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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Studio Mar 17. 2018

엄마는 나의 우주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지호의 세상엔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참 많다. 아침마다 계란후라이를 구워주고 볕 쨍쨍한 날 노란 우비를 입은 아들에게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아.'가 아니라 '덥지 않아?'라고 물어봐주는 아빠 우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아빠를 둔 자신을 위해 기꺼이 빵집 문을 닫고 운동회에 달려와 주는 삼촌 홍구, 담배 연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고부라진다는 친구 소정, 아빠가 세차하고 나면 꼭 다음 날 비가 온다며 은근하고도 노골적으로 외제차 자랑하는 서빈. 그리고 동화 속, 구름나라에 사는 엄마 펭귄과 떠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노란 우비 입은 아기 펭귄.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 일어난다. 자신을 낳다가 몸이 약해져 1년 전에 죽은 엄마가 다시 돌아오고, 아빠는 놀라 자빠지기보다는 엄마가 놀랄지도 모르니 비밀을 지켜주자고 하고, 다시 만난 우진과 수아는 전과 같이 사랑에 빠지고, 홍구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하면서도 우진과 함께 나뭇가지를 옮겨 터널을 막는다.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이게 만약 지호의 세상이라면? 지호가 바라보는 세상이라면? 어른들이 지호의 세계를 지켜주기 위한 이야기라면?'의 가정 아래 말이 되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구름나라 아기 펭귄, 지호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지호는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엄마가 자신 때문에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마음 깊숙이 어떤 두려운 감정, 죄의식이 똬리 틀어버렸지만 지호는 엉엉 울지 않는다. 대신 엄마를 기다린다. 장마가 시작되는 날 자신을 찾아와 '지호야. 그건 사실이 아니야. 엄마는 너 때문에 죽은 게 아니야.'말해줄 엄마를 애타게 기다린다. 울지 않고 씩씩하게 계란후라이에 밥을 먹고 아빠의 자전거 뒤에 올라타 학교에 가고 자신을 위해 쓰러짐을 불사하고 내달리는 아빠가 최고라고 말해주고 눈뜨자마자 일기예보를 듣는다. 장마는 언제 시작되는 걸까? 엄마는 언제 돌아오는 걸까? 매일 아침 이 생각으로 눈을 뜨고 하루를 보낸다.


장마가 시작되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엄마가 돌아왔다. 지호가 원하는 건 단순하다. 같이 놀고 먹고 잠이 들고 다음날 아침 같이 깨어나는 것.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보내는 것.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앞으로의 날들을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아가는 것. 나의 자람을 엄마와 아빠가 지켜보아 주는 것. '나는 달리기를 잘해요. 내 꿈은 금메달을 따는 것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그들의 존재함 그 자체를. 지호는 원한다.


우리 아빠가 최고야


우진과 수아는 대단한 사람들이었을까? 그럴만한 마땅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을까? 아빠 우진은 수영 선수를 꿈꾸었지만 육체적 한계에 난파된 배처럼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명석하고 도도했던 엄마 수아는 수업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는 체육 특기생 남자애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세 번의 만남을 끝으로 헤어지는 큰 상처를 입었다. 특별해 보이지만 결국 우진과 수아는 나이고 너이다. 첫눈에 반해도 사랑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어설프고 어이없게 첫사랑을 시간의 저편으로 흘려보내버리고 마는 나이고 너인 것이다. 이런 우리가 만나 부모가 된다. 대단한 너와 내가 아니라 평범한 너와 내가 만나 부모가 된다. 그리고 그 부모는 새로 태어난, 깊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세상으로 빠져나온 한 사람의 우주가 된다. 내가 누군가의 우주가 된다니. 부모가 된다는 것은 위대하고도 위태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 엄마는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식당 종업원에 점차 소멸되어갈 일 밖에 없는 58세 여인이지만, 나에게는 엄마가 전부고 우주다. 나는 세상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이 아니라 엄마의 인정과 사랑으로 자랐다.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해 지호인 내가 수아인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엄마는 스스로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초라한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아니야. 엄마는 존재 자체로 누군가의 전부고 우주야. 자궁문이 열리지 않아 죽을뻔한 고비 가운데 나라는 세상을, 하나의 별을 탄생시킨 엄청난 생명력을 가진 존재야. 그러니 어깨를 펴! 떨군 고개를 들고 세상천지 아름다운 만물을 바라봐! 어머, 나도 부영이라는 한 생명 곧 세상을 낳았는데 부영이처럼 푸른 만물이 도처에 있구나! 감탄하고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


엄마는 나의 우주


비가 그쳤다. 엄마가 내 곁을 다시 떠나간다. 달리기를 잘하는 지호는 엄마를 향해 힘껏 내달려 그 앞에 선다. 엄마의 죽음 이후 마음속에 품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꺼내볼 수 없었던 그 말을 한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엄마와 아빠는 더 오래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 내가 태어나서 미안해.' 같은 질문을 품고 사는 수많은 지호를 향해 수아는 답한다.


"엄마랑 아빠는 지호 널 세상에 태어나게 하기 위해 만난 거야."


수아는 헤어진 후 자신을 다시 찾아온 우진을 쫓아가다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다. 혼수상태에 빠진 수아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긴 꿈을 통과하며 우진과 지호를 선택할 경우 겪게 될 자신의 이른 죽음을 알게 된다. 선택하지 않는다면 피할 수도 있는 죽음이다. 잠에서 깨어난 수아는 어떻게 했는가? 결국 우진을 만나러 간다. 다시 사랑을 하고 지호를 낳는다. 영화 밖 우리들은 때가 되면 언젠간 죽는다. 모든 우리들은 예정된 이별 안에서 사랑을 시작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랑이 시작되기도 한다. 사랑이 일단 시작되고 나면 이별은 확정된다. 밤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 담긴 홈비디오를 보며 눈물 쏟는 수아와 우진은 곧 우리들이다.  


아기 펭귄 지호는 엄마 펭귄 수아를 구름나라로 떠나보내기 직전이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다. 이별 앞에서 차라리 사랑을 하지 않았더라면, 고민하는 수많은 아기 펭귄 지호를 향해 수아는 "넌 죽음과 이별을 통해서라도 얻고 싶었던 아주 소중한 존재야."라고 말해준다. 지난날 죽음 앞에서 했던 수아의 선택이 이 말을 증명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있는 우리들은 사랑받아 마땅하다.


'엄마, 예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나를 선택하고 만나러 와줄 거야?'라고 의심하는 지호를 향해 영화는 수아의 몸을 빌려 진심을 듬뿍 담아 말해준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기 펭귄 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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