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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레트번역가 Oct 26. 2018

중년의 불안한 저녁

40년이 넘게 살다 보면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전재산과 집을 날려 버릴 뻔한 거센 태풍을 맞은 적이 한두 번 있었을 것이고 바람 한 점 없다고 믿고 항해를 떠난 날 느닷없이 파도가 닥친다는 사실쯤은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몇 번이나 가라앉을 버릴 뻔하다가 간신히 나무토막을 잡고 살아 남기도 했고 폭풍이 지나간 자리의 잔해를 하나씩 처리하면서 이런 건 지금은 하지만 또 한 번은 못할 것 같다고 중얼거리던 날들도 있었다. 

비극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문학이나 영화가 아니라 나와 남들의 인생을 통해 충분히 목격하고 체험했다.  

그래서 평온한 날에도 가슴 깊은 안 쪽에는 막연한 불안증이 도사리고 있다가 불쑥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번 달이, 올해가, 그다음 해가 무사할 것인가. 주변에 알 수 없는 병명으로 몸의 이상을 호소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지금 이유 없이 피곤한 건 무시무시한 병의 암시가 아닐까 싶어 지고, 양가 부모님 중 한 명이 갑자기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된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지만 분명히 그 일들이 내 일상이나 인생을 뒤흔드는 강도가 이제까지와는 다를 것이라고 짐작하며 몸서리친다. 그날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맞은 후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고 리모컨으로 방송을 여기 저기 돌리면서 돌연 찾아온 불안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날에는 맥주 한 캔을 미리 따거나 냉장고 속 남은 막걸리 한 잔으로 감각을 멍하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술을 마시면 기분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민해지거나 신경질적인 때가 많아졌다. 아이의 한 마디에 불쑥 짜증이 일어 안 해야 할 말을 하기도 하고 남편의 모든 행동거지가 거슬려 문을 쾅 닫아버리기도 한다. 술은 참아야 한다. 그러면 어쩌지 어쩌지. 

아이가 오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해서 김치볶음밥을 만들기로 했다. 먼저 스팸을 열어서 3분의 1만 잘라내 손이 댈 정도로 뜨거운 물에 씻은 다음 최대한 작게 썰었다. 파 한 개를 씻어서 도마 위에서 종종 썰었다. 좀 많은가 싶었지만 그러데이션이 이뻤다. 백종원 씨가 파 기름만 내면 어떤 음식도 맛있어진다고 했으니 파는 많이 넣어도 괜찮을 거야. 굴러다니던 양파 반 조각도 같은 크기로 썰었다. 맛있게 익은 김치를 식탁 위에 가져다 놓고 가위로 잘게 잘라 준비해두었다. 이만하면 다 된 건가.  

밥통의 밥이 식도록 뚜껑을 열어놓았다가, 먼저 파 볶아 기름 내고 양파 볶고 김치를 넣은 다음 약한 불로 달달 볶아 익히고 스팸 넣고 마지막으로 밥을 투하했다. 밥에 간장을 약간 뿌린 다음 요리 주걱을 세워 밥을 흩트리고 다른 재료들과 골고루 섞어 프라이팬에 납작하게 폈다. 먹어보니 김치가 맛있어서인지 간도 맞고 감칠맛 있었다.  

그 옆에 작은 프라이팬을 꺼내 달걀 프라이를 했다. 그래야 김치볶음밥이 완성되는 동시에 얹어 줄 수 있으니까. 

아이의 접시에 밥을 가득 얹고 노란 반숙 프라이를 얹었다. 

냉장고에 남은 계란 하나는 남편이 왔을 때를 대비해 남겨두어야 했으므로 내 김치볶음밥에는 생략했다. 

배고팠던 아이는 김치볶음밥을 먹은 후에도 햄을 구워달라고 했다. 햄 세 개에 칼자국을 내어 에어프라이어에 종이 포일을 깔아 구워주었다. 엄마가 깔라만시 주스 타 줄까. 햄에 머스터드 줄까. 허니 머스터드는 아닌데 괜찮지?


