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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근긍 Jun 18. 2019

<한강에게> 상실은 마쳐지지 않는다

상실 앞에 운명이라는 말 대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포스터 <한강에게>


# 1.


진아(강진아)는 첫 시집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녀의 남자친구 길우(강길우)는 얼마 전 한강에서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상실의 아픔과 죄책감 속에 영화는 진아의 일상을 따라간다. 그녀는 여전히 강의를 나가고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잠을 많이 자고 시를 쓴다. 하지만 길우와 함께했던 기억은 선명한 비추는 빛처럼 그녀에게 새겨져 있다.

길우는 의식을 잃었지만, 어찌 되었든 진아는 일상을 견뎌야 한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도 그녀의 일상에 포함된다. “네가 옆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길우 어머니의 말은 그녀의 죄책감을 들춰내고, 가끔 만나는 지인들의 많이 힘드시죠라는 말에 억지 미소를 보이며 괜찮다고 답해줘야 하는 것도 그녀의 의무이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말해야 하며,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 그녀의 새로운 일상이 된다.


영화 <한강에게>


# 2.


진아의 일상을 훑는 영화는 어딘가 시를 닮았다. 그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비단 진아가 시인이며 영화 속에서 시를 쓰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진아의 말에 따르면, 시쓰기는 왜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행위이다. 갑작스러운 사건 앞에서 진아는 쉽게 분노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는다. 대신 길우와 함께했던 기억과 현재의 시간을 오가는 영화는 진아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특별할 거 없는 사고 이후의 진아의 일상을 쫓는 영화가 이토록 보는 이의 시선을 끄는 것은 분노와 눈물을 대신한 그 신중함 때문일 것이다.

세탁소에서 빨래를 돌리던 과거의 기억에서 진아의 손바닥에는 무지개가 비친다. 시시껄렁한 농담과 웃음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손바닥에 일렁이던 무지개의 아름다운 빛이다. 하지만 소중한 기억이 된 빛은 그대로 죄책감이 되어 그녀의 일상에 남겨진다. 진아가 강의를 끝낸 뒤 건물 한켠 어둠에 기대있을 때,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빛에 만들어진 나무의 그림자가 그녀 위로 일렁인다. 무지개의 기억이 죄책감으로 남아 있는 자리에, 그녀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만들어낸 얼룩진 붉은 빛을 받으며 그대로 서있다. 그녀의 얼굴은 어떠한 표정도 하고 있지 않지만, 이렇게 그녀는 상실의 슬픔에 잠겨 진다.


영화 <한강에게>


# 3.


진아는 그런 일상 속에서 계속 시를 쓴다. 그리고 진아가 시집을 완성한 그 즈음 혼수상태에 있던 남자친구는 세상을 떠난다. 시집의 제목이 되기도 한 ‘한강에게’라는 시의 한 구절은 이렇다.

책의 첫 장에 그 사람을 써서 보냈다 / 그가 손목을 잡아당겼다 / 그의 말이 떠오르고 / 떠오르는 모든 것을 미워했다 / 다음 말을 골라야 했지만 / 물길이 높아져 있었다 / 빛들이 강 건너에 오래 떠돈다 / 유일한 증인처럼 / 강물은 가장 어두운 곳까지 손을 놓지 않고 / 망망한 것들은 흐르지 않기도 했다

길우와 함께 한 마지막 날. 그들은 한강에서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폭죽놀이를 했던 그곳에서 말이다.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한강이라는 공간은 그렇게 그들과 행복, 기쁨, 슬픔, 분노 모든 것을 함께했다. 진아가 지하철 창문을 통해 보이는 한강을 견디지 못해 자리를 옮긴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서로 언성을 높이는 그들 뒤로 강물이 살랑살랑 흐르고, 멀리서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렸고, 저 멀리 그들이 가지지 못한 도시의 불빛이 반짝였다. 시의 구절처럼 ‘유일한 증인’이 된 한강이 거기 남아 있는 한, 상실은 진아에게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영화 <한강에게>


# 4.


영화의 시작, 광화문역에서 내린 진아는 세월호 낭독회에서 연단 위에 오른다. “저는 싫은 말이 뭐냐면 걔 운명이 거기까지였던거야라는 말이예요.” 이것은 물론 세월호 인터뷰집 속 문장이지만, 동시에 진아의 언어이며, 모든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마음일 것이다. 어떤 이들이 상실의 뒤에 마침표를 찍을 때, 거기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많은 이들은 질문을 계속한다. 영화 속 진아의 모든 일상은 운명이라는 말 대신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며 무엇이라도 해야한다는 발버둥이었다. 영화 <한강에게>는 그 발버둥의 기록이며, 물음의 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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