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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레트번역가 Sep 12. 2018

거울에 비친 나


한 때 내 세대라면 누구나 그랬듯이 이소라 다이어트 비디오를 따라한 적이 있다. 한 여름에 낑낑대면서 열심히 동작을 따라 하고 있는데 엄마가 "너 저 화면과 하나도 안 비슷해. 너무 달라."라고 하셨다. 즉각 반박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고 내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이미지는 당연히 모델 이소라 체형이 아니라 해도 팔다리 움직임은 얼추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전신 거울이 없었으니 멋대로 착각했을 테고 그 착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늘씬하진 않아도 이상 속의 나는 팔다리만큼은 쭉쭉 펴고 있었다. 

한 때 내 세대라면 많은 젊은 여성들이 그랬듯이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다녔다. 키가 작지만 얼굴도 작은 편이라 7cm 정도의 샌들을 신으면 도시의 쇼윈도와 지하철 문에 비친 내 모습을 봤을 때 전체적인 비율이 나쁘지는 않았다. 특별히 꾸민 날이나 9센티 넘는 구두를 신은 날에는 도시의 모든 비치는 것들에 나를 비쳐 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운동화가 대세가 되고, 하이힐이 오히려 낯설어지고, 모두가 자신의 키에 솔직해질 때까지도 나는 외출 시 힐을 고집했으나 몇 년 전부터 아예 신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각 인간에게 높은 구두를 신을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면 나는 젊은 시절에 그 시간을 다 써버린 것이다. 그날의 의상에 어울리는, 예전에는 하루 종일 신고 돌아다녀도 문제없었던 구두를 신고 나왔다가 지하철 역에서 내리자마자 눈 앞에 보이는 신발 가게에 가서 슬립온을 사 신은 적도 있다. 그리고 나면 옆 사람을 올려다보면서 자신감은 떨어졌고 쇼윈도와 거울에 나를 비춰 보지 않았다. 높은 신발과 아닌 신발의 신었을 때의 차이가 크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일부러 확인해서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관심이 없고, 남의 키 몇 센티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시적 관점, 높은 구두를 신으면 오히려 허리가 굽어 낮은 신을 신고 어깨와 허리를 쭉 펴고 다니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기능적 관점, 작은 사람이 높은 구두를 신으면 마치 통통한 사람이 상하의를 검은색으로만 입는 것처럼 애썼다는 느낌을 준다는 심리적 관점을 총동원하며 나를 위로했다. 무엇보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세상 고통 다 짊어진 것 같은 울상으로 다닐 수는 노릇이라 나 또한 낮은 신발에 적응했고 신발장 안 유행 지난 높은 구두는 한꺼번에 내다 버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아스팔트에 딱 붙는 슬리퍼도 잘 신고 다니게 되었고 며칠 전 어느 날, 백화점을 가려고 지하철을 기다리다 스크린 도어에 비친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아무리 얼굴이 작고 마른 편이라 해도 절대적인 '길이'라는 것은 불가항력이라 맞은편에 짜리 몽땅한 여인 한 명이 떡 하니 서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내 전신을 한참 동안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그런데 처음으로, 흔히 말하는 비율이 정말 나쁜, 짜리 몽땅한 내가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얼굴은 동그랗고 모든 것이 조그마한 내가 진심으로 귀여워서 계속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오늘은 두 번째로 복싱과 콰이토를 결합했다는 '보콰'라는 운동을 했다. 스텝도 팔동작도 간신히 따라가는 몸치라 거울 볼 시간도 없었고 작은 공간에 사람이 가득 차 거울을 볼 수도 없었다. 그러다 언뜻 보았다. 그리고 나는 요가나 필라테스가 아니라 춤 비슷한 것을 출 때 내가 어떤 식으로 몸을 움직이는지 정직하게 보게 되었다. 삐쩍 마른 팔과 짧은 다리로 리듬 박자 무시하고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전혀 충격이 아니었다는 점이 나를 충격에 빠지게 했다. 나는 내가 라틴 음악에 맞춰 힙을 살짝 돌릴 때도 절대 영화 속 라틴댄서와 같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이제는 이소라 다이어트 비디오 시절처럼  내 머릿속에서만 돌아가는 이상적인 이미지 같은 건 없었기에 내 머릿속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거의 일치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거울 속에서 스텝은 꼬인 채 팔을 휘젓고 있는 아줌마 한 명이 진심으로 귀여웠다. 

그렇게 나는 최근 며칠 사이, 스크린 도어에 비치는 비율 나쁜 나와 헬스 클럽 전신 거울에 비친 최악의 몸치를 만났고 그 만남은 생각 외로 즐겁고 만족스러웠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렇게 내 몸과, 나 자신과 또 한 번 화해했다. 그리고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는 저 거울 속 자유롭고 당당한 여자는 꽤 괜찮은 사람 같았고 앞으로 더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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