아기를 키울 때, 그러니까 갓난아기를 키울 때 참 신기했던 것이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쉴 틈 없이 바쁜데 심심하고 어쩌면 이렇게 화장실도 혼자 못 갈 정도로 한 사람과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외로울까. 

늘 명랑하고 자기감정을 잘 다스리던 동생이 작은 집에서 작은 아기를 키우고 있던 시절, 날 보며 말했었다.  

"왜 이렇게 외롭지? 나 외롭다는 생각 정말 안 하는 편인데 아기랑 둘이 하루 종일 있으니까 자꾸 외로워져."
사촌 동생을 보러 간다며 들떴던 우리 딸도 누워만 있는 아기를 보더니 나오면서 말했다. "심심했어. 아기는 누워 있고 놀아줄 수가 없잖아." 나 혼자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짐작해 1인극을 펼치던 시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지만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나는 놀이터를 지나치다 두세 살 정도 된 아이의 그네를 멍한 표정으로 밀어주고 있는 엄마들, 아기띠를 하고 도서관 식당에서 국에 밥을 말아먹고 있는 엄마들을 바라보곤 했다. 저녁이 되고 남편이 돌아온다고 해서 저 얼굴에 묻은 외로움과 피곤함을 털어버릴 수 있을까. 놀이터에서 다른 엄마를 만나 잠시 벤치에 앉아 "몇 개월이에요?"라고 묻다가도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주러 가는 길에는 어김없이 그 피곤한 외로움이 그들의 찡그린 이마에 나타났다.   

그런데도 내가 그 시기를 보내면서 외롭다고 해서 마음껏 외로울 수도, 우울하다고 해서 내키는 대로 우울할 수가 없었던 것은 늘 때가 되면 밥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우유를 사러 마트를 가고 남은 재료들을 꺼내고 다듬고 씻고 볶고 끓이고 먹이고 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되었고 아이를 겨우 재운 후에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중년이 되어도 기질적으로 우울해지고 불안해지는 건 그 전과 다르지 않다. 또한 그때나 지금이나 저녁에는 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감정을 나중에 사용할 요리 재료처럼 냉장고에 넣어두고 부엌에서 동동거리게 되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달라진 부분이 확실히 있었다. 

그때 마침 나는 NBA 농구 방송을 틀어 놓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슛하기 위해 던진 농구공이 골대 그물과 골 대판 사이, 그 좁은 공간에 꽉 끼어 내려오질 않았다. "어머 머머. 저것 좀 봐. 하하하." 아이는 내 웃음소리를 듣고 저녁을 먹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중계 화면에서는 그 장면을 느리게 두세 번 더 보여주었다. 

학교에서 농구를 해보았다던 아이도 골대 사이에 낀 농구공을 보더니 황당하다며 "와하하." 하며 웃었다. 

 

이제는 같은 장면에서 웃을 수 있다. 

미끄럼틀 위에 태운 다음 불안해 얼른 내려와 밑에서 기다리고 동네 식당에서 내 밥에 나물 반찬을 얹어 한 입 한 입 먹였던 키웠던 아가가 나보다 더 커지고 나만큼 농담을 이해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오늘 내가 속상했던 일과 기뻤던 일을 내 언어로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지금은 내가 먹지 않을 저녁을 위해 또다시 뭔가 썰고 볶고 있어도 적어도 심심하지 않다. 타인과 같이 있어도 외로울 수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하다면 외롭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아이가 크고 나서, 대화가 놀이가 되다가 드디어 대화가 대화가 되었을 때 알게 되었다.   

열렬히 사랑하는 존재와 나누는 내 수준에 맞는 다정하고 즐거운 대화가 주는 특별한 안정감 덕분에 소란스러운 감정이라는 비구름이 일시 소강했다가 먼 해상에서 자연스럽게 소멸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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