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어느새 비건을 지향한 지 3년이 넘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운동을 했었는데, 그때는 내가 고기를 먹지 않아도 근육량이 증가한다! 는 것을 한창 증명하고 싶었다(그때의 기록). 그런데 그 뒤로는 제대로 운동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무래도 고기를 먹지 않으면 아무리 챙겨 먹는다고 해도 식단이 부실할 수밖에 없었고 운동 부족과 음주, 여럿 스트레스에 이어서 체력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거 진짜 큰일 나겠다 싶었다. 그래서 일단 집 근처 헬스장을 등록했고 PT도 연이어서 등록해 버렸다.
요즘은 PT를 받는다는 말이 그리 어색하지 않지만, 나에겐 그렇게까지 돈을 써야 할까?라는 생각이 있었다. 자세는 잘 모르겠지만 운동 유튜브도 많고 혼자서 기구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집-회사 생활만 하는 탓에 생활습관은 점점 더 나태해져 갔고 조금씩 배에 살이 차오르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말랐는데 여기서 배가 나오다니... 진짜 큰일 났다 싶었다. 그래서 3월에 과감하게 헬스장 1년 치와 PT도 신청해 버렸다. PT 선생님과 잘 맞는 탓도 있는 것 같다. PT를 시작한 나는 한두 번 수업으로도 나의 상황이 처참한 것을 깨달아 버렸다. 무엇보다 이전 글에서의 인바디 결과보다 근육량이 2kg 이상 빠져버렸다.
PT 상담을 할 때 선생님이 '운동 목표'를 명확히 해달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같이 하는 선생님 입장에서도 운동 방향이 모호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단기적으로는 턱걸이를 꼭 하고 싶다고 했고 운동 목표는 강해지는 것(?)이었다. 강해지는 것을 운동 유튜브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능성이 좋다는 뜻인 것 같다. 외형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높은 무게를 밀거나 당길 수 있게 되는 것,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근력이 내가 생각하는 '강함'인 것 같다.
부위별로 기초적인 운동부터 시작했다. 선생님은 정말 '자세'를 강조했다. 사실 첫 2주 정도는 그렇게까지 자세가 중요한 걸까? 조금 답답하기도 했다. 무게를 얼른 올리고 싶은 욕심이 벌써부터 가득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자극점을 가르쳐 줘도 바로 그쪽에 힘을 주지 못했다. 또 전문용어를 빌리자면 '근신경계'가 발달하면 내가 원하는 부위의 근육만 잘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래도 첫 달이니까 모든 부위를 다 해보기 시작해서 의구심보다는 재미가 더 컸다. 그리고 선생님이 영양도 신경 써 주셨기 때문에 식단도 보내기 시작했다. 동물성 성분이 없는 보충제를 주문했고 밥을 많이 밖에서는 계란도 많이 먹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기 시작했더니 배가 엄청나게 고파져서 잔뜩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1달이 끝날 때쯤에는 운동 횟수에 대한 강박, 영양에 대한 강박이 아주 큰 상태였다.
그렇게 운동에 한창 빠져있을 무렵 회사 일도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았다. 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 번 출발한 운동 열차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슬럼프에 빠지고 만다. 식단도 잘 챙기지 못하고 운동 횟수도 주 3회에서 1,2회로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다. 선생님께 식단을 보내지도 않게 되었다. 선생님은 논비건이시다 보니 아무래도 내 식단에 걱정이 많으셨다. 나는 내 최선을 다했는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았다. 그래도 가슴, 등, 어깨, 팔, 다리 등등 부위를 다 다뤄보았고 개인운동 시간도 늘어나면서 아주 조금씩 여기에 힘을 주면 되는구나 느껴지기 시작했다. 벤치프레스를 같은 운동이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웠는데, 정확히 가슴이 최대로 늘어나는 부분에서 팔과 어깨가 아니라 가슴 힘으로 들어올리려고 하는 연습을 했다. (사실 3개월 넘어서도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저런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운동하고 열심히 먹기 시작했기 때문에 몸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인바디 결과도 잘 가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거기다 축구하다 무릎이 살짝 안 좋아 1,2주 정도 푹 쉬어주면서 그때가 변곡점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같은 부위를 타게팅하는 운동을 여러 개 배우면서 혼자서 코스를 짜는 재미도 생겼다. 렛풀다운, 어시스트 풀업, 케이블 로우 정도가 끝이었다면 대망의 바벨로우를 배우게 된다. 바벨로우는 확실히 어려웠는데, 당겼을 때의 짜릿함(???)이 그 어떤 운동보다 좋았다! 그리고 어깨 운동도 레터럴 레이즈, 덤벨 숄더 프레스 등등이 있는데, 역도 동작 같은 오버헤드 바벨 프레스도 정말 재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으로 무게를 올리는 것보다 움직임 자체에서 재미를 느꼈다. 헬스의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지 그냥 운동의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워낙에 근육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그런 지 근육량은 조금 늘었다. 목표했던 36kg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3달 만에 2.6kg의 골격근량을 늘린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목표였을까 싶기도 하다.
비건 지향 이야기라고 해놓고 식단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식단도 확실히 쉽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서 어느 정도 방법을 찾아가고 있어서 단백질 섭취 위주로 나름의 팁을 공유해 본다.
- 두부 : 단백질과 지방이 모두 20%정도 된다. 지방 비율에 약간 놀랄 수 있지만 구하기 쉽고 소화도 편하며 단백질 양 자체도 작지 않아서 애용하고 있다.
- 계란 : 계란을 드시는 비건지향인이시라면 계란만한 것이 없다. 계란도 노른자까지 먹으면 지방 함량이 높은 편이기는 한데, 계란만한 식품이 없다.
- 그 외 식물성 단백질 가공식품 : 요즘은 새로 나오는 가공식품을 적극적으로 먹어보고 있다. 풀무원, 농심 등등등 큰 회사들에서도 많이 나온다. 가공식품은 아무래도 가공식품이라 제품을 권하긴 조금 그렇지만, 쉬운 메뉴를 찾기 힘든 비건지향인들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다.
- 삶은 콩류 : 그냥 흰콩, 강낭콩, 병아리콩 친구들을 그냥 집에 사놓고 약간 불려서 30분정도 삶으면 꽤나 든든한 단백질 공급원이 된다. 보관을 잘하면 냉장고에서도 1주일은 가는 듯해서 주말에 해놓고 주중에 먹을 수도 있다. 샐러드 같은 걸 사 먹어도 꼭 병아리콩 추가를 잊지 않기!
- 분리대두단백 : 나는 단백질을 많이 필요로 하는 슬픈 몸이라 보충제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비건 단백질을 한창 찾다가 분리대두단백을 바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사서 먹고 있는데 대만족이다. 주의할 것은 맛이 정말 없기 때문에 (...) 주의하고 주문해 보는 것이 좋겠다.
사실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 기초에서 시작해 열심히 운동을 지속한 나 자신에 대한 칭찬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무작정 큰일이야! 하는 마음에 운동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재미를 느꼈다는 점이 제일 큰 소득이었다. 이전까지 나에겐 헬스란 그냥 무거운 무게를 움직이는 노잼운동이었다. 하지만 사용되는 근육을 확실히 인지하고 그 부분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가는 과정은 정말 새로웠고 어쩌면 여태까지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이번 주도 운동 가는 일정이 기다려진다. 남은 1년동안 꾸준히 운동해서 턱걸이를 성공해서 다음 글을 쓰러 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