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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Oct 30. 2023

안싸워, 행복해

39개월 아들을 키우고 있다. 29개월 즈음까지도 말을 잘 못해서 좀 늦된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30개월부터인가 조금씩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조잘조잘 잘도 떠든다. 말을 하니까 더 이쁘기도 하고, 그동안 아이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가 몰랐구나 싶기도 하다. 가장 좋은 것은 소통이 된다는 것, 아이가 평소 어떤 마음과 상태인지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는 종로구를 돌아다녔는데, 날씨가 좋아 창경궁에 갔다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갔더랬다. 마로니에 공원에 작게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는데, 구름다리인가 무슨 사다리 같은 게 있었다. 아이는 겁이 많아서, 한번 가보자 해도 가기를 꺼리는 성격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다양한 인종의 또래 아이들이 구름다리를 건너가고 사다리를 타고 하자, 자기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 보다.


구름다리 앞에 서서는 "무서워요~"하기에, 아빠가 도와주겠다 하면서 손을 잡아주었다. 아이는 로프자락에 떨리는 발을 디디며 힘들게 나아갔다. 한쪽 손을 잡아주고 잘한다 잘한다 하며 북돋아주니, 아이는 곧잘 갔다. 이제 곧 마지막에 다다르자, 아이는 빠르게 혼잣말로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속으로 매우 놀랐다. 만 네 살도 되지 않은 아이도 이렇구나. 자기 안의 무서운 마음을 다잡는구나.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되뇌며 용기를 내는구나. 어른도 그렇지 않은가. 2016년 리우 올림픽 펜싱 국가대표 박상영 선수도 그러지 않았나.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닐 텐데, 나는 어떤 '인간의 원형'을 잠시 엿본 느낌이었다. 사람이 다 똑같구나.


아이가 말하는 것을 듣고 가장 놀랐던 것은 1주일 전이었다. 어머니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아이를 재우고 직접 운전해서 어린이집 등하원도 해 주신다. 언제인가, 어머니가 운전하면서 뒤에 탄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엄마아빠 안 싸워?" 어머니는 궁금했을 것이다. 실제로 아들네 부부가 사이좋게 지내는지, 또 어린 손자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지.


그러자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안 싸워. 행복해." 그 말을 어머니로부터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알고 썼을까. 할머니가 묻는 취지가 '서로 사이가 좋냐'는 건지는 어떻게 알았을까. 동시에 뿌듯하기도 했다. 아이가 보기에 우리 부부는 단순히 '안 싸우는' 정도가 아니라 '사이가 좋은' 것을 넘어서 '행복'하기까지 하다는 것 아닌가.


아마 아이는 별생각 없이 한 말일 테지만, 나로서는 어떤 성적표를 받은 느낌이었다. 인증서, 표창장...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지만, 작은 '성공'을 이룬 기분이었다. 그 행복이 '우리 부부'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아이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인지, 우리 가족 전체를 두고 한 말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걸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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