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보자고요.
미니멀리즘에 대해 실컷 이야기했으니, 이제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시작’을 이야기 해야겠다. 라이프스타일인 미니멀리즘은 내 삶에서 어떻게 시작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며, 나 역시도 그것에 발을 맞춰 시작했다. 간단하다. 버리는 것(Drop)부터 시작한다.
삶의 주도권은 여백에서 나온다
역시,버리는것부터시작해야제맛이지
버림에 대한 실천을 해봤든 안 해봤든, 다들 알고 느끼는 사실이 하나. 택배가 로켓을 타고 배송되어 집안 구석구석으로 도착하는 오늘날엔, 채움보다 비움이 어렵다는 것. 하지만 집에 물건이 차는 속도가 빨라지면 내 손을 떠나 한없이 방치되는 물건도 급속도로 늘어난다. 그게 현실이다. 현실을 냉철하게 파악해야만 필자처럼 미니멀리스트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준비할 수 있다.
필자의 현실은 이랬다. 우선 말 그대로, ‘뭔가’ 많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뭐였는지 잘 생각도 안 나는데, 그 말인즉슨 별 중요하지도 않던 것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근무하고, 주간지에 글을 썼고, 술을 좋아해 밤늦게 취해 집에 들어오면 옷이고 뭐고 집어 던지고 잠든 뒤 허겁지겁 다시 일어나 저질체력을 붙들고 출근하는 삶. 월화수목금 동안 허물처럼 벗어둔 옷가지들과 던져둔 책들이 주말이면 집회를 이뤘다. 좁은 자취방에 정리할 공간이 부족해지자, 땅으로 걸어나온 시위대들에 가려 바닥 장판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당시)복층의 오피스텔에서 친누나와 함께 사는 총각이었다. 동생 못지 않게 난장판에는 일가견이 있던 룸메이트 덕에 날마다 지옥도(地獄圖)를 그려대며 살고 있었다.
혹시 신발 정리만 잘 해도 들어온 도둑이 되돌아나간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기억들하시는지? 이런 과장된 가르침에는 콧방귀부터 뀌는 삐딱한 필자였지만, 집안 꼴을 보아하니 도둑까진 아니더라도 이 집에 제정신이 깃들기는 어렵다는 걸 인정했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형의 카톡 하나가 기억났다.
당시에야 이게 무슨 뜬금없는 카톡인가 하고 흘려듣고 넘어갔다. 하지만 매일 아침 펼쳐지는 지옥도에 신물이 날 때쯤, 그것이 다시 생각나 미니멀리즘을 인터넷에 검색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첫 글에서 쓴 대로 필자는 일본판 미니멀리스트들의 책을 읽었고 미국판 TED와 블로그를 뒤적거렸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것. 그리고 대망의 물건 버리기에 나선다.
<무엇부터 어떻게 버릴까>가 당시 소매를 걷은 나의 첫 고민이었다. 사실 이제 고작 20대인 내가 가진 것은 옷이랑 책 몇 권이 전부인 것 같기도 하고…. 수개월 동안, 언젠가는 입겠지 하며 쌓아둔 옷들을 마치 역모죄인처럼 방바닥에 끌어내 눕힌 뒤에서야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에피소드는 계속된다. 이 옷들, 새것처럼 잘 입었는데(아니면 사놓고 잘 안 입어서 거의 새것이었든가), 기부를 하면 좋지 않을까? 아까운데 중고로 팔까? 어느새 정리는 뒷전이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아름다운 가게어디서들은것은있어가지고나 중고나라로 들어간다. ‘응?? 기부 절차가... 이걸 포장해서, 나눔 직원들에게 넘기라고? … 아 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오래 걸리지.’
자, 이제 모두 예상하겠지만, 정말 중요한 대목이 번개처럼 찾아올 차례다.
… 내일 할까?
