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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Dec 29. 2021

따뜻해지면 갈게.

코로나 난민의 제주표류

코로나가 인생에 그어놓은 한 획에 대해 생각한다. 

저마다의 색깔과 굵기로 지구의 모든 인간의 

몸에 그려진 선들에 대해 생각한다.

팬데믹이 오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의미 없는 상상은 하지 않는다.

운이 많이 없는 이들에겐 날카로운 칼자국으로, 

운이 조금만 없는 이들에겐 불편한 흉터 정도로,

그렇게 선들은 각자의 몸에서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

나에겐 칼자국이었을까.


코로나는 나의 상하이라이프를 절단했다.

그때, 부리나케 짐을 꾸려 한국행 비행기를 타던 순간에는,

갑자기 잘린 일상도 터미네이터 액체금속처럼 

두세 달이면 다시 붙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2년째 내 인생의 절단면은 붙지 않았다. 

바다건너 반대편의 절단면에 남편이 있다.

상하이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과, 

상하이로 돌아가지 못하는 내가

2년째 불가역적으로 단절되어 있다.


코로나는 인생 처음으로, 

공황장애도 몸에 새겨놓았다.

내 집은 떠났지만 가족의 집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며 모범환자가 되어 

1년만에 '완치'라는 단어를 상장처럼 받았다.

하지만 몸에 새겨진 어떤 것에 완전무결한 되돌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와 깨닫고 있다.

'완치'란 그것이 애초에 없었던 

이전의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는 다시 새롭게, 

백신 후유증이라는 디저트를 내밀었다.
독감 몸살 정도로 끝날 거라 믿었지만, 다시 운이 없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매일 밤을 샜다. 

백신은 내 몸에 항체를 만들고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밤낮으로 심장을 조이고 가격했다. 

정확히는 심장이 아니라 자율신경계였다. 

응급실에서 '어떤 검사를 해도 심장에는 이상이 없음'을 확인받은 뒤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는 약을 받았다.
3개월째 비슷한 약을 (여전히)먹으며, 

이제는 멀쩡한 듯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 같은 환자가 병원에 차고 넘친다는 말에,

남의 불행으로 내 불행을 위로받고 싶지 않았는데,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2년째 내 일상이 완전히 뒤바뀌었어도,

2년째 남의 집 살이를 하고 있어도,
2년째 남편과 떨어져 있어도,

2년째 약을 먹고 있어도,
2년째 돌아갈 날을 계획조차 못하고 있어도,

그래도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니잖아.

죽음의 공포는 2년 동안 수차례 겪었지만
정말로 죽어버린 건 아니잖아.

멀쩡한 듯, 그 비슷한 생활은 할 수 있잖아.
아직 일도 하고 있잖아.

코로나가 칼자국은 냈지만 심장을 도려낸 건 아니잖아.


좋은 쪽으로 생각해.

내일이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일단 좋게 생각해.
괜찮아, 잘될 거야. 

그 노래까지 포함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덮어놓고 낙천적인 말들. 

아무 근거도 대책도 없는 위로.


12월 31일에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던 남편은 

결국 올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이 오미크론으로 외국발 입국자 

10일 격리조치를 연장했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 두 국가에서 해야 하는 격리가 

40일이면 모든 일을 그만두라는 말이니까.


상하이에서 (심적으로) 고립된 남편이 돌아오지 못하게 되자

나는 세상 모든 것에 빈정이 상했다. 

어디라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내 몸의 변화와 내 인생의 굴곡까지 다.  

내 집이 아닌 곳에 얹혀사는 일도 한계에 다다랐다.

2년 동안 참아왔던 모든 것이 터져버렸다.

 

마음속 어딘가가 무너져버린 것 같애.
친한 친구에게 결국 그 말을 뱉어냈다. 

그 비슷한 말을 남편에게도 해버렸다.

혼자 있는 그에게 언제나 힘을 주고 싶었지만

내 그릇은 생각보다 작았다.

 

따뜻해지면 갈게.

겨울도, 베이징 올림픽도 지나고 나면  

한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생길 거야. 

조금만 기다려. 금방이야.

나는 나름 잘 지내고 있어. 괜찮아.

남편이 되려 나를 위로했다.

 

다시, 코로나가 남긴 

인생의 칼자국에 대해 생각한다.

피가 많이 났지만, 심장을 도려내지는 않은 

우리의 칼자국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괜찮아. 잘 될거야'라는 말을

조금씩 고려해 본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본다.


그것만이 답이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내가 막연히 부정하던 그 말들 속에서

내가, 우리가, 이 시간을 살아낼 수 있는

삶의 뿌리가 다시 돋아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에 진절머리가 날 때쯤 목련이 피듯이

어느 날 아무렇지도 않게 패딩에서 손을 떼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따뜻해지면, 

그가, 우리가,

무너져버린 어딘가가, 

마음에 뿌리를 키우고 조금씩 

다시 살아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쯤엔 코로나가 새긴 칼자국도 

지난날의 맹장수술 자국처럼 희미해지지 않을까.


따뜻해지면 갈게.

따뜻해지면 갈게.


올 겨울은,

풍성한 털모자가 달린 가벼운 패딩같은

이 말을 입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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