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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 Sep 08. 2019

리모트 근무의 환상과 현실

주니어의 입장에서 바라본 리모트

2년 전만 하더라도 나의 환상은 리모트 근무였다. 브런치와 페이스북에 넘치는 세계 여행을 하며 리모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도 하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했다. 작년 1년, 퇴사하고 나서 6개월, 합계 1년 반동안 정해진 사무실 없이 일했고 2년 전과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뭔가 배신감이 드는 이유는 리모트 근무의 좋은 점에 대한 글은 모두 사실이었지만, 모두들 힘든 점에 대해서 생략하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 !!!


오늘은 환상을 깨고 약간 어두운 컨셉으로 접근해 보려고 한다.


1. 제주도에서의 리모트 / 2. 대만에서 리모트 / 3. 집 앞 카페에서 리모트


리모트에도 공간은 필요하고 카페나 회의실도 돈이 든다

기업이라는 것은 결국에 돈이라는 자원이 있어야 생존한다. 요즘같이 임대료가 비싼 시기에 여러 명이 고정적으로 높은 수준의 효율로 일할 수 있는 공간은 임대료가 어마어마하다. 코워킹 스페이스라고 해도 인당 50은 훌쩍 넘는다. 리모트로 일을 하면 확실히 고정비와 출퇴근의 압박을 덜 받는다. 그렇지만 고정적으로 공간이 없다는 것은 종종 필요한 오프라인 회의의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카페에서 매번 커피 시키는 것도 일이고 팀으로 모여서 회의를 할 공간을 빌리는 것도 일이다.


매일 바뀌는 업무환경은 피곤하다

리모트 근무를 하고 나서부터, 집 근처 카페들을 눈여겨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기자기하고 맛난 디저트의 카페가 아니고 크고 와이파이가 잘 터지며 책상이 시원시원한 곳으로 말이다. 대단한 리모트 근무가 아니더라도 카페에서 일하는 것에 가끔 부러움을 사곤 하는데 요즘은 손사래를 친다. 사실 이거 리모트의 낭만이 아니고. 방황하는 거야...


근무시간과 효율성에 대해 압박을 받는다

공간의 변화로 출근 상태를 체크할 수 없다면 결국 일하는 시간은 내 마음에 달렸다. 최종적인 결과물만 요구받는 프리랜서와는 달리, 리모트와 정규직이 결합하면 약간 어렵다. 항상 일말의 죄책감이 남았다.


여기에 주니어의 입장을 한 스푼 떠서 넣어보자.


업무 외 지식을 습득하기 힘들다

주니어는 자신의 주 업무를 발전시켜 나가는 단계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일머리'를 키우는 단계이기도 하다. 리모트 환경에서는 잡담과 수다, 지나가는 한마디가 없다. 내가 하는 업무는 늘지도 몰라도 일머리는 정말 느리게 자란다. 시니어의 지나가면서 툭 던지는 한 마디. 꼰대와는 다른 지혜가 담긴 한 마디들은 초기 주니어들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 그치만,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그런 구체화되지 않은 지식은 습득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좋을지 나쁠지 모르는 점이 있다.


사람이 고파진다

리모트로 누군가의 방해 없이 일에 집중하게 되면 좋다. 그렇지만 쉬는 시간에 마주할 수 있는 좋은 동료와의 잡담은 일을 해 나갈 때 정말 중요한 에너지다. 1인 가구였던 나는 친구와 약속이 없는 주에는 화상 회의와 식당에서 밥을 주문할 때 말고 수다를 떨 일이 없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사람과의 만남을 매우 소중히 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와 약속이 잡히거나 회사에서 오프라인 회의 주간이 되면 아주 행복해진다. 물론 이런 상황은 개인적인 성향의 차이에 따라서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겠다.


너무 나쁘게만 이야기했나, 좋은 점도 많다.


내 업무에 극도로 예민해진다

리모트로 근무하면 동료에게 작업물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무엇이든 반 포장 상태로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 사무실에서 모니터로 슥 보거나 지나가듯이 잘하고 있네 정도로는 동료들에게 공유할 수 없다. 그 말인즉슨 내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나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근무시간 내내 정신을 꽉 잡고 있어야 한다.


각종 도구들에 익숙해진다

리모트로 업무를 하려면 반 강제로 여러 도구들을 써야 한다. 채팅, 화상통화부터 일정관리, 작업물 관리 등등. 구글 독스 및 작업물을 공유하기 쉬운 도구들에 특화된다. 출근에는 슬랙 + Attendancebot, 화상통화는 구글 행아웃, 문서는 구글 독스로 공유했다. 요즘은 노션에 업무 일지를 작성한다. 작년에는 커뮤니티 서비스(빠띠)를 만들고 있어서 그곳을 주로 토의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1. 제주도에서 리모트 중 주말에 여행 / 2. 대만에서 여행 / 3. 서울의 어느 카페에서


정말로 공간적으로 다른 장소에서 업무를 할 수 있다

제주도와 대만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주니어로써 일 하는 방식에 목 메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리모트로도 업무를 잘하고 사무실에서도 잘한다. 당연하지만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잘하는 데 힘을 쓰는 게 맞다. 


리모트 업무는 장점이 많지만 단점도 많다. 특히 전통적인 고용주 입장에서는 감시할 수 없으니 불안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업무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규칙이 중요하다. 리모트 업무는 적절한 회사의 지원과 팀의 분위기에 따라서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도구다. 특히 서울의 직장인 분들은 출퇴근의 고통 속에 아 오늘은 굳이 출근 안 해도 일 할 수 있는데! 외쳤던 적이 한 번씩쯤 있을 듯하다. 사회적으로도 점점점 개개인마다 5일 내내 출근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고민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사실 5일 내내 출근길 지옥철에 갇혀도 좋으니 몇 주씩 휴가 가고 출산휴가 마음 놓고 다녀올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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