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 자아존중감
# 자기도취와 자기애의 차이
그 끔찍한 폭우 속을 뚫고 90마일을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되뇌었던 말 덕분이었다.
“이 차는 조그만 폴크스바겐 자동차이지만 이 속엔 정말 귀중한 물건(나)이 들어 있어. 이 물건을 뉴욕까지 안전하게 운반해야 해.” 결국 나는 임무를 완수했다.
“오늘 아침 운전하면서, 갑자기 내 영혼의 성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위해 어떠한 노력이라도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난관을 극복하고 발전하기 위해 치료를 받으려는 결심,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어떤 위험 상황을 대비한 안전 점검, 이것이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귀하게 생각하는지 가늠하는 척도다.
얼마 전 친구 mii가 카톡으로 "스캇펙 노년에 쓴 책이야!" 라며 '그리고 저 너머에' 요약본을 보내주었다.
이어, "이 내용 다음에, 자기애(자아존중감)가 없는 사람이 같은 길을 운전하면서.. 더 짧은 거리였음에도 길을 이탈하는 사고가 있었다는 예시가 나오거든~자아존중감이 낮은 것이 사고 확률을 높일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음 소중하게 여겨야지!"라고 하였다.
어릴 적에 키운 햄스터 생각이 났다. 수유시장 입구에서 팔던 회갈색의 작고 귀여운 햄스터였다. 분홍색 우리에 보송보송한 톱밥도 깔아주고 지붕 있는 집도 마련해주었다. 손 위에 올려놓고 해바라기씨를 먹이기도 하고 작은 혓바닥을 내밀며 물 마시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정말 작고 귀여운 햄스터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럽고 역겨운 생쥐가 되어갔다. 정말 손바닥만큼 커진 몸 덩이로 밤새 분홍색 철장 우리를 이로 갉아댈 때면, 저 혐오스러운 생쥐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의 선택은 '자연사시키는 것'이었다. '자연사'라는 단어에 '시키다'를 연결시키는 게 모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여하튼, 밥도 주지 않고 씻겨주지도 않고 역한 냄새가 나는 톱밥도 갈아주지 않았다. 결국 햄스터는 자연사당했다. 그 햄스터가 생각났다.
나는 내 삶을 그 햄스터 대하듯 했다. 삶을 방치하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잠을 오래 자고, 몸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꾸준한 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 술과 담배는 하지 않았지만 인스턴트커피를 많이 마셨다. 몸에 나쁜 음식을 부러 먹지는 않았지만 몸에 좋은 음식 역시 부러 먹지 않았다. 오랜 소화불량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 집을 나설 때 일기예보를 보지 않았다. 우산 없이 비를 맞고 집에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몸에 알 수 없는 멍이 자주 들었다. 나의 기호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대놓고 몸에 나쁜 행동은 하지 않지만 분명히 사고확률을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후에 스스로를 도무지 구제할 길이 없어지면,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이건 내가 삶을 포기한 게 아니라 정말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던 거야.' 변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아존중감이 낮은 사람들은 스스로 사고확률을 높인다는 그 말이 맞다. 자주 다치는 사람들은 '그냥' 조심성이 없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mii는 내가 집에서 나오기 전, 흐린 날씨를 보고도 우산을 챙겨 오지 않는 이유가 항상 궁금했다고 한다. 나는 답했다. '비 오면 맞지 뭐.' 그냥. 그렇게 생각했었다고. 은미와 이 대화를 나눈 이후 어느 날, 나는 흐린 날씨를 보고도 또! 그냥! 우산을 챙기지 않고 도서관에 갔다. 아니나 다를까. 공부를 마치고 나오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평소대로 '맞지 뭐.'하며 비를 맞으며 집까지 걸어갔다.
아. 정말이지. 드럽게 추웠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이가 덜덜 떨렸다. 그 순간 깨달았다.
자존감이 낮다는 건, 춥지 않아도 되는데
드럽게 추운 거구나.
스캇 펙 박사는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위해 어떤 노력이라도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얼마 전 집을 나서기 전 처음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오후 내내 비가 온다고 했다. 노력해보자. 나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서. 소중한 부영이가 (안 맞아도 될) 비를 맞아 추위에 떨지 않도록 지켜주자. 별이 정신없이 박혀있는 주황색 장우산을 챙겼다. 집을 나서자마자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우산을 폈다. 오늘 소중한 부영이는 하루 종일 비를 안 맞아도 되겠군!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난관을 극복하고 발전하기 위해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결심으로, 미루고 미루던 상담도 신청해두었다.
작은 노력들. 해보고 나니 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 작은 노력들.
자아존중감이 높다는 건, 이런 노력들에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 것. 그런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