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ts, 2024) 감상평
예고편을 보고 꼭 보리라 마음먹었다. 마침내 연차까지 써서 보고 왔다. 일상을 그리지만 매일매일의 섬세한 차이를 은근히 드러내는 연출과 연기, 가히 대가의 솜씨라고 할 만한 점이 예고편에서 엿보였기 때문이다. 음식으로 치면 슴슴한 평양냉면이라고나 할까(참고로 나는 평양냉면을 싫어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주워 들었다). 감독 빔 벤더스와 배우 야쿠쇼 코지는 미묘하고 미세한 차이를 매일매일 다르게 그려나간다.
실제로 보니 어땠느냐. 총평부터 하자면, 사실 조금 지루했다. 진짜 매일매일을 보여주더라. 미세한 차이를 보여주긴 하나 미세해서, 그것이 1시간을 넘자 조금 지루했던 것을 고백한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것이 감독의 의도임을, 그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자 성취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까지 대단한 클라이맥스는 없다. 일상의 변주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것이 '진짜 일상'임을.
우리의 일상이 그렇지 않나, 매일매일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보면 다르다. 멀리 보면, 몇 달 지나고 보면 어느새 많이 달라져있다. 마치 캐논 변주곡처럼, 같은 하루의 반복 같으면서도 그 반복이 쌓여 나가면서 우리는 어느 지점에 도달해 있다. 혹은, 처음과 다른 곳에 떨어져 있다.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는 도쿄의 공중 화장실을 청소하는 평범한 중년의 남자, 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특이한 점이 많다. 그가 매우 성실히 일한다는 점은 오히려 평범한 축에 속한다. 문고본 책을 좋아하고, 공원의 새싹을 가져다가 자외선 등 아래에서 키우며, 70~80년대 카세트 테이프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 한마디로 청소 노동자, 육체 노동자의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교양인' 또는 '지식인'의 일상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다 보면 그가 평균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고, 과거에 어떤 지식노동자였음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모종의 일로 그동안의 일을 모두 청산하고 가장 단순한 노동으로 돌아왔고, 번잡하고 스트레스 가득한 지식노동에서 벗어난 자신을, 자신의 일상을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 영화 내내 드러난다.
영화 내내 나무가 중요하게 나온다. 나뭇잎 하나하나와 나무의 새싹과 나뭇잎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나뭇잎 사이에 비치는 작은 햇살이, 이 영화에는 '흩뿌려져' 있다. 흩뿌려져 있다는 말이 적절할 정도로 부정기적이지만 꾸준히 나오는 것이 나무다. 그리고 히라야마는 바쁘게 일하던 와중에도 그 나무들을 보며 미소 짓는다.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주요한 테마다. 그의 일상을 따라가는 관객의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물론 잔잔한 일상만 나오지 않는다. 사건도 있고, 이어지는 사건도 있고, 돌발적인 사건도 있고, 갑자기 일어나서 갑자기 사라지는 사건도 있다. 일상과 사건(비일상)을 카메라는 담담히 비추고, 일상과 사건을 대하는 히라야마는 더욱 담담하다. 야쿠쇼 코지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연기인생 내내 쌓아왔던 것을 (주로 말없이)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는 커다랗고 장대하나 주변을 위압하지는 않는, 어떤 나무를 연상케 한다.
히라야마가 나무를 보며 미소 짓듯이, 관객은 히라야마를 연기하는 야쿠쇼 코지를 보며 미소 지으면 된다. 좋은 일들만 가득한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 일상이 그러하듯이, 나쁜 일과 슬픈 일, 나쁘지도 슬프지도 않으나 어딘지 씁쓸한 일, 처음에는 나빴으나 나중에는 괜찮았던 일, 괜찮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참 다행이라고 여기는 일들이 영화 곳곳에 있다. 그리고 그 일들을 줄줄이 엮은 것이 일상이고, 그 일상을 담담히 온몸으로 받아내는, 히라야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