비단 내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책과 옷들을 나르고 고민하고 정리하다 보면 이미 체력은 빠질 대로 빠진다. 첫 버림은 다 그렇다. 버릴 게 많으니 그럴 수밖에. 그때 ‘기부’와 ‘중고 판매’를 생각하는 순간, 자기 합리화가 시작된다. 순수 경험담이다. '나는 착하고 의식 있는, 예비 미니멀리스트잖아? 이걸 내일이나, 시간 날 때 기부하면 더 큰 의미를…'
하. 솔직히, 이럴 때 현명한 솔루션은 무엇일까? 단언컨대 그냥 헌옷수거함과 커다란 쓰레기봉투다. 처음 버릴 때는 절대 기부와 중고판매를 고려하지 말자. 처음일수록 과감해야 한다. 수많은 옷들을 헌 옷 수거함에 눈 딱 감고 던져 넣는 순간 - 필자는 한 번밖에 안 입은 털코트 던져 넣기도 했다 - 비로소 미니멀리즘 라이프가 나의 삶으로 들어온다. 단칼에 뽑아내야 한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는 버릴 때 사람들이 쓸데없이 창의성을 발휘한다고 지적했다. 책을 읽다가 이 부분에서 크게 웃었는데, 그만큼 공감 갔기 때문이다. ‘이 과자 곽, 왠지 필통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미안하지만 스스로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자. 그 박스는 평범한 당신의 손에서 절대로 쓸만한 필통이 될 수 없다. 언제나 그랬다. 쓸 데 없는 옷과 책, 신발 같은 물건들. 그건 내 인생의 외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소유물들이다. 이것들부터 빠르고 과감하게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것들부터 시작해 워킹 프로세스, 활동 반경, 인간관계까지. 점점 인생의 핵심 요소들로 접어들어가며 잔가지를 쳐내는 것이 바람직한 버림의 과정이다. 그 과정을 조금 간결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2step에 '신속과감'이라는 단어가 보이는가? 그건 기부도, 중고 판매도 생각하지 말고 일단 버림을 시작하라는 의미이다. 결심한 날의 밤을 넘겨 다음 날로 미루지도 말고, 긴장을 풀어 귀차니즘을 부르는 낮잠도 하루만 참자. 옷가지와 책들 같은 ‘바깥 요소’들을 먼저 빠르게 버리자. 그리고 1차적으로 마무리된 집안을 둘러보라. 벌써부터 큰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옷장에, 책장에, 서랍에 제법 공간이 생기기 시작한다. 글의 초입에 말한 ‘여백’이 생긴 것이다. 삶의 주도권은 그 여백에서 나온다. 물론 완벽하진 않겠지만 첫걸음을 떼면 그 뿌듯함에 일종의 희열까지 느껴진다. 그 이후부터 기부와 중고 판매를 생각해보도록 하자. 그때도 늦지 않은 것 같다. 필자도 첫 정리 후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아끼던 책을 중고서점에 팔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그냥 폐지함에 다 때려 박았다. 버릴 때 쓸데없이 착해지지도, 크리에이티브 해지지도 말자. 20, 30년 아니 그 이상의 삶 동안 맥시멀리스트로서 살아온 라이프스타일을 강하게 깨고, 스스로가 당장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괜찮았던 버리기 방식을 이야기했으니, 최악의 프로세스도 한 번 생각해보자.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은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물질적인 소유물에 대한 정리를 우선으로 하길 권한다. 그것이 보다 빠른 성취감과 결과물을 내놓기 때문에, 탄력 받아 다음 단계까지 나아갈 힘을 얻게 해준다. 하지만 순서에 대한 결정 없이 닥치는 대로 정리 욕심을 내다보면 제풀에 지쳐 앞서 말한 삼천포로 빠지기 쉽다. 앞서 말한 ‘… 내일 할까’의 함정이다. 반대로 인간관계, 워킹 프로세스, 소비 패턴 같은 보이지 않는 요소들은 정리하기에 앞서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한 것들이다. 첫 단계에서부터 능숙해질 수 없는 분야이니 우선 집에 방치된 스포츠 양말부터 버리라는 말이다.
그다음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여러 매체들을 통해 버리기 경쟁 혹은 버리기 비교를 하는 것이다. 물론 남들은 이렇게 버렸다는 걸 참고하고 자극받는 건 긍정적인 요소이지만, 이들의 미니멀에 커트라인이 있는가? 내가 버리고 내가 만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칼을 뽑기는 단칼에 뽑되, 요리를 시작하면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도마 위의 것을 잘라내자. 필자의 미니멀리즘은 ‘도시에 사는 총각 남자’의 미니멀리즘이다. 읍면리 사이즈, 가정이 있는, 혹은 남자가 아닌 누군가는 필자와 다른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을 통해 우선순위를 정해가야 한다.
미니멀리스트로 가는 첫 스텝인 버리기에 대해서 제법 길게, 도해까지 써가며 글을 썼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필자도 겪은 유혹과 고난을 슬기롭게 잘 이겨냈으면 한다. 그로 인해 스스로를 당당히 미니멀리스트라고 칭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버리는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했으니, 다음 글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책과 옷, 신발과 같은 소유물을 버리고 나누는 ‘팁’까지 소개하고자 한다. 그러면 이 매거진이 좀 더 인기가 많아져서 구독자도 라이킷도 댓글도 많아질 거라는 얄팍한 기대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