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미니멀리스트의 한국판 독서법 - 책장 비우기
누군가에겐 쓸모 없는 이야기?
지난해 성인 3명 중 1명은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통계(문체부, 2015)는 언제나 한국 뉴스 앵커들의 단골 멘트였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번 글은 대한민국 성인 3명 중 1명에겐 쓸모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 셈이다. 어디 한 번 그 쓸모없는 이야기를 해볼까나.
나는 책을 안 읽는 사람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도 책 보다 좋은 취미를 발견하면 책 따위는 던져버리고 그거 하며 살 거니까. 그러므로 독서에 대한 뻔한 당위성 이야기는 접어두자. 여러분이 책을 좀 읽는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책 자체는 소유하지는 않으면서 독서라는 행위는 충분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내가 찾은 방식을 소개할 것이다. 물론 이것들이 참신하고 안성맞춤일 수는 없을지라도 나름대로 시행착오 끝에 안착시킨 방식임을 밝혀둔다.
필자는 아직 경제적 안정이 없다. 그래서 집도 좁은 월세방이고, 가진 것도 많지 않아서 세간이라 해봤자 노트북 하나와 책, 옷가지들이 고작이다.가전제품은월세방옵션으로버틴다 지금이야 그마저 있던 옷과 책까지 거의 다 처분해버렸지만, 한 때 책장에 제법 책들이 꽂혀있던 적이 있었다. 뭐가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보면 다음과 같다.
소장한 채 네댓 번씩 읽은 단골 책들
영화 시사회 등에서 사은품으로 받아 단 한 번도 읽지는 않은 새 책들
한때 잡지사에서 일했기에 수북이 쌓인 과월호들
내가 정기 구독하는 잡지들
대학생 때 전공 도서 등
나열해보니 ‘당장 식비도 빠듯하면서 무슨 마음의 양식을 이렇게나 많이 쌓아뒀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내가 독서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라는 방증도 되는 것 같다. 평범한 ‘독서광’에서 주머니 사정 빠듯한 ‘생계형 미니멀리스트인 독서광’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나는 책들을 처분하고 그 결과로 나타난 페이퍼리스paperless 독서기록법을 터득했다. 먼저, 책들의 쿨한 처분 과정부터 되돌아보자.
자, 내 소중한 책들을 어떻게 버려야 잘 버렸다고 소문이 날까. 분명히 짚고 가야 할 것은, 처음 미니멀리즘을 시도하는 사람은 중고 판매 따윈 생각지 말고 그냥 폐지함으로 직행시키라는 나의 생각(매거진 세 번째 글)은 변함이 없다는 점. 나 역시 버리기에 조금씩 단계를 더해가면서부터 중고 판매에 관심을 가졌다. 고향 집에 있는 청소년 시절의 책들은 첫 단계에서 그냥 버렸다. 그 뒤, 자취방에 쌓인 책들(성인이 된 후부터 모인 책들)을 정리하면서는 책 상태가 새것에 가까워 중고 판매로 제법 돈이 될만한 것만 모아 중고 판매했다.
중고는 역시 알라딘 중고도서 판매
알라딘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대 중고도서 브랜드다. 가난한 필자는 평소에도 알라딘의 중고책을 자주 사곤 했는데, 판매를 시도해 본 것은 미니멀리스트가 되고서부터였다. 판매 방법은 생각보다 매우 간편하고 단순매우짭짤하다. 필자의 판매 기억을 되짚어보면서 그 방법을 하나하나 설명해주겠다.
1. 팔아야 할 책을 스캔한 뒤 알라딘 홈페이지에서(로그인 필수) 중고매장 탭으로 간다.
2. 상품명 검색란에 내가 팔고자 하는 책을 검색한다.
3. 일치하는 출판사/판본을 확인한 뒤 없으면 포기하고 있으면 우측 장바구니에 넣어둔다(정확히 일치해야 한다!)
4. 팔기 장바구니에 들어가서, 내가 봤을 때 책의 상태를 최상/상 등으로 등급을 매겨 알라딘 지정 택배사 판매 신청을 한다.
5. 배송 박스를 기타 일반 박스로 선택한 뒤 입금 계좌와 나의 주소지 등을 기입한다.
6. 예상 판매 총액을 확인한 뒤 접수장을 인쇄하거나, 프린터가 없으면 접수 번호를 종이에 적어서 포장 박스에 동봉시킨다.
7. 택배기사가 방문해 책이 든 박스를 찾아간다.
8. 알라딘에서 자체 책 품질 검사를 한 뒤 입금을 해준다.
1. 알라딘 오프라인 매장에 책을 들고 방문한다.
2. 직원에게 책 팔러 왔다고 하면서 보여준다. 끝;;
기부가 어렵다는 것은 이제 핑계다
중고 판매하기엔 물건의 특성상 제한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제법 나눔을 원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는 주저 없이 나눔을 통한 뿌듯함과 속 편한 비움의 후련함을 만끽해보자. 필자는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해 사소한 물건 나눔을 자주 주고받곤 했다.
실제로 잡지 같은 경우는 보통 책의 가격을 호가하면서도 중고 판매가 어렵다. 필자는 Chaeg이라는 잡지를 정기 구독하고 읽는데, 디자인도 뛰어나고 콘텐츠의 깊이도 문화 예술로 다방면에 조예가 있어서 다 읽고 나면 버리기가 유독 아쉬웠다. 그래서 이런 잡지들이 다른 카페나 공간 대여 사업하는 곳에 비치된다면 그냥 버리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주저 없이, 평소 활동하던 물건 나눔 커뮤니티 SNS에 글을 올렸다. 카페나 공간 사업을 하는 분에게 무료로 잡지를 나눠드리겠다고. 그 커뮤니티는 원래 애플 컴퓨터의 부품들을 나누는 곳이지만, 평소에 전자제품 이외에도 많은 상품들이 오가는 정다운 곳이라 괜찮을 것 같았다. 솔직히, 내가 좋은 일 하겠다는데 누가 제재를 가할 것인가? 올리자마자 댓글이 달리고 이 잡지들은 택배를 통해 새 주인을 찾아가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SNS를 통해 지인들에게 나눔을 해도 되고, 필자와 같이 쌩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나눠줄 수 있다. 꼭 이 책들이 가난한 보육 시설의 아이들, 혹은 제3세계로까지 뻗어나가야 만족할 것인가. 나는 어디서 어떻게 유통되는지도 모르는 낯선 기부단체를 통한 전달보다는, 직접 내 손을 통해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오는 만족감도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포털 사이트의 카페 플랫폼이나 소셜 네트워크의 그룹 등을 통해서 생각보다 많은 컨셉의 나눔 커뮤니티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당장 검색해보기를 추천.
지금까지 책장을 비우는 방식을 중고 판매와 단순 기부로 나누면서 필자의 경험들을 녹여냈다. 거대한 책장 앞에 서서 어떻게 비울 까만 고민하고 있다면, 조금은 다른 탈출구를 모색해보자. 빠르게 새 주인을 찾을 수 있도록 고민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미니멀라이프의 일환이 될 수 있다. 물론, 만사가 귀찮은 당신이라면 당장 튼튼한 과일 박스를 구해 폐지함으로 책들을 직행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당신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다. 고작 책 버리는 것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쓰다 보니 내용이 길어져서, 페이퍼리스 독서에 대한 부분은 서술은 다음 글로 미루도록 하겠다. 필자가 에버노트 등을 통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독서 기록을 정리하고 향유하는 방식을 설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