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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Jan 25. 2022

치즈케이크 좀 권하지 마요

취존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삼각 모양의 비닐팩 우유였다. 꼭지를 잘라 꿀꺽꿀꺽. 그리고 하나, 둘, 셋. 3초를 넘기기 전에, 우으으우웩! 입으로 들어간 것이 다시 입에서 나와 옷과 바닥을 온천지 흰색 피바다로 만들었다. 모든 장기가 역동적으로 난을 일으켰다. 다시는 이 흰 액체를 들이지 말라! 성난 동학운동이 그러했을까, 토하다 죽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을 게워내고도 멍하니 서있었다. 네 살 즈음의 기억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유를 먹은 사건이다.


장기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건, 우유만이 아니었다. 유제품 전체였다. 당연하지 모든 것의 원천은 우유니까. 그 이후로, 나는 유제품을 못 먹는 사람이 되었다. 보통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히어로'가 되는데, 나는 '토 사건'으로 '유제품고자'가 되었다. 우유, 치즈, 버터, 마요네즈, 마가린, 요거트, 밀크초콜릿, 케이크류, 디저트류, 싸구려 색소 아이스바를 제외한 모든 고급 아이스크림. (하겐다즈 비싸서 안 먹는 거 아닙니다) 그런류 모두 모두 다. 생각만 해도 벌써 장기가 뒤틀린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가 좋은걸 남에게 반드시 권하는 본능을 가졌다. 나도 그럴거다. 그래서 제주도 여행도 권하고, 제주 맛집도, 제주 핫스팟도 권한다. 하지만 제주도에 와서 그저 하룻밤만 조용히 일하다 가는 사람도 있는 법이고, 그를 굳이 꺼내어 바다를 보여줄 필요는 없다.



"딱 한 입만 먹어봐, 이건 진짜야!"


나는 평생, 그렇게 매번 굳이 꺼내어졌다. 특히 치즈케이크 앞에서. '인생 치즈케이크' 집이라면서, 이거 한입 딱 들어가면 치즈케이크에 눈을 뜰거라면서, 그놈의 유제품고자병 고치는 마성의 맛이라면서, 기어이 한 포크를 떠서 턱 밑까지 들이대는. 그런 사람들을 살면서 적어도 삼십 명은 만났다.


사실 '치즈케이크'류도 있지만 '이거 한 입만 먹어봐'류는 모든 음식에 디폴트 값으로 몇몇 사람들이 꼭 있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눈빛이다. '네가 이 맛있는 걸 먹지 못한다는 건 반인류적인 슬픔이다'라는 듯한 안타까운 눈빛.


미안하지만 치즈케이크는 내게 '음식'으로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내게는 노란 고무 덩어리, 그냥 부드러워 보이는 우웩. 더 솔직히는 이 테이블에서 빨리 없어지면 좋겠는, 장기 동학운동의 오랑캐일 뿐이다.



"그런 슬픈표정 하지 말아요"


그래도 시대가 많이 변해서, 취향을 강요당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그런 슬픈표정'은 늘상 만나고, 고르곤졸라 피자나 버터 바사삭 크로와상을 못 먹는다는 이유로 인생의 어떤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래, 나는 파리에 가서도 그 향기롭다는 빵집에 들어가기조차 어렵다. 버터 냄새만으로도 코가, 뇌가, 장기가 심기 불편해진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가는걸 초딩 에버랜드 가는 것만큼 좋아하지만, 그곳의 팝콘 냄새는 1분 만에 두통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슬플 리가 있나.


'치즈케이크 피플'들이 치즈케이크에 미치는 만큼 나는 재즈에 미치고, 그림, 사진, 건축, 소설에도 미친다. 그것들은 또 다른 느낌으로 온몸의 장기를 자극하는데 '토' 대신 엔돌핀,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같은 것들이 나온다. 나도 진짜야, 너희들도 내가 좋아하는 거 한 입만 먹어봐.


이미 취존의 시대이지만, 고향 제주에 와서는 (시골이 좀 그렇듯)처음부터 다시, 내 '유제품고자병'을 설명하고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고향의 정과 오지랖은 동전의 양면. 그래서 오랫동안 '서울이 싫고 서울이 편했'는데.


단순히 취향 강요를 하지 말아 달라는 소리가 아니다. 다양한 취향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1년 전쯤, '액티비*'에서 '식물성 요거트'가 출시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환호했다. 실은 아침에 일어나 눈 비비며 요거트 한입씩 떠먹는 그림을 많이 상상했다. 마침 제주의 2마트나 L마트에도 그것들이 놓여있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요거트라는 것을 먹었다. 부드럽고 달았다. 이런 것이었구나. 그리고 다시 사러 간 그때.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식물성요거트'는 이제 더 이상 입고되지 않습니다." 제주의 모든 마트에서 같은 입장을 밝혔다. 아마도 그것을 사간 사람은 나밖에 없었나 보다. 60만 인구 중에서 한명만을 위한 제품이라면 더 이상 입고될 이유가 없다. 쿠pang에 주문을 넣었다. '도서산간지역'이라는 이유로 판매자의 취소 통보가 왔다. 풀무one 홈페이지에서 직접 구매했다. 도착하니 얼음팩이 다 녹아있었다. 여름이었다. 먹긴 했지만 어딘가 찝찝했다.


그 이후로 식물성요거트를 먹어보지 못했다. 왜 사람들이 요거트 뚜껑을 핥아먹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내 몸도 유산균은 필요한데. (심지어 유산균 건강식품에서도 우유냄새가 난다) 나도 프로바이오틱스 같은걸 먹을 권리가 있을 텐데. 제주도에 그런 권리는 없었다.


코로나 직전에 스웨덴에서 한달살이를 했었다. 네덜란드에도 있었다. 낙농 국가답게 초대형 업소 냉장고만큼 많은 비건 요거트가 진열되어 있었다. 맛의 종류, 사이즈도 다양했다. 친구와 매일 아침 블루베리 요거트에  블루베리를 넣어서 먹었다.  아침이,  시절이,  환경이,  같은 소수자를 위한  배려가 그립다. 부럽다.


enjoy plant power. 라는 슬로건. 매일 그 식물의 힘으로 하루 여행을 하던 네덜란드의 파워 넘치던 아침 식사.


아침에 일어나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은 적도, 치즈 들어간 양송이 수프 같은 것을 먹어 본 적도 없다. 그것들을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아침에 먹을 수 있는 간단한 대안 음식'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언제까지 '계란류'만 먹을 수는 없으니까. 이건 나 같은 사람에게 취향이 아니라 어쩌면 생존의 문제다. 빈속에는 고구마도, 바나나도, 제주도에 차고 넘치는 귤조차도 건강에 좋지 않다는 기사를 오늘 읽었다. (사실 아침식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 맛있는 치즈케이크 한입 말고, 나 같은 '유제품고자'도 먹을 수 있는 맛있는 한입들이 많아진다면 '그런 슬픈 표정'도 점점 사라질 테고, 내 뼈도 조금은 더 튼튼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세상을 오늘도 꿈꾼다. 아니다, 그저 제주 마트에 식물성 요거트가 다시 입고되기만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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