 파병 중에 ‘소녀’가 죽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도록 한다. 동시에 국가에 의해 동원된 파병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안은 그는 경찰과 의원의 경호원을 향해 망치를 휘두른다. 매번 새로운 망치를 구매하며 시작하는 그의 임무는 깨지 못하며 이어지는 악몽처럼 반복되고, 숫자를 되뇌며 최면처럼 자신의 트라우마와 마주치고야 만다.



그러니 어쩌면 이 영화는 ‘조’가 자신의 얼굴에 총을 쏘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모든 이미지가 ‘조’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숫자를 되뇌며 꿈꾸는 듯 영화에 등장해, ‘조’가 구출해내는 ‘니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니나’를 구출하기 위해 침입하는 매춘의 주택과 고급 별장하는 장면에서 동일하게 들리는 음악은 그 순간을 몽환적으로 만든다. ‘조’가 스스로를 위협하던 칼은 피가 뭍은 채 ‘니나’의 손에 쥐어져있다. ‘조’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있는 듯한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니나’는 거울상처럼 ‘조’와 닮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이 환상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조’의 뇌에서 상영되는 영화이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실제보다 더 끔찍한 진실이다. 다소 모호한 영화의 제목인 <나는 여기에 없었다>에서 ‘여기에 없는 것’은 ‘조’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며 그를 위협하는 타자인 동시에, 트라우마에 갇혀 현재를 살지 못하는 ‘조’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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