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2|응답하라 2007
단짝인 그녀와 나의 관계는 토스트 같았다.
두 빵 조각 사이에 신선한 식재료들을 채워나가며
서로의 삶이 새어 나오지 않게 잡아주고
함께 곁들여야 제맛인 느낌
학업이란 불판 위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미래에 영양가 있는 인재가 되려 노력해야 했고
맛도 모르는 연애란 소스를 간간이 뿌려댔을 터.
어린 여자아이들의 습관을 못 버린 스무 살 프레시들은
개인의 존재 혹은 분리된 섭취에 장애가 있었는지
줄곧 토스트 집에서 꼭 토스트 하나를 반으로 나눠먹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마다
버터가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던 토스트 스트릿에
두 명의 외식 학도는 미슐랭을 들먹여가며 한집에 별 세 개를 부여한다.
제일 좋아하는 야채 치즈 토스트를 주문하고
소복한 야채가 토스트의 열기와 키위 소스의 달콤함을 흡수할 때까지는
침을 삼켜가며 수다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매번 그렇듯 엊그제 소개팅남이 맘에 안 들어
1차만 하고 말았기에 토스트집에 이어 빙수 카페 2차
영화관 3차까지 줄곧 코스를 밟아야 했다.
라스트팡으로 날 좋은데 운동을 하자
금강 어귀를 거닐다,
벚꽃이 피어날 무렵 심쿵 주의보에
친구들과 단결하여 미팅을 마련한 날.
깔끔한 맛이 세련된 느낌을 주는 베이글 토스트를
반쪽 나눠먹으며 마음인지 배인지가 부르다고 했다.
그렇게 다음날 밥 약속이 있으면 성공한 것이고
다시 양배추 가득한 토스트를 찾으면 할 말이 많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늘날 빙수집만큼이나
대학가를 물들인 토스트집 밖에 갈 데가 없었고,
별다른 꼼수도 부릴 줄 모르던 풋내기들에게 제격이었다.
이제 나름 사회인이 돼 서로 굳이 얼싸안지 않아도
개성 있는 브런치 격이지만,
그 비좁은 토스트 집에서 반쪽을 나눠먹는 경험은
그때만 누릴 수 있던 스페셜 한 프레스티지였다.
이젠 연인이 아닌 이상 반땡은 즐기기 힘든 식문화다.
* 2007년 사실은 19살
* 본 글은 개인의 경험에 근거한 푸드에세이로
공감이 없더라도 한 개인의 사고에 의한 사실적 묘사임을 알립니다.
* 개인의 다른 기억을 덧붙이셔도 지구온난화나 제3세계 기근에 악영향이 없으니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